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Merry Christmas Mr. Mo)’(이하 ‘미스터 모’)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과 내용읕 통해, 영화를 좋아하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시골 이발사 모금산(기주봉 분)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발소에 출근하고, 수영장에서 운동한 후, 같은 술집에서 같은 술을 마시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그가, 죽기 전에 한 편의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다.

◇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상이 연결된 느낌을 주는 영화

‘미스터 모’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흑백영화이다. 이발소 아저씨 모금산에게 학생들은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다. 왜 학생들은 모금산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할까 궁금증이 생기는데, 과거의 정서적 느낌으로 보면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특별히 궁금함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한국영화 회고전’처럼, 영화제에는 흘러간 영화를 볼 수 있는 섹션이 마련되는데, ‘미스터 모’는 그런 섹션에 어울리는 옛날 영화를 리마스터링한 느낌도 준다. 이런 느낌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일상이 연결된 느낌, 일상과 영화가 연결된 느낌을 주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정지화면인 듯 카메라와 등장인물이 모두 멈추어 있는 장면들은 관객들을 숨죽이며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미스터 모’는 그냥 흘러가는 영상에 관객들을 태우고 가기 보다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영화에 동참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동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정적인 장면이 있고, 그 정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도 연관되어 생각할 수 있다.

흑백 영상 안에 등장하는 흑백 TV 안에 아들이 등장하는 영상과 옛날 달력, 수영장, 이발소, 길거리의 모습 모두 한 순간과 시기로 한정되어 생각되기 보다는 연결되어 보인다. 일상의 반복은 그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부인이 떠난지 15년이 된 모금산은 수영장에서 만난 은행원 자영(전여빈 분)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자영 또한 그의 일생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점도 눈에 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미스터 모, 모금산의 아들 스테반(오정환 분)은 영화 감독이 꿈이다. 스테반은 “너 뭐하고 다니니? 이제 영화일은 안 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이런 톤의 대사는 아직 기성 감독이 되기 전의 신인 감독들이 만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 스테반이 들었던 말은, 일상생활 속에서 감독이 들었던 말일 수도 있다.

같은 시야로 바라보면, 이 영화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으면서, 감독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배우가 꿈이었던 모금산, 영화 감독이 꿈인 스테반, 스테반을 도와 영화를 찍게 되는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분)는 모두, 임대형 감독의 주변인물이 아닌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 기록과 기억 - 영화 감독이 꿈인 아들과 영화 배우를 꿈꿨던 아버지

‘미스터 모’는 ‘Chapter1. Mr. Mo's Routine 일상’처럼 각 장으로 나누어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마치 미스터 모의 일기 같은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일기는 개인사의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고,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또는 초단편 영화의 시나리오 원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일기를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 된 그 날에 있었던 영화같은 이야기를 반영하여 느낌과 함께 쓰는, 일종의 복원한 시나리오라는 뜻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미스터 모’는 아버지의 일기로 시작하여 아들의 일기로 이어지는 것 같은 영화인데, 영화는 시대의 생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볼 때 ‘미스터 모’가 보여주는 기록과 기억의 가치는,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시대의 생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감독이 꿈인 아들과 영화 배우를 꿈꿨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잔잔하게 흐르며 진행된다. 채플린을 닮은 복장과 연기로 모금산 역의 기주봉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 아버지 모금산이 쓴 시나리오는, 많은 한국영화에서 조연을 했던 기주봉이 주연을 꿈꾸며 썼던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착각도 하게 만든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에서 아버지의 어릴적 꿈, 아버지의 마지막 꿈,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이 모든게 하나로 연결된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담담한 모습은 관객들을 밝게 웃을 수도 마냥 슬퍼할 수도 없도록 만든다.

‘미스터 모’는 아버지가 찰리 채플린처럼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영화이자, 찰리 채플린에 대한 오마주이다.

◇ 아버지가 주연인 무성영화를 찍으면서 알게된 아버지의 이야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르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 사람은 한가지 모습과 한가지 생각만 있는게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도 그렇고, 복잡한 사람의 경우 그 정도가 훨씬 다양해진다.

누구와 통한다는 것은 어떠한 일부분만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나와 그가 공유하고 소통하는 부분에만 해당될 수 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상당히 잘 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이 “나에 대하여 뭘 알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친분을 다지는 자리에서 만나 같이 술 마신지 1~2년이 되어 이 사람과 생각으로 정신으로 통하는게 많아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생겼지만, 실제로 일을 같이 해보면 10일도 안되어서 더 이상 만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스터 모’는 아버지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한 아들이,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 간극은 서로 공통된 것을 공유하면서 좁혀질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영화 속 무성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 또는 혼자 술을 마시는 것), 혼밥(혼자 먹는 밥 또는 혼자 밥을 먹는 것), 혼커(혼자 마시는 커피 또는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가 외로움, 아픔과 상처로 대명사였던 시기를 넘어, 이제 자신만의 감정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어가는 시대에,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 벽을 보고 있는게 편하다는 미스터 모의 대사는, 그의 영화 배우에 대한 꿈 못지 않은 여운을 준다. 미스터 모의 일기 같은 영화는 어쩌면 우리들의 일기 같은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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