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킹스필드 공항의 검역은 예상대로 철저했다. 몇 가지 준비해간 상비약을 있는 그대로 신고했더니 어떤 품목인지 자세하게 묻는다. 몇몇 여행객들의 가방을 열고 검색하는 세관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자세한 설명 덕분인지, 아이와 나는 그대로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때가 2014년 7월이다.

참 소박한 시드니 공항의 모습이 의외였다. 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의 명성과 다른 규모와 시설에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 흥분보다는 안도와 옅은 미소가 퍼졌다. 더욱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곳의 공기다. 낯선 곳에 가면, 낯선 곳 특유의 냄새가 있다. 가까운 일본마저 그러한데, 시드니는 서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잠시 이 사실에 흥분했다. 모녀의 단기 타국살이 1편이 잘 마무리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이다.

시드니 킹스필드 공항에서 캔버라까지 고속버스로 이동했다. 3시간이면 도착한다. 10시간 30분이라는 비행 내내 쌓인 피로감이 허리로 몰려왔다. 남반구의 7월, 한 겨울이 무색하게 땀에 젖은 내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불편하지만 3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릴 때였다. 중간에 휴게소를 거치지 않고 캔버라로 곧장 간다.

시드니에서 캔버라로 오는 내내, 바깥 풍경은 딱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땅과 하늘이 넓다, 고목을 벤 자리에 목초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어디나 비슷해서 지루하다. 어리석게도 면면을 살피지 않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아직은 여기까지 별로 낯설 것도 색다를 것도 없다. 뉴질랜드가 아기자기한 동네라면, 이곳은 거대하다 못해 장엄해 두렵기까지 하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게 2014년 7월, 어느 일요일, 우리 모녀가 캔버라에 도착했다. 아직 기억한다. 황당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던 그때를. 과자 봉지 같은 쓰레기만 간간히 쓸쓸히 날리던 거리, 오고가는 사람들도, 택시도 보이질 않고, 캔버라는 그야말로 사막같은 황량한 분위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승객들이 다 터미널을 빠져나가고 우리 모녀만 터미널 벤치에 덩그러니 남았다. 결국 사정상 나오질 못한 지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콜택시를 불렀고, 초조하게 기다리며 달리는 동안, 기대와 사뭇 다른 전개에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간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산산히 부서진 난파선의 몰골로 일주일을 버텼다. 나의 무모함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 여긴다. 아이의 입학 절차 진행, 쉐어하우스 구하기, 근거리 지역 파악 등 초기 정착을 위한 모든 것을 휴대폰 정보에 의지한 채, 맨발로 뛰어다녔다. 나중에 따로 호주의 쉐어하우스 문화와 단기 정착에 얽힌 여러 기억과 추억을 풀어놓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당시는 한국행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나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도 멜번도 아닌 캔버라(Canberra)다. 유명세는 두 도시 틈에 끼어 보잘 것 없지만, 알고 보면 수도로써의 면면이 잘 갖춰진 도시다. 수도 캔버라의 역사는 1911년에 시작된다. 시드니와 멜번 간의 수도 분쟁에서 그 사이에 낀 캔버라가 최종 확정되었다. 본격적인 개발은 1913년부터. 미국의 건축가 벌리 그리핀(Burley Griffin)의 설계도가 당선되면서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1963년 건축가의 이름을 딴 거대 인공 호수 벌리 그리핀이 완성되면서 현재외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둘레가 40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호수는 건조한 캔버라의 생명수이자 랜드마크다.

캔버라는 우리 몸에 빗댈 수 있는 도시다. 도시가 살아있다는 표현을 곧잘 하지만, 캔버라 중심에 서서 국회의사당과 국립전쟁기념관을 바라보거나 에인슬리 산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막히는 곳이 없이 일직선으로 곧게 뚫려있다. 우리 신체가 이와 같다면 따로 명상이 필요 없을 것이다. Parliamentary triangle이라 불리는 삼각형 구조 안에 국회의사당을 꼭지점으로 벌리 그리핀 호수를 중앙에 놓고 중요한 대다수의 정치적, 역사적 건물이 들어서있다. 국회의사당이 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전쟁기념관과 딱 마주 보고 있다. 정치인들이 전쟁기념관을 매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곧잘 잊어버리는 인간의 특징상,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캔버라 중심은 이렇게 균형과 조화, 소통과 발전, 여기에 안정이라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런 최근 캔버라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른 높은 학력 수준과 공무원 중심의 도시, 국립대학의 존재와 안전 도시라는 이미지는 캔버라 유입 인구를 가속화시켰다. 도시 전체가 공사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뉴타운과 도로 건설 현장이 많다.

여전히 정원 도시라는 캔버라의 명성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이곳 기라랭(Giralang) 주변만 해도 Crace, Gunghalin, Casey, Lawson 모두 뉴타운이다. 가장 작은 대륙이자 대륙 전체가 한 나라인 호주는 세계에서 주택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다. 올드타운들의 집들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롭게 형성돼 있다. 주택은 앞마당, 뒷마당, 주차장이 기본이다 보니 정원을 갖춘 집들이 대부분. 물론 집주인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집은 정글과 같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뉴타운은 정원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있어도 아주 작다. 집들 간의 간격도 별로 없다. 5층 이하의 아파트들이 도시 외곽을 중심으로 성벽처럼 들어서고 있다. 고층 아파트들도 각 지역의 중심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뉴타운과 올드타운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로 마주한다.

뉴타운 주변은 숲이 조성되기 어려운 구조다. 땅을 말끔히 정리해서 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들만 일렬로 나란히, 덩그러니, 땡볕 아래에 놓여 있다 보면 된다. 자연이 빗겨간 뉴타운 건설 현장을 보면 체한 듯 답답해진다.

그 틈에 캥거루들은 서식지를 많이 잃었다. 올드타운의 숲 부근에서는 수십 마리 캥거루떼를 자주 만난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개체수 조절로 2,000마리 이상이 호주 전역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매일같이 캥거루를 볼 수 있었다. 점점 이들의 땅이 뉴타운 조성으로 사라져간다. 분명, 로드킬로 목숨을 잃는 개체수도 늘어날 것이다. 웜뱃, 캥거루를 비롯해 동물 사체를 심심찮게 도로에서 만난다.

어차피 세상은 중간없이 양극 사이를 오고 간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지만 한 몸인 모습으로 말이다. 도시 중심부가 랜드마크인 캔버라, 정원 도시로 걷는 곳이 그림이 되는 곳, 그러나 아파트와 뉴타운 건설 현장으로 자연을 잃어가는 곳, 겉보기엔 재미없고 지루한데, 알고보면 나름의 즐거움이 있는 곳, 이 역시도 캔버라다. 화려하지 않으나 구식은 아니다. 바쁘지 않지만, 느리지는 않다. 있을 건 다 있지만 풍부하지는 않다. 재미있지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캔버라는 그런 곳이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아이와 함께 머물면서, 두 번째로 로컬처럼 살아보는 중이다. I AM 수행과 명상하는 삶을 추구한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그들의 세계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의 하늘과 구름, 별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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