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얼마 전 제주도 출장 당시, 묘한 기운에 이끌려 ‘두모악 갤러리’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 김영갑씨가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사진 갤러리로 한라산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제주도 중산간의 광활한 풍경을, 삼다도의 숱한 바람을, 남녘의 꾸밈없는 햇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의 작품들 앞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김영갑 작가의 작품 보기 : http://www.dumoak.co.kr/)

숱하게 제주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에 담긴 풍경은 나의 시선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만약 그를 직접 만나게 되었더라면 따지기라도 하듯이 물었을 것 같다. ‘대체 이런 사진은 어디서 찍을 수 있는 건가요?’라고.

○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서 찍었나요?
십여 년 전, 필자가 공간정보 분야와 인연을 맺은 것은 특별히 지도를 좋아해서도 아니었고 내비게이션이나 위치정보 서비스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순전히 ‘사진’ 때문이었다. 모 블로그 사이트를 중심으로 신변잡기 중심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규모 친목 모임 형태가 꾸려졌다. DSLR 카메라 문화가 본격화된 것도, ‘똑딱이’라고 불리던 소형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것도 그 때였다. 매 시간 사소한 개인 일상이 글과 사진으로 포스팅되어 등록되었다. 나는 주로 주절주절 잡문으로 일상다반사를 적었으나, 주변의 지인들은 한 장의 멋진 사진을 통해 글로는 채우지 못할 찰나의 느낌과 풍경을 담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면서 매번 덧글로 물었던 질문이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서 찍었나요?’였다. 음식 사진을 봐도 식당의 위치가 궁금했고, 나무 사진과 꽃밭 사진을 보더라도 그것들이 서 있는 위치가 궁금했고, 일출과 일몰 풍경, KTX가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는 각종 풍경을 보면서도 이런 사진은 과연 어디를 가야 찍을 수 있는 것인가 궁금했다.

출사 포인트는 함부로 쉽게 공유하지 않는 사진작가들만의 노하우 중 하나였고, 그런 포인트를 지인을 구슬려서 한두 군데만이라도 알아내게 되면 마치 사진 내공이 업그레이드라도 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포늪의 노 젓는 뱃사공이 출몰하는 포인트라든지, 순천만의 S자 굴곡을 제대로 촬영할 수 있는 포인트라든지, 각종 출사 포인트에 대한 정보는 습득과 동시에 지도를 띄워서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이런 사진을 접할 때면 늘 촬영지가 궁금해진다 (출처 : 조정은 사진작가의 페이스북 <a href=
이런 사진을 접할 때면 늘 촬영지가 궁금해진다 (출처 : 조정은 사진작가의 페이스북 <a href=
https://www.facebook.com/jeongeun.jo.5)">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위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들과 함께 현장출사라는 것을 가고 나서였다. 분명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으나, 결과물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결코 나아지지 않는 카메라 스킬을, 장문의 출사 후기와 같은 허튼 ‘글빨’로 때우며, 사진은 현장의 느낌을 담기 위한 메모성 도구일 뿐이라고 자위하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진은 어디서 찍은 것인가?’는 늘 갖게 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며, 그 장소정보를 알아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비슷한 사진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들뜬 기대감 속에 지내고 있다.

○ 이미지 파일에 담겨 있는 위치정보
당시에는 휴대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근무하고 있었고, 카메라 프로그램에 위치 정보를 결합하자는 안건을 내었던 게 2004년 겨울이었으니,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난 일이 되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위치 샷(Witch Shot)’이었다. 위치를 찍는 사진이라는 의미로 작명하고,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마녀(Witch)’가 빗자루를 타고 여기저기 출사여행을 다닌다는 형태의 소개 페이지도 만들었다.

휴대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은 내부 개발자들을 통해서 진행할 수 있으나, 위치 값을 어떻게 획득해서 사진과 결합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GPS와 LBS, GIS에 관심을 갖고 접촉하고 이해하게 된 것도 이 목적 하나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사진 파일에 X, Y 좌표를 삽입하고 싶었고, 이것을 지도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자료조사 중, 그러한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며, 이미 그런 시도는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지 파일에 대한 규격인 JPEG2000에서 GPS 위치값에 대한 반영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디지털카메라의 사진촬영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EXIF(교환이미지 파일형식, exchangeable image file format) 속성 열람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한 상태였다.
다만 그 당시 촬영 디바이스들은 대부분 측위장치가 없었으므로 이러한 위치값을 가진 사진 파일들이 양산되지 않았었을 뿐, 규격 상으로는 이미 틀이 완성되어 있던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처럼 카메라와 GPS 일체형 장비가 발달되기 전에는 디지털카메라에서 촬영한 사진과 GPS 트래킹 도구의 트랙로그 정보를 ‘근접 시각(時刻)’ 기준으로 합성하는 머지(Merge) 방식으로 ‘위치값을 가진 사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디지털카메라와 GPS 센서가 함께 내장된 아이폰 출현 이후에는–다른 사용자들은 휴대폰에서 Wi-Fi가 된다는 것 때문에 열광했으나 필자는 단지 이 이유 때문에 흥분했었던 기억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 시 사용자가 위치정보를 함께 기록하겠다고 선택해 두면 아래 화면들과 같이 자동으로 GPS 측위값이 파일 정보에 삽입되고 있다. 또한, 각종 사진 등록 사이트나 지도 프로그램에 사진 파일을 로딩하기만 해도 사진 속 좌표를 디코딩하여 촬영 위치를 지도 상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촬영 위치가 궁금하면 파일 정보를 열람한다(좌), 이미지 파일 정보 GPS 측위값을 확인할 수 있다.(우)
사진 촬영 위치가 궁금하면 파일 정보를 열람한다(좌), 이미지 파일 정보 GPS 측위값을 확인할 수 있다.(우)

이미지 파일에 담긴 위도 및 경도 값으로 촬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파일에 담긴 위도 및 경도 값으로 촬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성산포 항구에서 찍은 우도 사진은 어떻게 표현하는 게 옳을까?
파노라미오(http://www.panoramio.com/) 같은 서비스를 대표적인 사진 + 위치정보 서비스 로 들 수 있다.(2007년 구글이 인수했던 이 서비스는 아쉽게도 올해 11월 4일 자로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있다.) 사진을 사이트에 업로드하면 사진에 포함된 위치값을 지도 상에 표시해 주므로, 그 주변에서 찍은 다른 사용자들의 등록 사진을 함께 열람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사이트다.

이런 류의 ‘지도 기반 사진 콘텐츠 등록 지원 사이트’를 훑어보면, 위치값 속성을 가진 사진에 대한 지도 상의 표현방법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UI를 적용한 듯하다. 지도 상에서 X, Y 좌표에 해당하는 곳에 각종 마커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주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마커는 단순하게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일 수도 있고, 아주 조그만 이미지 썸네일일 수도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 표현방법만으로 충분할까? 사진을 정적인 포인트 정보처럼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가 추가적인 의문사항이었다. 사진을 찍은 위치만큼이나 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촬영자의 위치가 사진 속 피사체의 위치와 다를 경우의 표현법’에 대한 것이었다. 사진 속 모습은 정적인 형태로 남아 있지만, 사진이라는 것은(특히 풍경사진의 경우에는) 일정 부분 ‘방향성이 존재하는 동적인 무엇’이 아닐까 싶다.

가령 ‘성산포 항구’에서 ‘우도’를 향해 찍은 풍경 사진이 있다고 치자. 이 사진 속에는 ‘우도’의 풍경이 담겨 있지만, GPS를 통해 측위한 사진 파일 속 위치정보는 ‘성산포 항구’ 좌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사진 제목은 ‘성산포 항구’ 사진은 아닐 테고, ‘우도 풍경’ 사진일 테다. 좀더 구체적으로 작명한다면, ‘#우도풍경 #성산포항구에서’라고 표현함이 맞겠지만, 지도 상의 사진 위치는 ‘촬영자’의 위치를 중심으로 지도 상에 표시되므로 ‘피사체’의 내용과는 달리 ‘성산포 항구’에 마커로 표현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지도 위 성산포 항구 포인트에 우도 사진을 올려놓은 것과 같다. N서울타워 전망대에서 한강 전경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다.

딱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지만 적확한 표현법이라고도 하기에도 난감하다. 이는 단순한 정적인 정보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지향점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동적인 정보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사진에 대해서 이런 표현방법은 어떨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할 때, 촬영 디바이스 내 GPS 측위값과, 지자기 센서에 의해서 파악된 방위값과, 촬영 컨디션에 해당하는 디지털줌 레벨 및 렌즈 종류 등을 인식하여 하나의 정보로 합성한다면 꽤 쏠쏠한 동적 사진정보가 탄생할 것 같다.

GPS 측위값은 촬영자의 뷰포인트를, 지자기 센서에 의한 Heading 값은 피사체가 위치한 곳을 가리키는 방위를, 줌 레벨 및 렌즈종류는 피사체와의 거리 정도를 나타낸다면, 이는 간단히 다음과 같은 UI로 지도 상에 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3차원 지도에 적용한다면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상하 각도까지 적용하는 정보 표현 UI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산포 항구에서 우도를 찍은 사진은 지도 상에 어떻게 표현해야 정확할까?
성산포 항구에서 우도를 찍은 사진은 지도 상에 어떻게 표현해야 정확할까?

지도에서 촬영자 위치, 카메라 방향, 피사체와의 거리를 표현하면 좀더 정확한 사진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지도에서 촬영자 위치, 카메라 방향, 피사체와의 거리를 표현하면 좀더 정확한 사진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보험처리를 위한 자동차 사고 현장 기록이나, 부동산 정보 현장 조사나, 군 작전 수립을 위한 조사 등에서는 정적인 정보로서의 일반 사진보다 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보가 될 것 같다. 매번 엄청난 데이터를 업데이트해야 하는 로드뷰나 스트리트뷰와 같은 콘텐츠 역시, 이러한 방식의 사용자 참여 정보를 보강한다면 더욱 새롭게 꾸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장 및 촬영 조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의 수록은, 그것을 서비스용 정보로 제공하든 않든 간에 상관없이 상당히 의미있는 정보로 쓰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진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다면 나같은 초보 포토그래퍼라도 비슷한 풍경 사진을 찍어보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불끈 솟지 않을까? 김영갑 작가의 중산간 사진 풍경 위치를 좇아 찾아가서, 바람과 햇살이 찾아들기를 학수고대하며 희망을 품고 있지 않을까?

더 즐겁고 유익한 사진과 지도의 만남을 꿈꾸며...

덧.
짧은 식견이라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서비스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주절거렸을 수도 있다. 혹시 이런 유사 서비스가 있다면 필자에게 귀띔을 바란다.

임영모 0duri@naver.com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GIS 분야에서 전통적 GIS보다는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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