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기자 (jklee@nextdaily.co.kr)1811년 3월 11일 영국 노팅엄에서 이른바 러다이트(Luddites)로 불리는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이 시작됐다.

일단의 노동자그룹은 이 지역 공장을 습격해 63대의 스타킹 및 레이스 생산기계들을 부숴버렸다. 이들은 기계가 자신들을 대신해 일하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3주 동안 피스톨과 총, 해머로 무장한 50명 가까운 노동자들은 200대의 기계를 추가로 파괴하는 등 이 지역에서만 1천대의 기계를 파괴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의 19세기 초. 섬유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가난과 불행은 새로운 기계의 발명과 도입에 의해 더욱더 끔찍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기계는 노동자들보다 훨씬더 일을 잘했고 더 빨리 처리했다. 당시 늘상 저임과 굶주림의 위협에 시달렸던 공장노동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이 기계를 막아야만 했다. 이같은 기계에 의한 혁신은 노동자들의 미래를 더욱더 불투명하게 만들 것이었다. 더구나 1811년 영국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1806~)에 따른 높은 실업률 속에 식량부족까지 겪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노동량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수천명이 전혀 할 일을 찾지 못하게 됐으며 , 생필품 품귀가 불러온 터무니없는 물가로 인해 영국산업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노팅엄시 인구의 절반은 교구의 구호물품으로 근근이 살고 있었다. 끔찍한 흥분,패닉,우울증이 뒤따랐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이 당시 영국전역의 공장지역으로 확산된 기계파괴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이들 공장 노동자들은 러다이트란 이름으로 불리는 조직을 만들었다. 노팅엄의 기계파괴운동 폭동 지도자 네드 러드(Ned Ludd)의 이름을 따 이렇게 불렸다.

기계를 파괴하는 영국의 노동자 러다이트. 사진=위키피디아
기계를 파괴하는 영국의 노동자 러다이트. 사진=위키피디아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파급되자 의회는 “기계를 부수는 자에겐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는 법안을 급히 통과시켰다. 하지만 러다이트들의 활동은 아주 비밀스레 이뤄졌다. 모든 진압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약탈은 상당기간동안 계속됐다.

영국 상원의 발언대에 처음 선 신출내기 의원 바이런 경은 폭도들을 옹호했다.

그는 “러다이트의 격분은 더이상 비할 바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 가련한 이들의 절대적인 결핍은 한 때 정직하고 근면했던 사람들을 극단적 위험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노팅엄에서 시작된 혼란은 북부 및 요크셔 웨스티라이딩으로 확산돼 갔다. 이운동은 반란 수준으로 확대돼 갔다. 어떤 공장이나 공장소유주도 이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812년 2월 영국 의회는 기계를 파괴하는 노동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813년 2월 러다이트 운동을 주동한 열네 명의 노동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어느 새 이들이 제기한 우려는 유럽 전역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1818년 독일의 ‘쾰른차이퉁(Klnische Zeitung)’은 다음과 같은 글을 게재했다.

“증기기관 하나가 때로는 1천명의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고, 모든 노동자에게 나누어질 이익을 한 사람의 수중에 넘긴다. 기계가 새롭게 개선될 때마다 숱한 가정의 빵이 강탈된다. 증기기관이 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거지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머지않아 모든 돈이 수천 가문의 수중에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걸하게 되는 사태를 예상할 수도 있다.”

러다이트에게 있어서 기계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아래 도입된 것으로, 인간을 노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고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기계를 때려 부수는 행위는 기계를 소유하는 자본가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는 하나의 변형이기도 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오랫동안 시대착오적인 광기로 매도돼 왔지만, 오늘 날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신(新)러다이트`(Neo-Luddite) 운동’은 컴퓨터,인터넷 등 20세기의 신기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사람들 혹은 이념을 가리킨다.

1978년 5월부터 1995년 4월까지 18년 동안 열여섯차례에 걸쳐 우편물 폭탄으로 3명을 죽이고 23명을 다치게 한 테드 커진스키 전 버클리대 수학교수(일명 유나바머)는 기술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표현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인류에게 있어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앞으로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할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고 자연은 더욱더 극심해질 것이며 선닌국에서도 역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라고 1995년 자신의 이른 바 `유나바머 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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