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하고 멋진 집을 지으려면 설계와 기초 공사를 잘 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대충 그린 설계도에서 좋은 집이 나올 수 없고,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튼튼한 집이 나올 수 없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기업을 세우고, 그 기업이 오랫동안 지속되게 만들고 싶다면 설계와 기초 공사를 잘 해야 한다. 스타트업 집짓기 6단계는 설계와 기초 공사를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고 있다. 앞으로 6단계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갈 텐데 1단계부터 자세히 알아보자.

1단계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을 예로 들어보겠다. 드라마에서 오차장이 주인공 장그래에게 10만 원을 주며 무엇을 팔든 많은 이익을 남겨오라며 미션을 던진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장그래는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고, 무작정 10만 원어치 양말과 팬티를 사서 거리로 나섰다. 자존심을 버리고 지하철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팔아보기도 하고, 자신이 다녔던 바둑기원에 가서 팔아보기도 하지만 단 한 사람도 그의 양말과 팬티를 사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돌아다녔지만, 단돈 천 원어치도 팔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일단 너무 무모했고, 계획성이 없었다. 무엇보다 ‘누가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니 당연히 누구에게 양말과 팬티를 팔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양말과 팬티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매달리며 시간 낭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운명의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늦은 밤 자포자기 상태로 회사 앞을 걷던 장그래는 우연히 찜질방 앞을 지나치게 됐다. 그제야 ‘늦은 시각 회사 앞 찜질방을 찾는 직장인’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야근에 미처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양말과 팬티가 필요한 사람들을 발견한 장그래는 찜질방 앞에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결국 가지고 있던 모든 양말과 팬티가 동이 났고, 천신만고 끝에 10만 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누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은 사업의 시작점이다. 만약 창업의 6단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1단계, 고객의 문제를 찾는 과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사업의 큰 뼈대를 세우는 기초 공사와도 같다. 기초 공사가 부실한 집은 여기저기 쉽게 금이 가고, 위기에 취약해 태풍이나 지진 등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창업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이후의 모든 일들이 계속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장그래는 일의 순서, 아니 생각의 순서부터 달리해야 했다. ‘걷다가 아주 우연히 찜질방을 발견했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내가 마침 대량 구매해놓은 양말과 팬티다.’가 아니라, ‘늦은 밤 회사 앞 찜질방을 찾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야근에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이 없어 곤욕을 겪는다. 그런 그들에게 양말과 팬티를 팔아보자.’가 되었어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10만 원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창업을 한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1억, 10억, 100억의 손해를 보고 패가망신 할 수 있다. 고객의 문제, 혹은 니즈를 고려하지 않은 제품은 그 누구도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씨엔티테크는 피자, 치킨, 햄버거 등 배달과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우리나라 모든 외식 브랜드들의 주문을 IT 기술을 활용해 대행하는 회사다. 1588 혹은 1688로 시작하는 대표번호 콜센터나 인터넷, 모바일 주문은 모두 우리 회사를 거치게 된다.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 BBQ치킨, 네네치킨, 롯데리아, 버거킹, 놀부보쌈 등 수많은 외식 브랜드들의 주문이 알고 보면 씨엔티테크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도 역시나 ‘문제의 발견’에서 시작됐다.

때는 2003년. 집에서 TV를 보던 중,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피자 광고가 나왔다. 마침 배가 고팠던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피자 매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넓은 홀 매장일 줄 알았던 그곳은 좁디좁은 배달 전문 매장이었던 것이다. 광고에 배달 매장이라고 한 번만 언급해줬다면 헛걸음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당시만 해도 피자 광고는 치즈가 쭉쭉 늘어지는 맛있는 피자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는 것을 정석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광고는 전혀 직관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고객 입장에서는 배달 전문 매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안다 해도 전화번호를 알아내려면 114에 전화를 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져서 직접 전화번호를 알아내야 했다. 이러한 TV 광고의 비효율성은 고객뿐만 아니라 업체 입장에서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본사에서 광고에 투자하는 비용이 약 10억 원을 넘어서는데도 그것이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는지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 광고를 한다는 명목으로 가맹점으로부터 마케팅 비용을 거두지만, 정작 가맹점에서는 각자의 전화번호를 홍보하기 위해 전단지를 따로 돌려야 하는 이중 마케팅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표 1. 소비자와 업체가 느끼는 문제점
표 1. 소비자와 업체가 느끼는 문제점

과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홈쇼핑 효과’를 생각해냈다. 홈쇼핑의 판매 방식을 그대로 외식 광고에 도입하는 것인데, 대표번호를 광고에 등장시키고 콜센터에서 주문 전화를 받아주자는 아이디어였다. 고객 입장에서는 광고를 보자마자 전화번호를 알 수 있으니 매장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고, 전보다 정보를 얻는데 드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입장에서는 브랜드 대표번호를 도입하면 배달 주문전화 건수 등을 통해 광고 효과를 측정할 수 있고, 수백 개에 달하는 가맹점이 하나의 번호로 운영되니 여러 모로 관리가 편해졌다. 각 가맹점은 홍보와 주문 걱정은 접어두고, 조리와 배달에만 집중하면 되니 운영에 드는 품을 덜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에는 점심시간과 같은 주문 피크타임에는 전화가 한꺼번에 몰려서 놓치고 못 받는 전화도 많았는데, 콜센터에서 여러 대의 전화로 주문을 받아주니 하루에 들어오는 주문 건수도 전보다 많아지고, 매출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업체들은 이 아이디어를 두 손 들고 환영했다. 그렇게 대표번호 콜센터와 함께 온라인 주문 시스템까지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렇듯 사업 아이템을 정할 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데,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미 해결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해결되지 않은 미결의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 그 자체가 시장을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이고, 그 시장을 독점 또는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찬찬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자. 오늘 어떤 일에서 불편을 느꼈는지, 요즘 가장 성가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창업 아이템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을 지도 모른다. 자신에게서 해답을 얻지 못했다면 주변인들을 관찰해도 좋다. 누군가가 어떤 문제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다면 그 목소리에 집중해보자. ‘이것이 바로 사업 아이템이야.’라고 알려주는 강력한 신호일 수 있다. 1단계의 핵심은 바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형태의 사업 아이템 찾기이다.

“오늘 뭐 먹지?” 누구라도 이 다섯 글자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매 끼니마다 이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검색해보기도 하지만, 온통 광고성 글로 도배된 탓에 신뢰성 있는 정보들을 걸러내기도 쉽지 않다. 그리드잇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이 고민과 행동을 ‘문제’로 정의했고, ‘오늘 뭐 먹지’라는 서비스를 런칭해 성공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이다.

첫 시작은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 운영되는 페이스북 페이지였다. 메일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각종 음식 사진, 맛집 정보 등을 제보 받았고, 그 가운데 신뢰성 있는 정보들을 추려서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제보되는 글 가운데 홍보를 노린 글을 가려내기 위해 대형 프랜차이즈나 대중적이지 않은 고가의 음식, 고가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자체적으로 걸러냈다. 이렇게 사람들의 직접적인 경험, 생생한 후기를 담은 내용들이 올라오자 팔로워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좋아요 건수, 댓글 수, 공유 횟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제보 건수도 하루에 몇 천 통씩 쏟아졌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지 2년도 안 돼서 약 290만 팔로워를 확보했고, 바이럴 효과를 측정해본 결과 하나의 콘텐츠가 일주일 간 도달되는 범위는 1,100만 명 이상에 달했다. 단순한 정보 공유 플랫폼이 아닌 강력한 마케팅 채널로 성장한 것이다.

실제 그리드잇은 SNS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페이스북 팔로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차례 진행한 바 있다. 2014년 11월 17일 피자 브랜드 P사의 신제품이 런칭 됐는데, 이것을 페이스북 채널을 이용해 유저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유저 300만 명 이상에게 도달된 직후 P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결과 게시물을 노출하기 이전보다 평균 4배 이상 주문 건수가 늘어났다고 했다. 또한 댓글을 통한 소비자 반응을 토대로 제품의 장단점과 고객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그리드잇은 자체적인 실험을 통해 새로운 외식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1월부터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앱을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과 동일하게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 들어온 각종 음식, 맛집 정보들을 공유하는 한편, 외식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신제품이나 각종 이벤트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위치 기능을 기반으로 유저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맛집을 알려주는 서비스 등 사업 확장 계획도 가지고 있다.

표 2. 소비자와 업체가 느끼는 문제점
표 2. 소비자와 업체가 느끼는 문제점

전화성 glory@cntt.co.kr 씨엔티테크의 창업자, CEO이자 현재 KBS 도전 K 스타트업 2016의 심사위원 멘토이며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KAIST 학내벤처 1호로 2000년 창업하였고, 전산학의 인공지능을 전공하였다. 14년간 이끌어온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 플랫폼 독보적 1위로 연 1조 규모의 외식주문 중개 거래량에 9년 연속 흑자행진중이다. 경제학을 독학하여 매일경제 TV에서 앵커로도 활동했고, 5개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푸드테크, 인공지능, 컨텐츠 생산, 코딩교육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한 엑셀러레이팅을 주도하고 있으며, 청년기업가상 국무총리상, ICT 혁신 대통령 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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