[넥스트데일리 안은혜 기자] 효성그룹이 안갯속에 잠겼다. 1300억원대 세금 포탈 혐의로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회삿돈 16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1년 6개월의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 때문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조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1365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조현준 효성 사장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고령인 조 회장이 담낭암 치료를 받는 등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친 조세포탈이 1358억원에 이르는데, 수차례 회계감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했다”며 “이는 조세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일반 국민들의 납세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이 이 가운데 법인세 1237억원을 포함해 1358억원을 탈세했다고 판단한 반면, 조 회장의 실질적 소유 회사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 법인 자금을 송금 받아 횡령한 혐의와 싱가포르 법인에 대한 배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또 불법 배당 행위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장남 조현준 사장이 사적으로 쓴 신용카드 대금 16억5900여만원을 효성 법인 자금으로 결제해 횡령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 및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횡령 금액을 사후 변제하고 범행을 시인, 잘못 뉘우치는 점 등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효성그룹 측은 15일 조 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결과에 대해 “IMF 외환위기당시 효성물산을 법정관리에 넣어 정리하고자 했지만 정부와 금융권의 강요에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합병함에 따라 떠안은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며 “오로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을 뿐 어떠한 개인적인 이익도 취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인세를 포탈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질적으로 국가 세수의 감소를 초래하지도 않았다”며 “이 같은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형이 선고되어 안타깝다. (조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에 대해) 추후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조현준 사장의 항소 여부는 “논의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10년 간 회계장부를 조작해 탈세를 저질렀는가 하면, 차명주식을 보유하면서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 120억원을 회피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에 지난 2014년 1월 검찰은 조 회장을 분식회계 5010억원, 탈세 1506억원, 해외 법인 자금 690억원 횡령, 효성 싱가포르 법인채권 233억원 배임, 위법 배당 500억원 등 8000억원 규모의 비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현준 사장
조현준 사장

조석래 회장 측은 조세포탈에 고의가 없었고, 은밀히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분식회계는 외환위기 당시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경영상 판단이었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회사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며 “수사·재판 과정에서 직원들의 진술을 강요하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등 범행 후 태도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1심 판결 이후 17일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이들의 최측근인 이상운 부회장 등에 대해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번 1심 판결로 조석래 회장 등은 더 이상 증권선물위원회의 이사 해임권고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명분을 내세우기 어려운 바 회사와 주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해임권고 조치를 즉각 수용·이행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회사가 연루된 형사사건으로 유죄가 거의 명백한 총수일가와 그 측근이 여전히 회사의 이사로서 직무를 수행한다면 해당 회사에 대한 시장의 평판과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재벌의 전근대적 소유구조·경영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현재 주식회사 효성의 등기이사 10명 중 조 회장 등 3명이 피고인 신분이고,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회사 이사회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조 회장 등은 이번 법원 판결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사직을 사임하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라고 밝혔다.

조현문 전 부사장
조현문 전 부사장

한편, 효성 가(家)는 가족 간의 법적 다툼 속에도 놓여있다.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 장남 조현준 사장, 삼남 조현상 부사장 대(對)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간의 법정 다툼이 몇 년 째 진행 중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3년 2월 자신과 아들 명의의 효성 지분 전량인 7.18%를 매각한 뒤 2014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형 조현준 사장과 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원 9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노틸러스효성 등 3개 계열사 지분을 가진 조현준과 해당 계열사 대표가 수익과 무관한 거래에 투자하거나 고가로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 등으로 회사에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아버지와 형, 동생이 자신의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나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2011년 9월 효성그룹의 불법비리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이를 바로잡다가 아버지 명령으로 그룹에서 쫓겨났고, 회사를 떠났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5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조석래, 조현준 부자의 횡령·배임·탈세 혐의 재판이 열렸을 당시 “효성은 불법 비리가 많은 회사다. 그 행동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조현준 사장이야말로 진짜 ‘몸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족 간의 법적 분쟁으로 재벌 경영권의 골육상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효성그룹은 이번 오너 일가의 비리에 대한 실형 선고로 ‘재벌 가의 이미지 실추’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안은혜 기자 (grac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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