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가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차의 역사는 몇 천년에 걸쳐서 이루어졌지만, 커피는 불과 몇백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17세기부터다. 커피는 아랍에서 시작해서 유럽을 거쳐 신대륙까지 퍼져나가면서 시민혁명을 이끌어내고 산업혁명의 음료로 각광을 받았다. 미국 남북전쟁과 1차대전, 2차대전에는 전쟁의 음료이기도 했다. 병사들의 잠을 쫓고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총과 함께 기본 군수품으로 보급이 되었다.

우리나라 커피의 첫 공식기록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를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봤자 이제 100년이 조금 넘는 정도의 ‘신생음료’라고 할 수 있다.

이 낯선 검은색 음료인 커피는 어느 새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어 하루라도 커피를 안마시면 어딘가 허전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차를 제치고 커피가 음료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커피가 갖고 있는 맛고 향, 그리고 그 효능에 있다.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에서 힘이 나는 것은 카페인의 효과이다. 바쁜 한국인들에게 카페인의 각성효과는 노동의 음료로서 역할을 했다. 바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믹스커피가 그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카페인으로 커피의 매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만약 그랬다면 커피는 지금의 고농도 카페인 음료에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페인만 충전한다고 마음까지 충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커피의 진짜 매력은 커피만이 갖고 있는 강렬한 맛과 폭발적인 향에 있다. 사실 우리 입안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맛은 다섯 가지밖에 없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최근에 일본의 과학자들에 의해 더해진 맛이다. 음식의 감미로움을 느낀다)이다. 매운맛과 떫은맛은 통각이나 촉각이 느끼는 맛으로 순수한 맛이 아니다.

그러나 맛이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촉감과 향기가 중요하다. 커피가 입으로 들어갔을 때 입안 점막에 닿는 느낌, 목으로 넘겼을 때의 느낌, 그리고 삼킨후에 목에서 코로 퍼지는 향기가 총 동원되어서 한잔의 커피의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모습의 검은음료인 커피는 수백가지의 풍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미각과 후각을 자극해서 기분이나 감정까지 건드리는 마법의 음료가 되는 것이다.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핸드드립 커피는 이런 커피의 순수한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핸드드립 커피의 맛에 매혹이 되어 이렇게 오랫동안 커피트럭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내가 몰고 다니는 노란색 커피트럭 ‘풍만이’에는 커피 생두를 십여가지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할 때마다 트럭 안에서 손으로 돌려가면서 커피를 볶는 수동식 로스터로 커피를 볶는다. 커피는 핸드드립 커피 메뉴만 있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끓이고 직접 볶은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서 커피를 만든다. 단순하지만 향기롭고 맛있는 최고의 커피가 나온다. 만약 핸드드립 커피가 아니고 머신을 쓰는 커피트럭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다니면서 커피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제대로 볶아진 신선한 원두, 이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낼 수 있는 핸드밀이나 전동그라인더, 드리퍼와 종이필터, 눈금이 그려져 있는 드립서버, 물줄기를 일정하게 내릴 수 있는 드립 전용 주전자, 그리고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된다.

이중에서 당장 없어도 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기 위해선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것이 좋다. 핸드밀을 제외하고 나머지 드립세트 모두는 10만원 아래로 구입할 수 있고, 유리 제품을 깨뜨리지만 않는다면 오래 쓸 수 있으니 취미를 위해 투자하는 비용치고는 무척 싼 편이다. 드립전용 주전자인 드립포트는 제조사 브랜드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다. 일본산은 10만원을 훌쩍 넘지만 대만산이나 중국산 드립포트는 2~3만원에 비슷한 모델을 구입할 수 있다. 핸드밀도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사는 것이 좋다. 싸면서도 성능이 무난해서 ‘국민 핸드밀’로 일컬어지는 칼리타 KH-3 모델도 3만원~4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좀더 비싸더라도 고급인 핸드밀이나 전동 그라인더를 구비하는 것이 커피를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핸드드립 도구를 장만했다면 그 다음에는 ‘제대로 볶아진 신선한 원두’를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요즘에는 대형마트에서도 원두코너가 따로 있고, 온라인으로 싸게 구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잔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양이라면 가격보다는 질을 따져서 구입을 하는 것이 좋다. 고급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구입해서 직접 내려마신다면 커피 한 잔에 1천원~2천원이면 충분하다.

좋은 커피원두를 구입하는 요령을 알려드리겠다. 일단 집 근처나 회사 근처에서 직접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보고 직접 가서 커피를 마셔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내주는 곳을 찾아 단골로 삼아야 한다. 이런 곳들은 가게에서 커피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카페 주인장에게 원두를 추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커피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핸드드립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커피 원두는 한 종류만 사지말고 2가지에서 3가지를 고르는 것이 좋다. 핸드드립 커피의 매력은 싱글 오리진(단일 생산지) 커피의 개성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종류만 먹다보면 금새 질리고 기억도 잘 되지 않는다.

핸드드립 세트와 맛있는 커피 원두를 준비했다면 이제 핸드드립 커피의 세계를 행복하게 탐험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다음에는 각 대륙의 생산지별 커피의 매력을 탐구해 볼 예정이다.

이담 login@naver.com 커피트럭 여행자. 서울에서 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이주해서 10년 동안 산 경험으로 ‘제주버킷리스트 67’을 썼다. 제주 산천단 바람카페를 열어서 운영하다가 2013년에 노란색 커피트럭 ‘풍만이’이와 함께 4년째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커피’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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