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손태겸 감독의 ‘아기와 나(Baby Beside Me)’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중 ‘비전’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군 제대를 앞두고 있는 청년 도일(이이경 분)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순영(정연주 분)이 있고, 속도위반으로 낳은 갓난 아들 예준도 있다.

휴가를 나와 결혼 준비에 한창이던 도일은 예준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도일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순영은 집을 나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 ‘아기와 나’는 세상으로 나와 생활하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아기같은 나에게, 아기가 맡겨진 이야기이다. 불안한 청춘에게 맡겨진 아기는, 불안한 청춘을 성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 위로해준다며 상처를 주는 주변 사람들

‘아기와 나’에서 도일은 10대 시절, 집 보다 거리에 있는 시간들이 많았던 다혈질의 사내로, 군 제대 후 가정이 형성되면서 정신을 차리고 남들처럼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가출하여 도일을 만나 사귄 순영은 사려 깊지만 상처가 많으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사별한 뒤 도일 형제를 홀로 키운 억척 어머니(박순천 분)는 순탄하고 문제없는 삶을 바란다.

휴가 끝나고 복귀해야 하지만, 사라진 순영을 찾아다니는 도일을 보며, 도일의 친구들과 아는 형은 위로해준다고 하며 상처를 준다. 실제 생활에서도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는 것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문병을 와서 걱정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 이별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충고해준다며 상처를 주는 사람들…. 사람들은 상대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기 보다는, 상대방의 불행을 통하여 자신은 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위로와 포용을 할 수 있는 확실한 자신감과 진정성이 없이,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한 위로와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도일에게 향하는 위로와 동정이 일종의 작은 가해일 수 있다고 느껴지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이다. 젊은 부부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게 생기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서 도일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렇지만, 도일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도일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도일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자신이 가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못느끼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도일의 선택을 두고 위로와 안타까움으로 포장된 가해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스스로를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영화도 그런 면을 담고 있다.

◇ 허세를 부리는 연기도 잘 할 것 같은 이이경이 보여주는, 멍한 연기와 답답한 표정, 그리고 울분과 사랑

예준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도일은 순영에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서둘러 알고 싶은 마음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초조함과 불안감에 떨도록 만드는데 도일 역의 이이경은 그런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허세를 부리는 연기도 어울리는 이이경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와 닿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정신나간 멍한 연기 또한 실제 현실처럼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표현은 이이경뿐만 아니라, 순영 역의 정연주도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화 속 행동으로만 보면 너무나도 명쾌하게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연주의 표정과 움직임을 보면 용서하고 보다듬고 싶게 된다. 정연주는 관객들이 이이경과 같은 감정선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성장도 10대 청소년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놀이공원에 가자는 도일과 아이가 있으니까 동물원에 가자는 순영은 의견이 갈린다. 운동센터에서 트레이너를 뽑는데도 학벌과 자격증을 요구하기에 도일은 제대 후에 어떻게 생활을 해야할지 걱정이 많다.

관객은 도일을 불쌍하게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 미성숙한 청춘은 아직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벌써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보호할 능력과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는 청소년의 성장, 청년의 성장, 어른의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발전의 개념과는 약간 다른 성장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살 수 있을까 미래가 두려운 도일은, 정해진 것,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는 군생활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제대를 앞둔 현역병들의 불안감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더욱 커진다.

군생활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 학생들도 두려움을 겪는다.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입학과 입대 시기보다, 그곳에서 나와 사회로 향해야 하는 졸업과 제대 시기가 더 두려운 청춘들의 정서가 영화 속에 녹아 있다.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기와 나’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아기와 나’는 아이를 키우면 어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로 인해 성장하는 아빠의 모습은 이 시대 진정한 성장의 모습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기와 나’는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정서에 집중하면서, 그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사회 전체적인 면은 관객이 알아서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0대의 청소년도 성장되기 보다는 성장하여야 하는데, 청춘, 어른들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적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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