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경영은 경쟁원리로서 유효하다. 그러나 속도경영은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빨리 하자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는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속도와는 무관하게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필요하다. 다만 의사 결정을 신속히 하고 정보가 빨리 유통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구축하며 수립된 전략의 실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배가 항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선장은 배가 가야 할 목적지와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하고, 안전하게 빨리 가기 위해서는 우선 배의 동력인 엔진이 강력해야 하고, 배의 구조가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잘 뜰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목표 방향으로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팀워킹이 필요하다. 이를 기업에 비유해서 보면 선장은 경영자, 엔진은 조직의 혁신역량과 경영프로세스, 배의 구조는 조직 구조와 조직 문화, 선원들의 팀워크는 기업 내 각 조직간 팀워크, 즉 정합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리더, 즉 경영자는 목표를 잘 설정하고 조직이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 구조, 경영프로세스, 조직 문화를 설계하고 구축하며, 조직간 정합성이 확보되도록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므로 그 중 무엇보다도 경영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지도자나 경영자의 역할 중에서도 특히 목표와 방향 설정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속도와는 무관하다.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 성공하면 대가가 크지만 막대한 리스크가 수반되어 승부처가 될 수 있는 전투의 의사결정,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인천상륙작전, 나폴레옹의 알프스를 넘어가는 것과 같은 의사 결정 등은 리더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기업으로 보면 삼성 이병철회장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정한 것이나, 현대 정주영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고가의 재킷을 울산에서 제작하여 대형 바지선을 이용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송키로 한 결정 등이 그러한 종류에 속한다고 하겠다.

통찰력이란 같은 상황을 두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발견하고, 같은 문제를 두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을 말한다. 주어진 현상을 넘어서고 일상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서, 어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력이 그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본질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해보려는 불 같은 열정과 끈기 있는 성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찰력은 속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목표가 설정되고 실행 단계에 들어서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의 몰입이 만들어져야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무엇이든 미쳐야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속도에 미쳐야 속도가 나온다. 속도 경영이 성공하려면 조직 전체가 속도의 가치를 신봉하고 전 부문에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미쳐야 한다. 높은 목표를 요구하고 혁신과 변화를 주문하는 것이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면 비합리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인식과 사고의 차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비로소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볼 수 있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속도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저 다리만 빨리 움직여서는 안되고 혁신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속도를 높이려면 힘을 빼고 부드럽게 동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골프를 칠 때 멀리 똑바로 보내기 위해서는 부드럽게 스윙하되 임팩트 순간에 헤드 스피드가 최대가 되어야 하고, 수영에서도 빨리 가려면 몸에 힘을 쭉 빼고 발차기, 손 젓기, 호흡 모든 동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몰입이 이루어지고 속도가 높아지려면 조직이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 일방통행 커뮤니케이션이나 독불장군 식의 ‘나를 따르라’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조직 내에 다양성이 존중되고 열린 소통, 개방적인 조직 문화가 구축되어야만 조직의 유연성이 생기고 몰입이 일어나서 속도가 높아진다.

한편 속도는 품질과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속도를 높이면 품질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영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양 극단을 추구하고 실현해내는 작업이다. 성능과 품질도 좋고 코스트 경쟁력도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트레이드오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법을 뛰어 넘어서 신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신제품을 개발하고, 제조공정을 혁신하고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찾아내어서 가치 혁신을 거듭한다.

그러나 모든 일엔 적절한 타이밍이 있고 이를 놓치고 나면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회복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수십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품질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이 때의 타협은 야합이나 단순한 양보가 아니다. 목표점을 지향하면서 그 상황에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린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가 말한 MVP (Minimum Viable Product : 존속가능제품), 그리고 손자의 졸속(拙速) 사상과도 맥락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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