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감독의 ‘시 읽는 시간(Time to Read Poems)’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중 ‘다큐멘터리 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이 작품은 감독이 만난 다섯 명의 자유로운 인물에 대하여, 인터뷰를 통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감독이 그들과 각각 만나게 된 계기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독이 말하는 자유는 낭만적인 자유, 물리적인 억압에 대한 자유를 뜻하기 보다는, 현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정형적인 삶과 행동,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은 ‘시’가 될 수도 있고, 시를 읽는 시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행동과 상황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내면과 마주하는 다큐멘터리

‘시 읽는 시간’은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허구성을 가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르이고,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큐멘터리 중 영화적 구성을 하고 있는 장르의 작품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의 특성상 다큐멘터리는 사건에 중심을 두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경우도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건이 중요하다.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은 행동과 상황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내면과 마주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점이 주목된다. 영화는 파주 출판 도시에 근무하였었고, 현재 3달째 백수인 33살의 여자 오하나와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오하나는 합정역에서 출근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섰던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줄을 서있던 사람들의 무표정하면서도 체념한 얼굴에 대하여 집중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의 불안감 속에 일원으로 있었던 오하나가 겪었던 사건보다, 그 사건 때문에 스스로 알게 된 오하나의 내면에 영화는 더욱 집중한다.

◇ 등장인물을 밖에서 따라가기 보다는, 감독이 그들의 삶 속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소통을 하는 다큐멘터리

‘시 읽는 시간’에서 김수덕은 한국영화아카데미 녹음실에서 20년 근무했고, 그후 미디어센터에서 행정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김수덕은 이수정 감독과 겨울철새를 같이 보러 가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김수덕이 겨울철새를 보러 가는 것을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독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 읽는 시간’의 주인공은 인터뷰에 응한 5명뿐만 아니라 감독을 포한한 6명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직접 주인공 중의 한 명이 되는 것이 과거에는 혹시 어색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오히려 더 다큐멘터리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를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인데,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세미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어 허구를 진실처럼 보이도록 만든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친숙감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PD가 진행자나 게스트 못지않게 직접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있기에. 이에 익숙한 관객들은 ‘시 읽는 시간’에서 이수정 감독이 다른 다섯 명과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 시를 읽는 시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시간이다

41살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안태형은 그림그리기와 취업을 반복한다고 한다. 공주 출생인 52세의 임재춘은 기타를 만들었으나 7년전 정리해고를 당한 뒤 30년 다니던 직장을 잃고 시위를 하고 있다. 거리에서 기타 노동자 밴드로 공연을 할 때 감독과 만났던 임재춘은, 도망갈 타이밍을 놓쳐서 10년째 투쟁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일본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하마무는 한국에 있을 때 일본 후쿠시마 지진이 일어났고,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일본사람이 달라지지 않아 놀랐다고 한다.

하마무의 이런 놀람에, 남북의 대치 상황을 무척 위험하게 생각하는 외국의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활을 하는 것이 떠올랐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내부에서 행동하는 모습의 온도차는 확연히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시 읽는 시간’은 5명의 인터뷰 대상과 감독의 이야기가 펼쳐진 후, 다시 돌아가 그들이 선정했거나 직접 쓴 시를 낭독하면서 공유와 공감을 추구하고 있다. 김남주 시 ‘자유’를 비롯한 시들과, 하마무가 직접 쓴 시 ‘살아있는 쓰레기’가 낭독된다.

‘시 읽는 시간’는 시가 아픔이나 고통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5명 각각의 생각과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한 영화에서 다시 5명과 스크린에서 만나서 한바퀴를 돌면서 시를 읽는 시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시간이 된다. 시가 있는 이야기, 시가 있는 시간, 시가 있는 영상 속에서 감독이 말하는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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