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지위를
나타내는 세상

백 년 만의 폭설이라는
어느 날 저녁의 아파트숲

폭이 좁은 도로에서
내로라하는
두 대의 차가
마주쳤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다
서로를 위해
점잖게
헤드라이트를 꺼주었다

짧고도 긴 시간.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
마침내
눈에 불을 켜고
소리 없이 내질렀다

“니가 비켜라!”

작가의 말
자동차는 남자의 장난감이라는 말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다. 여성운전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직접 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성들에게도 차가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고 하나의 장난감이 되었다. 차는 이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자존심을 나타내는 물건이다. 어떤 차를 운전하느냐에 따라 경적 소리의 강도와 빈도가 다르고, 차에서 내리고 타는 모습이 다르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고급차를 탈수록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경적을 울린다. 또 고급차를 탈수록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여유 있어 보이고, 때로는 거만해 보이기도 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차가 달라지면 운전 패턴이나 예절도 달라진다.

보복운전, 난폭운전 등의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차만 타면 배려의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평상시에는 점잖은 사람도 차만 타면 조금씩 이상해진다. 이러한 일들은 차체가 운전자를 가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일종의 익명성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운전을 하지 않고 얼굴이 드러난 상태에서는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보복보행이나 난폭보행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만약에 차체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큼지막하게 쓰고, 자신의 얼굴 사진을 크게 붙이고 다닌다면 보복운전이나 난폭운전은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이동 수단으로 삼으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집에 바퀴를 달고 도로를 주행하라고 하면 도로에 여러 차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큰 아파트 차, 좁은 아파트 차, 빌라 차, 다가구 차, 원룸 차, 고시원 차, 노숙자 차 등. 아마도 사람들의 운전 태도가 집의 규모나 가격에 따라 많이 다를 것이다. 차들이 몰려 도로가 꽉 막힐 때, 차량 행렬이 뜸해져 도로가 한산할 때 등 상황에 따라 각 차주들의 운전 속도나 예절들도 많이 다를 것이다. 이제 차는 입는 옷과 같다. 좋은 차를 가질수록 더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운전 습관도 대물림이 된다. 부모가 자녀를 태우고 다니면서 올바른 운전 습관과 예절을 보여준다면 논란이 되는 각종 운전 사고도 큰 폭으로 줄 거라고 확신한다. 요즘은 학생들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다. 자녀가 타고 있을 때 ‘EC’나 ‘AC’라는 단어를 흥분하며 내뱉는 대신에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에게 좋은 운전 습관을 갖게 해줄 것이다. 자녀가 어려서 잘 모른다고 운전을 막 하거나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면, 운전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주는 꼴이 된다. 위급하지만 않다면 언짢은 상황에서도 ‘저 사람이 저럴 만한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해보자.

최성원 기자 psi1004@nextdaily.co.kr 컨설팅과 브랜드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아행컴퍼니의 대표이자 시인이다.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오랫동안 국어 강사를 하며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칼럼, 인기 브랜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재로 한 기사, 우리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 조명하는 ‘최성원의 초이스 인터뷰’ 등을 차례로 연재할 예정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