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운동이 치열하다.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선거 중에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현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을 후보로 지명했고 공화당은 부동산 사업가인 도널드 트럼프를 지명했다. 클린턴 후보는 영부인으로서의 경험과 8년 동안의 뉴욕주 상원의원, 2008년 민주당 경선 후보,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1기 국무장관 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관록의 정치 경험자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한 번도 선거에 나오지 않았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클린턴 후보가 노련한 정치가답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편이라면 트럼프는 화끈한 사업가답게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 ‘막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두 후보가 역사상 여론 조사에서 ‘호감도’가 가장 낮고 호감을 가진 사람보다 비호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Realclearpolitics.com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두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50%를 넘어서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는 호감도가 높은 후보가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유력한 두 후보의 호감도가 낮은 반면 군소 정당 후보의 지지도는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자유당 후보 게리 존슨이 8%의 지지를 얻고 있고 녹색당 후보 질 스타인이 2%를 얻고 있는데, 합해서 10% 정도나 된다. 이는 기존의 양당 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Realclearpolitics.com이 조사한 클린턴과 트럼프의 호감도와 비호감도 조사
Realclearpolitics.com이 조사한 클린턴과 트럼프의 호감도와 비호감도 조사

올해 선거에 많이 나온 단어 중에 하나가 ‘밀레니얼 세대’이다. 1980초에서 2000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인데, 지금 미국의 여러 세대 중에 가장 인구가 많아 정치가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세대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세대의 부모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라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화제가 된 것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했던 버니 샌더스를 열심히 지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들은 일찍이 클린턴을 지지했는데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은 밀레니얼 세대가 막후 정치에 대한 반감이 커서 변화를 주장했던 버니 샌더스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버니 샌더스가 클린턴보다 나이가 많아 베이비 붐 세대 이전의 ‘침묵 세대’에 속한다는 점이다

경선 후에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지명이 되고 샌더스가 결과를 승복하고 공식적으로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는데도 샌더스를 지지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클린턴 후보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오히려 클린턴 후보를 꺼리거나 자유당 또는 녹색당 후보로 지지 노선을 바꾸었다. 트럼프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고 극소수의 샌더스 지지자들만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가 왜 클린턴을 꺼리는 것인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뭘 원하는 것인지, 그 세대의 코드를 풀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코드를 풀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기성 세대에 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부모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한다. 클린턴 후보는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이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 후보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다른 밀레니얼 세대가 출발부터 선호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 후보도 베이비 붐 세대이지만, 클린턴 후보처럼 그 세대의 대표는 아니다. 트럼프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은 세대 간의 갈등보다는 이민자들에 대한 보수적 입장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인 클린턴과 과격한 트럼프에 비해서 야성을 대표하는 버니 샌더스와 군소 정당은 밀레니얼 세대에 매력적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그 매력의 원인을 알면 밀레니얼 세대의 코드를 풀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의 호황기였던 1980~1990년대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2001년 9월 11일 테러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들이 믿었던 견고했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었는데, 전쟁이 계속 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밀레니얼 세대는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적어지고 취직도 어려워졌다. 이들은 대학을 나와야 경쟁력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학비를 위한 융자를 받아 빚을 진 채 졸업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코드는 불신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 대기업에 대한 불신, 제도와 평가에 대한 불신이다. 이렇게 뿌리 깊은 불신 속에서 많은 변화를 주장했던 버니 샌더스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많은 변화를 주장하는 군소 정당이나 후보들은 그 자체가 매력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3기처럼 현행 정책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클린턴 후보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보수적으로 보이고 매력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속한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라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비슷한 양상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것 같지 않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9‧11 테러가 없었고 세계 금융 위기를 미국에 비해서 잘 넘겼지만, 근본적 흐름은 비슷하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는 민주화, 88올림픽,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한국은 독재 중진국에서 민주 선진국으로 변했다. IMF가 한국에게 미국의 9‧11 테러만큼 충격이 컸고 통계상 회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불신이 퍼졌다. 2000년대에는 성장이 둔화되면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져 더욱 불신이 깊어졌다.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불만과 불신은 한국과 미국에서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거품 경제가 꺼지고 불신의 시대가 시작됐다. 유럽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유럽 연합의 확장에 따라 2000년대 초까지 미국처럼 호황기를 누렸지만, 그 후에 불신이 계속 쌓여 2010년대에 더욱 심해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서 오늘날 불신이 지배하는 세계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불신이 지배했던 1930년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를 보면 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밀레니얼 세대에 깃든 변화이다. 변화가 오지 않으면 불신이 계속 쌓일 것이고 더욱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체계적인 계획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일본과 유럽도 그렇다. 20세기에 적합했던 체제는 이제 낡았다. 21세기에 맞는 체제를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가 올 때까지 젊은 세대는 깊은 불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젊은이들의 도전과 응전, 그리고 희망이 역사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래서 우리는 젊은이들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