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망은 있나…실험성 돋보이는 흑백영화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민제홍 감독의 ‘소음들(The Noises)’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중 ‘비전’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자살을 결심한 준호(김준호 분)가 실행에 옮기려는 찰나, 처음 만나는 여자인 스칼렛(김민지 분)이 불쑥 준호가 혼자 있는 집으로 찾아온다.

준호의 자살은 본의 아니게 유보되고, 명백한 개연성을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준호는 스칼렛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게 된다. ‘소음들’은 인과관계의 모순을 통하여, 삶의 희망에 대한 불씨를 살려놓으려 한다.

그렇다고 준호가 가진 갈등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준호가 자살하려는 이유에 대하여 영화는 관심을 가지지도, 특별히 언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설명될 것 같은 부분을 생략시켜서, 감독은 관객들이 궁금증을 그냥 가지고 있게 만든다.

◇ 정지된 장면 속에 들리는 소음들로 시작된 흑백 영화

‘소음들’은 흑백 영화이다. 정지된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을 보면, 적극적으로 준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기 보다는, 그냥 준호의 삶이 카메라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칼라가 아닌 흑백의 영상은 죽음을 앞둔 준호의 삶의 색깔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살이라는 껄끄러울 수 있는 소재를 흑백의 영상은 강도를 낮추어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흑백 영화로 표현되기 때문에 준호와 스칼렛(김민지 분), 그들의 색깔, 그들 각자의 색깔은 무엇일까 상상하게 된다. 보통 카메라는 움직이면서 주변의 중요한 모습들도 다 보여주기 때문에, ‘소음들’의 정지되어 있는 카메라 주변에는 어떤 모습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통하여 공유하고 공감한다

‘소음들’이 이야기를 진행하여 나가는 스타일처럼, 주연을 맡은 배우들도 티나게 집중하며 몰입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준호 역의 김준호와 스칼렛 역의 김민지는 그런 캐릭터를 잘 소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서로 애정이 없는 말투로 툭툭 던지는 이야기는 그냥 오래 같이 산 사람들의 일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준호와 스칼렛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언쟁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설득되기 보다는 서로의 주관을 뚜력하게 전달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작가가 꿈인 준호와 미국에서 문학을 전공한 스칼렛이 준호가 쓴 작품으로 공유와 공감을 한다. 며칠 같이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애정없는 대화를 통하여도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게 된다. 이질적인 두 사람이 특별한 계기가 아닌 일상의 공유를 통하여 가까워진다는 점은 의미있게 받아들여진다.

◇ 소음들이 있는 영화인가? 소음들을 제거시킨 영화인가?

영화 초반에 어색해하던 준호, 당당했던 스칼렛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어색해하는 스칼렛, 상대적으로 당당해진 준호로 변모하기도 한다. 서로의 역할 변경은 서로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준호와 스칼렛이 둘만 있는 방안은 약간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작은 소음만 들어올 뿐 조용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목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배경음악이나 음향효과도 없이 적막하거나 대화만 이루어지는 장면이 더 많다.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은 소음들 속에서 진행되는 영화라기 보다는, 소음들을 제거시킨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특히, 실내 장면에서는 그런 느낌이 강화된다. 두 사람의 대화만 있는 실내 공간은, 마치 두 사람의 대화가 소음같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시야에서 해석하면, 내겐 소음이라고 일컬어지는 소리가 누군가의 삶에서는 현재형으로 살고 있는 소리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듣게 되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는, 누군가 어디로 이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살아있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소음들’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준호는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호되게 혼나기도 하고, 준호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통해 캘리포니아에서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119 구급 대원들에 당황하기도 한다. 어쩌면 준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모습들이 소음들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그런 해석이 타당하다면, 스칼렛은 준호에게 소음이 아닌 유일한 대상이 되는 것이고, 영화는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재해석될 수도 있다.

‘소음들’은 영화 시작시에 갈등을 던져주기 위하여 나타날 것 같은 소동들이 영화 말미에 나타나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더 크게 만든다. 보이는 모습을 제3자적인 시야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준호의 내면을 따라가거나 스칼렛의 내면에 집중할 경우 ‘소음들’은 감정의 변화에 따른 작은 재미들을 더욱 느끼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