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에서의 하룻밤 숙박은 무척 낭만적일것 같지만 실상 지내보면 그냥 그렇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 와이너리마다 특색있는 와인을 즐기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는데 내입에는 달콤한와인 쓴와인 떫은와인 정도로 나뉘어져서 큰 의미가 없다. 멀리 코카서스산맥이 보이는 전망이 와이너리와 어우러져서 좋은 정도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샤또라 해도 2박은 지루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허니문여행을 온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허니문들이야 감옥에 둘이 가둬놓는다해도 좋을테니 상관없겠지만 와이너리 2박3일은 우리같은 성향에는 지루할듯 하다.

체크아웃하는데 지배인이 여전히 불친절하다. 직원들은 상냥한데 지배인은 거만하기 짝이없다. 거만한 사람에게 친절할 이유가 없다. 나도 거만한 자세로 계산을 치루고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상대방이 거만하게 나오는데 내가 동막골 아가씨도 아닌데 헤실헤실 웃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묵었던 와이너리를 떠나서 그래미쪽으로 달리는데 계속해서 와이너리들이 이어진다. 다양한 등급의 숙소들이 보인다. 현대식 리조트부터 소박한 민박와이너리까지 다양하다. 와인을 좋아하면 이런 길에서는 며칠을 머물러도 좋겠다싶다. 남편에겐 그저 지루한 포도밭이다.

그래미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닫혀있다. 마을입구에 차를 세우고 언덕위 교회로 올라갔다. 입구에 앉아있는 여인이 초를 판다. 프레스코화가 아름다운 교회다. 아침산책 제대로 했다.한바퀴돌고 내려와서 라고데키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라고데키국립공원은 국립보호구역이라 관리가 잘되어있다. 입구에 비지터센터가 있어서 들어갔다.

한공간에 남여화장실이 붙어있다. 여자화장실을 두드리니 남자가 대답을 한다. 기다리다 잘못듣고 답했나싶어서 또 두드렸다. 다시 남자가 대답한다. 다리가 꼬이는데 물내려가는 소리가 여러번 들린다. 큰일을 크게 봤나보다.

드디어 남자가 나온다. 내가 여자그림을 가르키면서 웃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겸연쩍게 웃는다. 들어가서 변기를 열심히 닦고 앉았다. 닦았는데도 찜찜하다.

비지터센터직원이 친절하다. 국립공원안내도잎에서 열심히 설명해준다. 트래킹코스가 3개가 있다. 6시간 7시간 3박4일 3개중에서 하나 할까 고민하다 포기했다.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인데 사진보니 우리나라 폭포들보다 나을게 없다.

거기다 컨디션도 좋지않다. 지금은 아르메니아여행을 위해 체력을 충전해야할 시점이다. 놀망놀망 잘먹고 잘자고 쉬면서 다녀야 다음을 기약할수 있다. 대신 국립공원산책로나 한바퀴 걷기로 했다.

1번부터 코스따라 걸었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들이 키도 크다. 고개들어보니 겨우살이들이 높이 달려있다. 몸에 좋은 겨우살이인데 하늘가득 달려있다. 유럽쪽에서 미슬토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걸로 아는데 이쪽은 아직 모르나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청소년같아보이는 애들이 손을 흔든다. 우리도 손을 흔드니 오라고 부른다. 가까이 가보니 중학생정도 되어보인다. 근데 차차를 권한다. 우리나라같으면 말도 안될 일이다. 어린것들이 어른에게 보드카를 권하다니... 사양했다.

차차는 와인증류주인데 50도가까이 되는 조지아 술이다. 술기운이 있어보이는 이쁜 소녀가 관광청직원처럼 인터뷰를 한다. 어디어디 여행했냐? 어디가 좋았냐? 조지아 좋나? 난 수험생처럼 정답맞추기 인터뷰를 해줬다. 잠시지만 즐겁게 놀다 헤어졌다.

국립공원숲속에는 여기저기 캠핑하기좋기 되어있다. 일부러 꾸며놓지는 않았지만 캠핑에 대한 규제가 없어보인다. 좁은 땅덩이에 캠핑장난립으로 몸살중인 우리나라입장에선 부럽다. 아무데나 텐트를 쳐도 규제가 없다.

시그나기를 향해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드디어 꼬불탕길로 접어들었다. 새로 포장한 도로라 상태도 좋다. 드디어 시그나기요새의 문을 지나서 마을로 들어선 순간 길이 막혔다. 공사중이다. 고지가 바로 20미터앞인데 기가 막힌다. 지도를 보니 25킬로 돌아서 올라가는 길이 또 있다.

낑낑거리면서 차를 돌려 다시 하산했다. 꼬불탕길이지만 포장이 잘되어서 다행이다. 서쪽에 있는 도로는 덜 꼬불거리고 길상태도 더 좋다. 25킬로를 돌아서 시그나기성벽의 다른 문으로 입성했다. 10미터 도로공사때문에 25킬로를 돌게 만들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시그나기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광장에 섰다. 확트인 전망에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호텔로 들어가서 제일 전망좋은 방으로 달라고 했다. 베란다가 두개나 다른 방향으로 있고 거실과 침실이 분리된 방이다. 전망보고 꺄악소리가 절로 난다.

일단 짐풀고 성벽산책을 나갔다. 성벽따라 가다가 성벽틈으로 교회가 있어서 들어갔다. 초라하게 생긴 아줌마가 깡통을 내밀면서 2라리 내란다. 교회는 입장료가 없는데 입구마다 적선을 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전에는 적선하지 않았는데 이젠 1라리정도씩은 한다. 그냥 내맘이 좋아서다. 2라리 달라고 해서 동전을 잔뜩 잡히는대로 줬다. 2라리가 넘는지 좋아하신다. 작은 적선에 누군가 좋아한다면 나도 좋다. 그걸로 충분하다.

성벽에 숨은 교회는 작지만 산아래 보이는 경치는 좋다. 교회지붕에서 산아래를 한참 봤다. 교회는 성벽틈에 끼어있어서 작고 아담한 교회다. 작지만 경건하다. 촛불하나없이 썰렁해서 3개를 사서 불을 밝혔다.

성벽따라 걷다가 땡볕에 지쳐서 호텔로 돌아왔다. 푹 쉬다가 저녁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에어컨빵빵하게 켜고 산아래전망을 보면서 음악들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천국에 음식이 빠져서 슬프다.

저녁때가 되어서 시그나기에서 제일 좋아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좋다기보단 비싸고 전망좋은 레스토랑이다. 와인도 시키고 바베큐 돼지 야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항아리팥죽도 시켰다. 고수넣지말란 말을 잊었다. 팥죽에 고수가 장식으로 올려왔다.

조지아음식은 짜고 고수를 많이 쓴다. 미리 말하지않으면 짜고 고수향나는 음식을 먹게 된다. 고수를 걷어내고 먹었다. 야채도 큰걸로 시켰더니 댑따 큰것이 왔다. 양이 많은게 아니라 큰걸로 구워오니 맛은 덜하다.

조지아에선 소고기하고 돼지고기가 가격이 비슷하다. 먹어보면 이유를 안다. 돼지고기가 훨씬 맛있다. 소고기는 송아지고기가 아니면 질기다 돼지를 방목하니 고기가 연하면서도 쫄깃거린다. 육식남편은 여러번 먹어보더니 송아지고기 아니면 돼지고기다.

시그나기에서 가장 높은 우리 방에서 멀리 산아래를 내다보며 밤을 “G이한다. 초승달이던 달이 어느새 뚱뚱해지고 있다. 여행자의 낯선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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