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라우더 댄 밤즈(Louder Than Bombs)’에서 종군 사진작가인 어머니 이사벨(이자벨 위페르 분)의 기일을 맞아 집으로 찾아온 큰 아들 조나(제시 아이젠버그 분)는 어머니의 3주기 기념 전시를 위해 자료를 정리한다. 그는 어머니가 떠난 뒤 사이가 멀어진 아버지 진(가브리엘 번 분)과 동생 콘래드(데빈 드루이드 분)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 한다.

진실 앞에 마주한 세 남자의 말하기 두려운 민감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 꿈, 상상의 세계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게 연출하였으며, 시점도 단순하지 않게 전개된다. 대화가 마치 독백처럼 느껴진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진실 앞에 마주한 세 남자, 서로 말하기 두려운 민감한 이야기

영화의 제목 앞에 붙은 것은 “Love is”일 것이다. 폭탄보다 무거운 슬픔의 깊이를 담고 있는 영화는 잠들어 있는 아기 모습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차분한 희망과 설렘으로 시작한다.

인물에 대한 초근접 촬영은 등장인물의 적나라한 표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여 주는데, 초근접 촬영은 영화 속 게임, 영상, 스틸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 배경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훅 들어와서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영상은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들기도 한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유리창을 통하여 안과 밖의 모습과 소리가 표현되기도 하는데, 아버지 진과 아들 조나와 콘래드 사이의 관계와 연관되어 생각되기도 한다.

‘라우더 댄 밤즈’에서 오래 전에 잊혀진 사소한 일들은 알고 있던 것이 모두가 아니고 게다가 그것 조차도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기억은 개인적 기억이기도 하고 집단적 기억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 떠나간 누군가를 기억하는 시선이 같지는 않다.

은퇴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콘래드에게 알리려는 아버지는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운데,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속마음을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은 콘래드를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추게도 만들고 게임에 집착하게도 만드는데, 게임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콘래드는 현실이 아닌 사이버 속 게임세상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게임세상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잊을 정도로 몰두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잠시 도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슬픔, 고통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멍하니 있는 콘래드가 보여주는 내면 연기가 무척 공감이 되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 현실, 꿈, 상상의 세계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영상

‘라우더 댄 밤즈’는 뮤직비디오의 일부분 같은 영상이 갑자기 들어오기도 한다. 마치 텍스트를 읽다가 클릭한 동영상을 잠시 보면서 텍스트 읽기를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야기는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시점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정형화된 형식을 따르지 않는 교향곡에서 불협화음 같은 리듬과 만나는 것처럼, ‘라우더 댄 밤즈’를 보면서 이질적인 영상과 만나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느낌의 영상은 길게 가지는 않는다. 감독은 감정선의 이탈이나 변경이 아닌, 이어가던 감정선에 다른 무엇을 얹어놓도록 연출한 것이 눈에 띈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콘래드는 같은 반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엄마의 사고 장면을 연상한다. 시와 교차되는 사고장면은 콘래드의 상상 속에서 마치 낭송하는 뮤직드라마 느낌을 준다. 콘래드는 엄마가 폭탄을 맞는 모습을 보고 독특하게 상상하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하는데, 비극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고 있다.

현실, 꿈, 상상의 세계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영상이 돋보이는 ‘라우더 댄 밤즈’는 꿈 이야기와 꿈에 대한 해석, 영화 속에 또 다른 영상과 사진도 의미있게 받아들여진다. 순간을 포착해내는 사진, 사진의 프레임에 따라 달라지는 상상의 세계, 공상의 세계는 외적으로 잔잔해 보일 수도 있는 영화를 내적으로 크게 흔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대화를 하는데 독백인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 꿈, 상상의 세계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영상 못지않게 독특한 것은, 영화에서의 대화는 마치 독백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좋은 가장이 되려고 노력하는 아빠인 진은 감정적인 부분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데, 상대방과 일치하지 않는 대화의 코드는 아빠의 외로움으로 느껴진다.

젊고 이지적인 사회학 교수 큰 아들 조나는 냉정하게 극복한 것 같지만 버티고 있는 것이고, 내성적이고 몽상적인 콘래드는 행동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심리적 반전을 주고 있다. 가족이지만 서로 약간씩 어긋나 있는 관계는, 대화를 독백처럼 느끼게 만들어준다.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라우더 댄 밤즈’ 스틸사진.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에는 세 가지 불륜이 나온다. 감독은 미화하지는 않지만, 비난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연출하고 있는데, 불편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게 여겨진다. 영화의 대사가 주는 독백같은 느낌은, 불편한 사랑이 사건이라기 보다는 혼자 이야기한 뒤 흩어지는 독백같이 느껴지도록 만드는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콘래드에 가장 감정이입을 하였을 수도 있다. 콘래드, 조나, 진이 모두 극본을 직접 쓴 감독의 내면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라우더 댄 밤즈’는 현재의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감정을 순식간에 몰아치지 않고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만들어진 울림은 긴 여운을 준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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