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곤 감독의 ‘윤리거리규칙(The Distance between Us)’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중 ‘한국단편 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단편 영화이다. 서현(이수경 분)이 다니는 선덕예고는 남녀 간의 신체접촉을 금지하는 윤리거리규칙을 제정한다. 이 규칙으로 인해 700일 동안 병찬(장유상 분)과 만나고 있는 서현은 강제전학을 권고 받는다.

영화는 고등학교 학생들 간의 이성교제를 반대하는 학교의 결정에 대하여, 학생과 선생님의 입장에서 각각 바라본다.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면, 어느 한 쪽을 배타적으로 선택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둘 다 이유가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내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인터뷰

‘윤리거리규칙’은 학생과 선생님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때문에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을 주고 현실적이다. 선덕예고 미술과 입시반 학생인 서현과 미술과 담임인 최은진 선생님(김이정 분)은 서로 정반대의 시야에서 윤리거리규칙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영화는 초반에 두 사람의 인터뷰를 통하여 갈등을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명확한 갈등은 관객이 이 영화에서 누구에게 감정이입할지를 결정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서현과 같은 미술과 입시반인 민주(박소리 분)는 연예부장이다. 연예부장이라고 하면 연예를 활성화시키며 촉진시키는 부장으로 예상할 수도 있으나, 영화에서는 학교의 윤리거리규칙을 지키지 않고 연예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학생과 선생님의 갈등으로 이어가던 영화는 민주가 등장하면서, 윤리거리규칙에 대하여 학생과 학생 간의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 윤리거리규칙은 실제로 필요한가?

영화를 보면서 윤리거리규칙이 실제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선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는 선생님과 학생, 양측의 주장이 모두 다 완화되어 부드럽게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갈등의 극대화와 의견의 분리로 현재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공유와 공감을 위한 공간을 만든 감독의 선택이 영화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의견을 한 쪽으로 몰지 않고, 관객이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는데, 이런 면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다른 시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친구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청소년이 가진 생각과 결정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선입견이다.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서현 역의 이수경은 영화 속에서의 감정의 변화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대학도 가고 싶고 남친도 만나고 싶은 마음의 진정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마음의 결심을 한 후 냉정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현의 냉정해진 모습에 관객들은 병찬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병찬 역의 장유상이 억울한 울분을 표현할 때는 연기가 아닌 실제 모습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성교제 규제 법칙인 윤리거리규칙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영화가 던진 화두는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을 주고 있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윤리거리규칙’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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