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여행초기에 만난 러시아인이 며칠 여행하냐고 묻길래 25일할거라 했더니 깜짝 놀랬었다. 조지아에 볼것이 뭐있다고 한달가량 여행을 하냐고 그녀는 웃었다. 25일이 꿈같이 지나갔다.

아침에 호텔로비 TV스크린에 조지아에 대한 광고가 나온다. 아직도 못가본 곳이 있다. 아직도 내가 할수있는 조지아말은 마두로바밖에는 없다. 아직도 조지아사람들이 느긋한것에 적응이 안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우리나라는 과연 제대로 알고 있나 싶다. 우리나라도 제대로 모르는데 한달남짓한 시간동안 외국을 이해한다는것이 말도 안된다.

체크아웃하고 호텔정원에서 렌트카를 기다리는데 안온다. 10시에 온다더니 또 늦는다. 내가 뭐라하니 남편이 우리나라도 못살때는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이 있지않았냐며 그냥 기다리잔다. 15분늦게 차가 왔다.

르노 더스터를 렌트할때 검수했던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며 반가와한다. 지난번에 5라리 팁을 줬었는데 기억하나보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니 허그를 징허게 한다. 싸구려향수냄새가 진동을 한다.

차를 함께 체크했다. 리포트에 사인하고 시거잭에 충전기를 꽂으려하니 시거잭이 없다. 아저씨도 같이 차안을 아무리 뒤져도 없다. 할수없이 내 밧데리팩을 꺼내서 핸폰에 연결했다.

차를 몰고 남쪽으로 달렸다. 국경이 가까와오자 군부대가 보인다. 두더지굴처럼 위장한 벙커모습이 인상적이다.
길가에 세제들을 쌓아놓고 장사를 한다. 가판대만 세워놓고 세제들을 팔기도 한다. 과일을 파는것처럼 세제들을 파는 모습이 낯설다.

드디어 국경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걸어서 조지아국경을 넘었다. 여권체크를 마치자마자 면세점들이 펼쳐진다. 공항면세점못지않게 물건이 다양하다. 면세점을 나와서 남편을 기다렸다.

국경을 넘어서 데베드강을 따라서 달리다 보면 금방 계곡길이 시작된다. 첫 목적지는 하그파트사원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해서 왔는데 외관은 다소 썰렁하다. 12세기에 완공된 사원으로 이름은 거대한 벽이란 뜻이란다.

겉으로 보기엔 창문이 없어보여 답답할 것 같았는데 들어가보니 천정의 돔이 뚫려있다.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벽에 난 작은 창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지금은 성직자들이 아무도 살지 않아 보인다. 돌보는 사람들도 없어 보인다.

바닥에 깔린 돌들이 예사롭지 않다. 하나하나 거대한 비석들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빛이 비추는 곳에 서서 하늘을 보니 눈이 부신다. 안에 갇혀 있다 해도 빛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시간을 알듯 싶다. 천정의 돔이 시계추를 만들어 주는 듯 하다.

복음서가 유명하고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이라고 간판이 붙어있는데 바닥에는 와인 숙성 독이 묻혀있다. 지금은 책의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다.

두번째 목적지인 사나힌사원으로 향했다. 10세기에 시작해서 12세기에 완공된 사원 아카데미로 사용되었던 사원이라 한다. 알라베르디에서 케이블카로 갈수 있다는데 수중에 아르메니아 돈이 없다. 일단 케이블카가 있는 마을로 갔다.

일단은 점심도 먹을겸 시내로 들어갔다. 통신가게가 눈에 띄어서 먼저 심카드부터 샀다. 영어 잘하는 직원에게 케이블카에 대해 물어보니 지금은 수리 중이란다. 차를 운전해서 올라가는 길을 알려준다. 식당도 알려준다. 직원이 알려준 식당으로 가니 소박한 동네식당이다. 남편은 버거 먹겠다는데 난 땡기는것이 없다. 그냥 감자튀김으로 떼웠다.

꼬불탕 길을 다 올라서 마을을 통과해서 사나힌사원으로 갔다.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본당안에 의자들이 놓여있다. 조지아교회에서는 서서 예배를 보는데 아르메니아에서는 앉아서 예배드리나 보다. 관광객들이 앉아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나힌사원도 역시 바닥의 비석들이 예사롭지 않다. 기둥에 새겨진 그림들도 하나하나 아름답다. 예술적이라기보단 종교적이라 더 아름답다. 외관은 역시 창문없이 답답해 보이는데 돔중앙이 열려있고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확산되는 구조이다.

벽두께가 족히 1미터는 되어보인다. 입구에서 보기엔 작아보이던 사원이 안을 돌아보니 실속있고 당차보인다. 입구에서 초를 사서 불을 밝혔다. 아르메니아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는 기분이다.

드디어 예레반으로 향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쌩 달리자고 다짐하는 순간 꿈이 산산조각이 난다. 데베드계곡을 달리는 길은 길이 아니다. 누더기다. 천조각 짜맞춘 거적도 아닌 다 찢어진 누더기다. 패임이 어찌나 심한지 남편도 달릴 수가 없다. 자연스레 과속방지가 된다.

계곡길이 워낙 길어서 지도봐줄일이 없으니 할일이 없다. 길패인 구멍이 수시로 나타나서 기어가다시피하니 졸린다. 졸려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쾅해서 번쩍 잠이 깼다. 패인 구멍에 빠졌다 나왔다. 워낙 구멍이 많다보니 피하다 다른 구멍에 빠지기 일쑤다.

계곡길을 벗어나니 길이 좋아진다. 포장상태도 양호하다. 남편이 신났다. 내가 수시로 속도계를 체크하며 낮추라고 해야했다. 지도도 보고 속도계도 체크하랴 또 바빠진다.

계곡경치와 달리 아르메니아 코카서스경치는 아제르바이잔하고 닮은 점이 많다. 순한 곡선과 나무가 없는 점이 비슷하다. 오랫만에 보는 풍경이 반갑다. 양떼들이 꼬물거리는 모습도 반갑다. 드넓은 초원 군데군데 양봉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예레반시내로 들어와서 예약한 호텔로 왔다. 맘에 딱 든다. 현대적인 신축호텔이라 깔끔하고 내부장식들이 고급스럽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장기투숙하고 싶어졌다. 미니키친이 붙어있다. 소파도 있고 이쁜 안락의자까지 있다. 모던한 방이 현대미술전시장같다. 바디용품들이 명품브랜드다.

일단 짐을 던져놓고 저녁먹으러 나갔다. 예레반한식당을 검색하니 멀지않은 곳에 있다. 렌트카 사무실도 멀지않다. 먼저 차를 반납하기로 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인데 사무실 직원이 있어서 반납처리했다.

한식당으로 갔다. 주소를 찾아서 갔는데 없다. 근처를 다 찾아봐도 없어서 근처가게에 물어보니 문을 닫았단다. 허망하다. 밥을 먹을거라 기대했는데 맥이 빠진다. 할수없이 호텔앞에 있는 일식당으로 갔다. 오랫만에 밥을 먹으니 좋다. 고추장이 있었으면 딱인데 한식당갈거라고 안챙겨서 아쉽다. 밥을 먹어서 좋긴한데 너무 짜다.

밥먹고 마트에 와서 과일을 사는데 커피를 갈아서 판다. 뭘살까 망설이는데 일식당 아가씨가 커피를 사러왔다. 뭐가 좋을까 물어보니 추천해준다. 콜롬비아산도 있는데 그것보다 다른 3가지를 믹스하란다. 우리도 똑같이 샀다.

호텔로 와서 커피를 만들었다. 오랜만의 원두커피향이 좋다. 우리방은 비즈니스하는 사람이 장기투숙하기에 좋은 방인듯 하다. 호텔이면서 집같은 레지던스 스타일이다.

아르메니아입성기념으로 조지아를 떠나면서 샀던 와인을 따려고보니 와인오프너가 없다. 와인병을 들고 1층 바로 가서 따달라고 했다. 상큼한 아가씨가 웃으며 당근 따드리죠 한다. 따려고 보니 허무하게 열리는 뚜껑이다. 방으로 와서 한잔 마시려는데 맛이 이상하다.

차차를 사왔다. 워낙 독한 술이라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좋음 와인이라고 산것이 차차일줄이야. 45도짜리이니 내게는 과하다. 얼음을 타서 마셔도 위스키보다 진하다. 마시다 포기했다. 조지아의 여운이 강하게 남는 아르메니아의 첫밤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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