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층에서 전망바라보며 먹는 아침식당에서 반가운 밥을 만났다. 한국에서처럼 부드러운 밥이 아니라 쌀반 밥반이지만 반갑다. 나름 필라프라고 한 모양이다. 고추장 비벼서 먹었더니 개운하다.

방에 와서 또 늘어졌다. 직원이 청소하러 왔다. 청소는 필요없고 샴푸등을 보충해달라니깐 기분좋게 주신다. 비누도 2개 주시고 행복해하며 나가신다. 덕분에 우리는 휴식의 시간을 벌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나갔다. 예레반에서 제일 맛있다는 빵집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작고 소박하다. 수제버거와 치아바타를 시켰다. 치아바타가 두껍고 부드럽다. 오렌지쥬스를 시켰는데 서비스로 홈메이드 쥬스를 또 준다. 홈메이드쥬스는 내입에는 달다.

택시타고 에레부니박물관으로 갔다. 오늘은 시내하고 박물관본다길래 그동안 꽁꽁 잠자던 구두를 꺼내신었다. 도시에서 신을려고 가져왔는데 신을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할랑할랑 즐겨보겠다고 기대했다. 에레부니박물관에 도착하는 순간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야외박물관이 폐허다. 로마보다 앞선 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성곽도시란다. 한바퀴 돌아보니 규모가 상당하다. 석재가 독특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지역 자연석을 이용한 것이다.

무너진 성안을 하이힐신고 걸으려니 죽을 맛이다. 청춘남녀 둘이서 화보 찍느라 바쁜데 난 하이힐 신어서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벽화에는 무지한 관광객들의 낙서투성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공원에 갔다. 세계1차대전후 터키가 아르메니아를 공격해서 150만명을 학살했던 역사를 추모하는 곳이다. 터키는 30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아르메니아는 150만명이라 한다. 30만명은 적은 숫자인가? 학살은 백명이라도 엄청난 일이다.

추모공원에 도착하니 문서박물관이 4시에 문을 닫아서 아쉽게 보지 못했다. 추모탑으로 갔다. 터키에 뺏긴 지역을 상징하는 의미로 12개의 타일로 이루어졌다. 내부의 한가운데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성화주변에는 꽃이 바쳐져있고 진혼곡이 계속 나온다. 한참을 엎드려 기도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택시가 두대밖에 없다. 예약된 택시라 한다.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친구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5분 기다리란다. 10분쯤후에 택시가 왔다. 타고 나오는데 왠 아가씨가 입구에 서있다. 택시잡기 힘든 곳이라 태워줬다.

아가씨는 이란 테헤란에서 왔다고 한다. 서울 테헤란로가 땅값이 비싼 곳이라 하니 웃는다. 이란에서 왔다는데 마치 파리에서 온 아가씨같다. 선글라스에 현대식 모자를 쓰고 있다. 우리 호텔입구에서 내렸다. 택시비를 나누어 내겠다고 해서 괜찮다 했다. 서로의 행복한 여행을 빌어줬다.

호텔로 와서 샤워하고 잠시 쉬다가 저녁먹으러 나갔다. 저녁은 예레반 맛집1위 식당으로 갔다. 와인이 벽에 가득하다..

이태리음식점이다.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샹그리아를 추천한다. 직접 만들었다 한다. 이태리요리에 샹그리아라니 약간 이상한 조합이지만 난 좋다.

오랫만에 하루 3끼를 제대로 잘먹는 날이다. 음식이 제대로다. 장식으로 나온 할라피뇨피클이 맛있어서 더 달라고 했다. 청양고추의 칼칼한 느낌이다. 이렇게만 먹으면 나의 배둘레햄이 다시 확장될 추세다.

저녁을 먹고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캐스케이드로 갔다. 마침 석양이 도시를 물들이고 있다. 캐스케이드정상으로 올라가면서 유명작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작품들은 경비원들이 보호하며 통제한다. 마치 설치미술관을 걸어올라가는 기분이다.

정상에 오르니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도시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캐스케이드의 조명들도 일제히 빛을 발한다. 조명받은 작품들은 화장한 여인처럼 새로운 모습이다. 캐스케이드를 내려오면서 한껏 눈호사를 누렸다.

우리 호텔은 오페라하우스와 캐스케이드사이에 있다. 위치를 보고 선택한 호텔인데 최고의 선택이다. 캐스케이드에서 내려와서 호텔로 오는데 5분도 걸리지않는다.

호텔방에 들어와서 보니 캐스케이드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아침까지만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캐스케이드인데 이젠 캐스케이드만 보인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아는것외에는 안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캐스케이드를 알고나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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