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의 출판사에서 여행서 기획안이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댄싱 위드 파파’ 탓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인 이슬기 씨는 그야말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저자였다. 여성으로도 쉽지 않은 건축공학과 출신에 잘나가는 삼성을 박차고 나와서 은행에서 30년 근무하다 퇴직하신 아빠를 위해 여행도 다녔었고 여행 책을 내서 아빠의 환갑 기념 선물을 드리겠다는 야무진 포부가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기획안이 들어오면 여러 단계의 회의를 거쳐 출판을 결정하는 데 특히 집필 경험이 없는 저자의 책은 큰 모험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앞서야 한다. 우리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자의 경쟁서 분석이 잘 되어 있었고, 책을 내려는 집필 의도가 명확했고, 무엇보다 컨셉이 좋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의 여행기는 있었어도 아빠와 딸, 그것도 결혼적령기(요즘은 그런 개념이 거의 희박해졌다)의 딸이 여행 가는 설정은 흔치는 않았다. 아버지이자 공저자인 이규선씨와도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따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셨고 퇴직하시고 방향을 못 잡고 있을 때 따님의 권유로 여행을 다니면서 힐링도 되고 나름의 방향을 찾게 되셨다고 한다. 이 책은 2권도 출간 준비 중이다.

자기 컨텐츠 경쟁력 분석이 중요
‘댄싱 위드 파파’ 이후에 들어온 기획안 중에는 공군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신 심리학과 교수님의 힐링 여행기, 글이라면 자신 있다는 대학원생의 여행기, 이미 베스트셀러를 내보았다는 한 저자의 이란 여행기 등 여행서 기획안이 쏟아졌지만 앞서 밝혔던 이유로 – 글이 너무 많고 문장이 유려하여 여행서 특유의 사진과 생각의 여백을 주고 가볍게 가려면 분량이 방대해 진다거나, 경쟁서 분석이 잘 안되어 있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을 드려야 했다. ‘댄싱 위드 파파’의 경우 부친에게 존대어를 써야 하는 일반의 상식을 벗어난 반말투를 사용하는 이른 바 ‘키치(kitsch)’한 감성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먹혔다고 본다. 책을 내 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저자의 감성과 열정이 프로 작가들보다 선택된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그만큼 전문서가 아닌 일반 단행본의 경우 시장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저자도 미리 기획안을 내기 전부터 자기만의 컨텐츠의 경쟁력, 시장에서의 경쟁력 등을 살펴야 한다. 1편을 낸 후 이슬기 저자는 아빠와 라디오 출현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고, 엄마와 여행도 다녀오는 여유도 가졌다.

출판사나 기획사에 지인이 있다면 적극 활용
‘딴지영진공’은 속칭 블라인드 테스트같이 원시 원고를 받고 이 책이 출판 타당성이 있는지 검토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팟캐스트 같이 누적된 콘텐츠가 있는 경우 구독자 수나 어느 정도는 독자의 기호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있었지만 글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 어려웠다. 마치 2004년의 ‘장미 가족의 포토샵 교실’처럼 원시 원고를 100가지 강의 팁으로 재단하는 것처럼 또 글을 안 써본 저자들의 원시 원고를 일일이 편집 틀에 맞게 수정하는 것처럼 편집자의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카페 회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딴지영진공’은 일단 재미있었다. 나중에 책을 진행하면서 보니 저자진 중에 책을 여러 권 낸 장근영 박사나 조일동 박사 같은 분들도 섞여 있었다. 이 책은 이 책 저자들의 PM격이었던 차양현 실장이 성안당의 최옥현 상무님께 메일을 보내 출판이 가능한지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처럼 필자 지원서나 기획안, 또는 원고를 출판사로 보냄으로써 책 출간이 진행이 되고, 첫 시작은 필자 지원서나 책을 출판하려는 동기, 경쟁서 분석 등을 잘 하면 용기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출판사의 저자 모집 양식과 필자 지원서에서 요구되는 것들
필자가 근무하는 성안당의 저자 모집 양식은 간단하다. 인적 사항과 도서 가제목, 예상 분량, 기획안(자유형식) 등을 첨부하는 형식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필자 지원서 양식은 1. 이 책은 어떤 책인가? 2, 경쟁 상품 및 유사 도서 분석 3. 마케팅 계획 4. 특별히 원하는 편집 방침 및 디자인에 대한 의견 5.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저자 모집 양식이지만 필자 지원서 양식처럼 치밀한 기획안을 받을 수 있게 평범한 분들이 준비를 더한다면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낼 때는 출판사에 기획안을 내는 방법도 있고, ‘패브릭 로맨스’처럼 평범한, 취미로 패브릭을 했던 한 개인이 편집자와 알게 되어 책을 내도록 권유 받은 경우, ‘이중구의 파워포인트&프레지’처럼 앤미디어 같은 기획사와 인연이 닿아 책을 내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경로와 루트는 열려 있고, 기획자들은 훌륭한 모래 속의 진주를 발굴하느라 애쓰고 있다. 운좋게 이렇게 발탁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출판사의 저자 모집 기능을 노크해 보는 것이 첫 시작이 될 것이다.

책은 퍼스널 브랜딩의 훌륭한 도구
“요즘은 퍼스널 브랜딩 시대”라이고 “책 만한 퍼스널 브랜딩 도구가 없다”라는 ‘성공 책쓰기 카페’의 조영석 소장 멘트가 마음에 들어 인용해 본다. 직장 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찾아 1인 출판, 1인 홍보대행사, 1인 기획사 등이 보편화되는 시대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해졌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은 직장을 그만 둔 후 최근 강남에 직장인을 위한 책방을 차린 일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그 만큼 ‘누구~’ 하면 알 수 있는 퍼스널 브랜딩을 정립하는데 책 만한 것이 없다.

필자가 작년 12월에 출간 마무리를 한 ‘성공 이미지 메이킹’은 국제대 권혜영 교수가 2년간 틈틈이 모은 자료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 분은 요즘 여기 저기 강의에 불려 다니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 ‘피부관리실의 성공가이드’를 낸 것이 교수 임용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고 겸양의 표현을 할 정도로 책은 일반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맨땅에 헤딩하기처럼 어렵고 또 미미하겠지만 끝은 창대할 것으로 독자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다. 내가 직장인이라면 또는 내가 강의를 하는 분이라면 또는 취미 생활로 어떤 특기가 있다면 출판사의 문을 거침없이 두드리되 치밀한 기획안과 준비를 하여 두드려 보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조혜란 hrcho@cyber.co.kr 10여 년 동안 IT 매거진 분야에서 PC월드 기자, PC라인 수석 기자, 프로그램세계 편집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공학대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에는 베스트북 실장으로 '장미가족의 포토샵 교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뒤 서울디자인전문학교 입학관리과에 입사했다. 2014년부터 성안당에 입사해 현재는 부장으로서 IT 전문서, 각종 번역서 외에도 자기계발서, 마케팅, 회계, 실용서 등 다양한 책들의 출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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