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사진 초대전 관계로 얼마전 방송국에 초대받아 30분간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진행자가 다양한 질문 하던 중 호텔리어와 사진가중 어느 역할이 중요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난감했다. 필자에겐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다르고 자식 입장에선 인생의 다른 스승들이다.

필자를 호텔리어라고 소개하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직종과 어려운 업무가 있다. 경영 일선에서 뛰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 맨이 되어야 하고, 전체적인 재무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선 투자 수익까지 고려해야 하고, 자산 관리하는 입장에선 원가를 생각하고, 조달을 도와줘야 하는 입장에선 거래처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시스템까지 고민해야 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보기엔 호텔리어라는 하나의 직무처럼 생각되지만 실제 해야 하는 일은 다양해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과 눈을 지녀야 할 때가 태반이다.

사진가와 호텔리어는 전혀 다른 필드에 속한다. 사진가라 해도 기록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있고, 필자처럼 일정한 컨셉을 보여주고 있는 개념과 철학을 사진으로 교감하는 작가들이 있고 상업사진, 즉 광고를 주로 담는 작가도 있고, 풍경을 담아 추억을 보여주는 분도 이다.

이처럼 사진가라도 다양한 분야가 있고, 호텔리어도 전혀 다른 직무와 특기를 가져야 하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사진가와 호텔리어란 다른 분야이기에 이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필자가 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것은 호텔리어와 사진가로서 투자하는 시간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일정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개 많은 시간을 한가지 일에 투자한다. 이 때 보다 효율적인 투자는 무작정 많은 시간을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짧지만 효율적으로 시간을 꾸준하게 투자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 비법이 바로 효율적인 일정관리이다.

필자도 처음 입사해서는 무작정 업무에 매달리는 일 중독자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효율적으로 일정을 관리하자 일에 능률이 올라가고 성과도 좋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호텔리어로서 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필자가 노력했던 것 중에 하나가 하루에 외국어를 위해 15분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15분 동안에 무슨 공부를 하겠냐 싶겠지만 반복해서 집중하다 보면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지금이야 영어는 많은 사람들이 할 줄 알고 중국어가 대세인 시대이긴 하지만 필자가 한참 일할 시절엔 일본어가 중요했다. 대체로 일본어가 쉽다고 하지만 많은 시간투자와 연습이 필요했다. 일본어 글자에서부터 간단한 문법까지 그리고 단순한 문장에서부터 어려운 묘사까지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일본인 친구가 생기고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필자는 페이스북에 영어로도 게시물을 올리지만 일본에 다녀온 여행기라는지 일본에 관련된 특별한 일에 대해서는 일본어로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필자는 퇴근시간이 늦어 일본어 학원을 가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업무시간에 일본어를 공부한다면 바로 상사나 동료들의 눈밖에 나는 일이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시간대는 출퇴근시의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시간이다. 혹은 15분정도 일찍 출근하거나 퇴근 이후의 15분 정도의 시간은 부담이 없고 좋다. 다만 1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력 높게 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거르지 않고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출퇴근시나 전후에 대중교통 수단에서나 회사에서 단 15분의 시간을 꾸준히 관리해준다면 어느새 외국어 하나쯤은 신기하게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좋은 사진가가 되기 위해 필자가 경험했던 꾸준한 투자는 걸어서 출근하기였다. 출근길에 걷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었다. 출근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운동이 되기 때문에 건강도 좋아지고,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계절별로 달라지는 풍경들 속에 사진가의 시각에서 볼 때 좋은 피사체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사진가로 안목을 넓히고 실력을 쌓기 위해 필자는 일정한 경로를 정했다. 적어도 한달 아니 3-4 개월 같은 길, 같은 골목을 정하고 매일 출근길로 지나면서 사진을 담았다. 추울 때는 늦게 해가 떠서 어두웠던 피사체가 날씨가 좋아지면서 그림자가 비치는 멋진 사물로 변했고 느낌도 달랐다. 매일 같은 길을 선택해서 꾸준히 빛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살피고 색의 느낌을 관찰했다. 그렇다고 길게 시간을 쓴 것도 아니었다. 하루 15분 정도 출근길에서 같은 피사체를 담고 달라지는 느낌과 빛의 영향을 살폈다. 이 15분간의 연습은 사진에 있어서 사물을 보는 눈을 탄탄하게 만들었고 5년, 10년이 지나면서 많은 사물의 빛과 그늘, 그리고 색과 순서가 눈에 들어왔다. 짧지만 꾸준히 한 덕분이었다.

한편 매일 아침에 걸어 출근하며 다진 체력 덕분에 다양한 사진도 경험했지만 하루를 쉼 없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이러한 건강이 바탕이 되어. 주말에 광희문에서 숭례문까지 시민들과 걷고 궁에서 해설사로 반나절을 보내도 해도 끄떡없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조금씩 짬을 내 만들어 가는 시간 관리가 하루를, 더 나아가 일주일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필자가 파리 사진전을 열면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는데 파리 샹제리제 갤러리스트들의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사진 아티스트가 되었냐는 것이었다. 답을 하기 전에 필자는 반고호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고호는 미술대학을 나온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는 전도사였고, 화랑의 점원이었다. 20대가 훨씬 지난 후 지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되었고 그림이 팔리지 않았어도 자신의 영혼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생애는 곤궁한 삶이었지만 역사를 관통하며 위대한 예술가로 남아있다. 처음 부터 아티스트가 되는 삶도 있지만 반고호 처럼 살아가면서 자신의 능력과 관심은 다양한 곳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필자도 40대가 넘어선 후에야 사진, 운동, 역사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그리고 관심과 호기심을 발견했을 때 꾸준한 시간을 투자하였고 그것이 쌓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전문가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결국 짬을 낼 줄 알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알고, 꾸준한 투자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업무에서건 자신의 취미에서건 늘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어떤 일이든지 하루 15분이라도 매일같이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백승우 swbaek@hanmail.net 그랜드하얏트서울 상무이며,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 필자는 자신만의 시간관리로 호텔리어, 사진가, 교수, 궁궐 문화역사 해설가,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최근 클래식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싶다며 콘트라 베이스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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