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배가 아플 때면 엄마는 배를 문지르며 항상 이렇게 말했다. “엄마 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 이 얘기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통증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준 엄마 손 같은 의약품이 있다. 바로 유한양행 `안티푸라민`이다.

안티푸라민 역사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유한양행 창립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는 의사 출신의 중국인 부인 호미리 여사 도움을 얻어 자체 개발한 첫 의약품 안티푸라민을 선보였다. 모든 의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던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안티푸라민이라는 제품명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반대`라는 의미의 안티(anti)와 `불태우다 혹은 염증을 일으키다`라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 발음하기 좋게 바꾼 것이라는 사실만이 전해진다.

아마도 유일한 박사가 안티푸라민이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품 특성을 그대로 설명한 `항염증제` 또는 `진통소염제`로 제품명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신문광고에 `사용 전 의사와 상의하라` 등의 문구를 넣은 것도 같은 선상으로 풀이된다.

또 안티푸라민은 △멘톨 △캄파 △살리실산메칠로 등을 주성분으로 하며 △소염진통 작용 △혈관확장 작용 △가려움증 개선 작용 등 효과를 보인다. 여기에 다량의 바세린 성분도 함유돼 있어 보습 효과도 뛰어나다.

안티푸라민은 출시 후 대표적인 가정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주위에서 안티푸라민을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옛 어른들은 아직도 자식이나 손자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에, 코감기가 걸렸을 때는 코밑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야 한다고 얘기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익숙하고 친근한 상비약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안티푸라민하면 가장 먼저 녹색 철제 캔에 간호사가 그려진 디자인을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 1961년 유한양행은 케이스 디자인을 변경하고 간호사 모습을 안티푸라민 케이스에 그려 넣었는데 이를 통해 가정상비약으로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 아픈 역사를 다룬 영화 `남영동 1985` 에서는 주인공에게 정성껏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해온 의약품으로 온 국민 마음과 시대 아픔까지 보듬어 안은 셈이다.

안티푸라민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를 거듭했다. 유한양행은 철제 캔에서 사용과 보관 편리성을 위해 플라스틱 용기 트위스트캡 형태로 변화를 줬고 1999년에는 로션 타입 `안티푸라민S로션`이 등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2010년대에 들어서는 고객 요구에 맞춰 안티푸라민 파프 제품 5종과 스프레이 타입 `안티푸라민 쿨 에어파스`까지 출시했다. 최근에는 동전 모양 `안티푸라민 코인플라스타`나 잘라 쓸 수 있는 `롤파스`까지 나오면서 `안티푸라민 패밀리`가 구성됐다.

이에 안티푸라민 패밀리는 80년이 넘는 장수 브랜드를 넘어 새로운 비상(飛上)을 시작하고 있다. 20억~30억원대에 머무르던 매출은 2013년 100억원을 넘었으며 지난해에는 13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블록버스터` 제품으로 등극했다.

창립 9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82년의 역사를 가진 안티푸라민을 100년이 넘는 장수제품으로 자리 잡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안티푸라민은 많은 이들의 추억과 현대사 아픔까지 담고 있다. 안티푸라민이 출시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제품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한양행 대방동 사옥의 1969년 모습.
유한양행 대방동 사옥의 1969년 모습.

황재용기자 hsoul38@nextdaily.co.kr

[표]

1933년 `안티푸라민` 출시 연도

60전 1934년 안티푸라민 1통(20g) 가격, 당시 금 0.2돈의 값어치는 1원

1961년 철제 캔 디자인으로 변경

1999년 `안티푸라민S로션` 출시

2013년 매출 100억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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