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Autumn, Autumn)’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중 ‘비전’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한국어 제목 ‘춘천, 춘천’과 영어 제목 ‘Autumn, Autumn’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만큼, 스토리텔링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지금 현재의 공간과 시간의 모습, 정서가 더 중요한 영화이다.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이야기가 아닌, 수채화 같은 잔잔한 감수성이 화면 전체에 은은하게 배어있다.

◇ 주인공들이 위치한 춘천이라는 공간, 주인공들이 점유한 가을이라는 시간

‘춘천, 춘천’은 시간이동을 하는 영화가 주는 느낌과는 정반대의 설정 속에서 주인공들이 위치한 춘천이라는 공간, 주인공들이 점유한 가을이라는 시간을 차분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울에서 면접을 보고 고향 춘천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탄 지현(우지현 분)은 중년 커플과 나란히 앉게 된다. 영화는 지현과 중년 커플 각각의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지현은 서울에서 면접에 또 떨어지고, 술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청평사로 향하게 된다.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중년 커플인 흥주(양흥주 분)와 세랑(이세랑 분) 역시 청평사로 향하는데, 그들은 부부같은 느낌도 들고, 마치 초등학교 동창같은 느낌도 준다. 각각의 가정이 있지만, 불륜처럼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춘천, 춘천’이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흥주와 세랑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조적인 카메라와 담담한 대화는 관객 각자가 원하는 대로 흥주와 세랑의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열차를 타고 주인공들이 향한 청평사는 춘천과 가을의 집합체로 상징된다. 영화는 지현과 중년 커플이 일상을 벗어난 비일상에서의 활동을 한다고 느끼게 만들기 보다는, 현실이 아닌 비현실 속에서 현실 공감형의 소통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공간과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영화에서 소음이 배제된 부분의 관조적인 시야는 인상적이다. 영상은 근접 촬영도 있지만, 원경 촬영, 약간 비스듬하게 찍은 장면도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실험적이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촬영을 했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감독이 바라보는 면을 오롯이 따라가고 있다.

◇ 한국어 제목 ‘춘천, 춘천’과 영어 제목 ‘Autumn, Autumn’가 주는 뉘앙스 차이

감독이 주요 배역의 이름을 배우의 이름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도 눈에 띈다. 픽션을 써보거나 계획해 본 사람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 중에서 작명이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감독은 그러한 이유로 배우 이름에서 그대로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현실 공감형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 관객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도 자신의 역할에 감정이입하여야 하는데, 배역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과 같다면 더욱 몰입하여 감정이입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자신과 공통점이 있을 때, 관객들이 더욱 쉽고 깊게 감정이입하여 몰입할 수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춘천, 춘천’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는 두 가지 삶을 각각 따라가고 있으며, 영어 제목은 ‘Autumn, Autumn’이다. 정서가 다른 사람들에게 뉘앙스의 차이를 전달하겠다는 감독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명명법이다.

우리에게 ‘가을, 가을’이라는 제목보다는 ‘춘천, 춘천’이라는 제목이 더 와 닿듯이, ‘Chuncheon, Chuncheon’이라는 영어 제목보다는 ‘Autumn, Autumn’이라는 영어 제목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더 와 닿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춘천이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가 우리와 같다면 영어 제목을 그냥 ‘Chuncheon, Chuncheon’으로 하는게 어울렸을 수도 있다.

제목 속에서 같은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점도 영화 제목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이 영화가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드라마틱한 역동성이 아닌, 미묘한 디테일로 여백을 채우려고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 일상을 벗어났지만, 일상과도 같은 평온한 곳에서 그들이 채우고 싶었던 마음의 대화

‘춘천, 춘천’은 2014년 뉴 커런츠상을 받은 ‘철원기행’의 김대환 감독이 제작을 맡았고, ‘새출발’로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은 장우진 감독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이 이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우연히 만난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구하는 지현처럼, 일상을 벗어났지만 일상과도 같은 곳에서 그들이 채우고 싶었던 것은 마음의 대화를 통한 공감과 후련함, 그에 따른 평온함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첫 사랑의 기억을 포함하여 자신을 말하는 중년 커플은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게 된다. 두 사람이 말하는 톤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기 직전의 조용하면서도 떨리는 설렘처럼 잘 표현되고 있다.

대화의 내용을 보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마음 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각자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에게 회상하듯 이야기를 전달한다.

불안감에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는 흥주처럼, 관객에게 ‘나도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지현의 이야기, 흥주와 세랑의 이야기가 각자 다른 길을 가다가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영화처럼 봉의산 가는 길, 소양댐 휴게소, 청평사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춘천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미장센이 영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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