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현을 직역해보면 어리둥절해진다. 대체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싶어서. 원래 이 표현은 God is in the detail에서 변형된 꼴 중 하나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은 그 기원이 분명치 않은데, ‘마담 보봐리’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가 처음 썼다고도 하나, 미켈란젤로가 썼다는 사람도 있고 독일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즈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만든 말이라는 설도 있다. 그 기원이 어찌 되었던 이 표현의 의미는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잘 챙기는 이는 복 받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외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명목상의 뜻은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나 뉘앙스는 달라져서 일을 망치는 건 의외로 작은 디테일에 있는 오류이니 이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허나 세상의 악(evil)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과연 사람이 순전히(genuinely) 혹은 전적으로(totally) 악해서 악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악에 대한 연구로 일가를 이룬 독일의 학자 한나 아렌트조차도 ‘진짜배기 악’ 혹은 ‘과격한 악(radical evil)’은 존재하긴 하나 아주 드물다고 하지 않았던가. 많은 경우, 사람들이 그 됨됨이를 시험 받는 것은 사소하고 작은 악(petty evils)이 아닌가 싶다 – 내가 오늘 외면한 지하철의 걸인 하나, 내가 오늘 하루쯤 괜찮겠지 하고 그냥 버린 안 썩는 비닐 하나, 이런 사람 하나 하나가 저지르는 사소한 악들의 총량이 임계치에 다다르면 그 지점에서 평형을 이루던 저울이 기울어지면서 한 사회가 지옥(hell)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는 단테(Dante Alighieri)의 신곡(The Divine Comedy)에 나온 말로 흔히 오인되는 말은 어쩌면 ‘중립을 지키는 자’들이란, 사소한 악들을 괜찮겠지 하며 무심코 저지르고는 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과 하나도 관계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 혹은 그 사소한 악으로 책잡히면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고 역성을 내는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하이맨 릭오버(Hyman G. Rockover)가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지만, 구원 역시 그러하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 but so is salvation.)“ 우리는 디테일에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리프팅(lifting)이 필요하다 – Who can lift us up from evils in the details except we ourselves? 우리 자신을 제외하고는 디테일 속의 악으로부터 누가 우리를 들어 올릴 것인가? 얼굴 리프팅이 아니라, 영혼의 리프팅이 필요하다.

Joyce Park rowanee@naver.com 필자는 영어를 업으로 삼고 사람에게 가서 닿는 여러 언어 중 영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교양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어 교재 저자이자 영어교수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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