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앵콜을 부르자
너에게, 나에게
우리의 삶이 비록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연주와
같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이
최선의 연주다
우리 삶의 마디가 끝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
진실한 눈빛을 담아,
우렁찬 목소리로,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앵콜을 외치자, 앵콜!

작가의 말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우리가 외치는 ‘앵콜’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원래 발음은 ‘앙코르’로 프랑스어 표기로는 ‘encore’이다. 앙코르는 ‘다시’ 또는 ‘아직’이라는 의미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프랑스인들은 이제 앙코르를 쓰지 않고 ‘bis’를 주로 쓴다고 한다. ‘bis’는 라틴어로 ‘두 번’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인들도 자국어보다는 외국어가 더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앙코르는 연주자들의 훌륭한 솜씨를 높이며 박수 등으로 재연을 청하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청중의 박수와 환호에 대한 보답으로 다시 연주하는데 통상 같은 곡보다는 다른 곡을 연주한다. 대개 앙코르가 가능한 상황일 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상은 해 주고, 청중도 연주를 아주 못 하지 않는 이상은 앙코르를 외쳐주는 것이 매너다.

보통 한 곡 정도 연주를 하지만 연주자나 지휘자가 기분이 좋은 경우에는 그 이상 하는 경우도 있다. 공식 연주 시간과는 달리 앙코르 곡을 연주할 때는 연주자나 청중들이 함께 어울리게 된다. 오히려 이 시간이 더욱 흥이 난다. 아마도 공식 연주가 무사히 끝났다는 연주자들의 안도감과 그 동안 매너를 유지해야 했던 청중들의 해방감이 합쳐진 까닭일 것이다.

앙코르를 받으며 주목받는 연주자들을 보노라면 우리 각자의 인생도 어찌 보면 연주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이 크든 작든 저마다의 삶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앙코르를 외쳐주면 어떨까. 우리 주변의 절대 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연주자들이 앙코르를 받으면 기분이 좋듯이 우리도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칭찬은 보약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자가 아니어도,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화려한 스펙들이 아니어도 그들에게 앙코르, 아니 앵콜을 외쳐 주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의 응원에 힘입어 또 다른 연주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 삶을 마감하며 자신에게도 앵콜을 속삭이자. 내일 또 다른 멋진 연주를 펼쳐 보자고.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최성원입시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국어 강사를 하며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칼럼, 인기 브랜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재로 한 기사, 우리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 조명하는 ‘최성원의 초이스 인터뷰’ 등을 차례로 연재할 예정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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