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에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홍석중은 아버지 홍기문, 할아버지 홍명희를 따라 월북한 북한의 소설가다. 그의 작품 ‘황진이’는 송혜교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아버지가 편찬을 주도한 ‘리조실록’ 역시 남녘의 학자들이 극찬한 역사 교본이 되었으며, 할아버지가 남긴 ‘임꺽정’은 남북을 아우르는 우리 민족의 대표 소설로 평가받는다. 홍석중과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사장이 평양에서 체결한 남북 최초의 공식 출판권 설정 계약 소설 임꺽정은 홍명희 탄생 120주년에 개정4판으로 세상에 나왔다. 모두 10권으로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의형제편, 화적편을 차례로 엮었지만 순서와 무관하게 술술 읽어지는 명작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충청북도 괴산 일원에서 ‘벽초홍명희문학제’가 열린다. 20년 전 가을에 시작되어 어느덧 21회 째 행사를 마친 이 행사는 이념을 문제 삼는 극우단체의 반대로 몇 차례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뚝심 있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혜경궁 홍씨 집안의 직계로 경술국치 당일에 자결한 순국열사 홍범식의 장남인 벽초는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말 3대 천재로 불린다. 상민 출신 춘원과 중인 육당이 세상의 변화를 자신의 입신과 사심으로 채우며 친일파로 영화를 누린 것과 달리 노론 양반가의 지주 출신으로 부귀를 버리고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민중과 함께한 그의 진보성은 뛰어난 문학성과 함께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조정은 윤원형의 독판이라 사헌부 대사헌이니, 사간원 대사간이니 또는 홍문관 부제학이니 서슬 좋은 조정 관원들이 대개는 원형의 앞에서 견마의 충성을 다하는 인물들이었다. 대체 말이나 개의 주인 위하는 충성은 일호 거짓이 없지마는 사람으로서 말 노릇 개 노릇 하는 것은 충성이 곧 거짓이라 말이나 개만 못한 거짓 충성이 주인의 눈 밖에 나서 좋지 못하게 신세를 마치는 것은 첩경 있기 쉬운 일이다.” - 양반편 제3권 168쪽

반가의 후예가 민초들의 삶을 어쩌면 그렇게 맛깔스럽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고,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비판적 시선으로 관통하는 화두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내용도 훌륭하지만 형식 또한 아름답다. 맛깔 나는 문장은 이야기를 실어 나르고, 이야기는 다시 부드러운 문장을 끌고 가며, 모든 문장은 이야기를 떠받치고 이야기를 실어 나르지만, 그 문장은 이야기가 추구하려는 거대한 담론의 틀 안에서 결코 매몰되지 않는다. 벽초의 뛰어난 상상력은 우리 역사 전반에 깊이 관여된 성리학과 당파 문제를 고민하면서 민중을 지지하고, 사림 계열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위대한 문학유산으로 남았다.

사림의 뿌리는 정몽주로 대표되는 고려말 온건개혁파에 있다. 상대 조직인 훈구세력의 뿌리는 정도전을 위시한 조선 초 양반 관료 사회의 기반을 이룬 역성혁명파이다.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군신관계의 부활로 이끌어 내면서 사림파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훗날 훈구파의 대표 주자인 한명회가 사위 성종을 얼굴 마담으로 집권하는 등 두 세력은 누가 옳을 것도 없이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견제한다. 연산군이 최강의 왕권을 휘두르며 극단의 횡포에 달하자 별다른 노력 없이 왕위에 오른 인물은 중종이다. 중종은 민중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 온 사림의 조광조를 대사헌으로 등용하여 개혁정치를 시행하지만 훈구파의 계략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조광조의 죽음은 민중의 지지 속에서 사림파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명종시대를 개막한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횡포라는 살벌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재야의 남명 조식과 제도권의 퇴계 이황 시대가 시작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림파는 정권을 잡은 이후에 민중을 배신하고 탄압하는 이중성을 보이며, 결국 이 모순의 시대에 임꺽정이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저렇게 극히 귀하구 극히 천한 상은 나는 처음 보우."
하고 상쟁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다시 보고 보고 하였다.
“귀하면 귀하구 천하면 천하지 어떻게 귀하구두 천하단 말이오?”
“상이 그렇단 말이지 낸들 아우?”
- 의형제편 제6권 249쪽

연산군 때 거제도 유배령을 받은 홍문관 교리 이장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관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함경도 천민의 마을에 숨어 들어가 백정의 딸 봉단과 혼인한다. 봉단의 외사촌 임돌이가 양주 감악산 백정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범상치 않은 아들을 낳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장편 중반에 처음 등장한 임꺽정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며 오늘 날 관점에서 도무지 사람구실 못하는 대책 없는 백수건달로 성장한다. 책과는 담을 쌓았으나 강인한 체력과 배짱 등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데다 주변에 좋은 스승과 벗들이 넘치는 복 받은 인생이다. 검술과 승마에 많은 공을 들여 실력을 연마하지만 그 또한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의식도 없다. 처자식을 거느린 후에도 삶에 대한 별 고민도 없이 마음 가는대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임꺽정을 통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겠다든가 썩어빠진 위정자들을 응징하는 식의 정치적 명분을 찾고 싶은 독자들은 그저 본능에 충실한 야성적인 사내의 일대기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매번 사사로운 일로 영웅적인 성과를 일으키는 것은 흥미롭고 짜릿하지만 행동에 커다란 가치나 혁명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민망할 만큼 동기는 단순 무식하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관군이 쫓아오면 달아나는 도망자들의 무리로 칠두령을 결성했을 뿐인데 그나마 가치가 있다면 그들만의 우정, 의리, 자존심 정도를 내새울 수 있겠다. 의형제들의 면모만 보더라도 한심하다. 앉은뱅이 시절을 극복하고 표창의 명인으로 거듭난 유복이, 기묘사화 때 풍비박산 난 집안의 봉학이, 눈칫밥이 싫어 떠돌던 비정규직 머슴 곽오주, 소금장수 길막봉이, 돌팔매질에 능한 떠돌이 배돌석이, 매형이라는 이유로 임꺽정과 어울리게 된 꽃미남 천왕동이 등 결코 타의 모범이 될 수 없는 내놓은 자식들의 연합이다.

“저편의 표범이 사람들을 보았던지 누웠다 일어서서 몸을 훌훌 털고 앞 뒷발을 버티고 허리를 잘록하게 들어가도록 기지개를 켜고 그리하고 어슬렁어슬렁 등성이를 타고 내려간다. 천왕동이 남매가 이것을 보고 풍우같이 등성이 아랫길로 뛰어 내려가니 꺽정이도 뒤를 쫓아가려다가 어찌 생각하고 표범 누웠던 등성이 끝으로 뛰어왔다. 천왕동이 남매가 어느 틈에 표범 내려가는 길을 막질러가지고 좌우로 갈라서 올라온다. 표범은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으르렁 소리를 내더니 살함이 차차 가까이들 오는 것을 보고 성이 나서 색색거리고 곧 사람에게 덮칠 것같이 앞몸을 솟치더니 번쩍거리는 창날을 덮쳐서 이롭지 못할 줄로 알았던지 휙 돌쳐서며 등성이 위로 올라닥쳤다. 꺽정이가 칼날을 뽑아들고 내려다보고 섰다가 바람같이 올라오는 범의 앞을 막으며 번개같이 칼로 내리쳤다.” - 피장편 제2권 356쪽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자란 운총·천왕동이 남매와 함께 사냥을 하는 대목에서 표범의 공격자세에 관한 정교한 묘사는 높은 몰입감을 이끈다. 위태로운 공격을 받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단칼에 표범의 목을 자르는 기지 또한 스릴이 넘친다. 표범 가죽이 꺽정의 거친 칼질에 찢겨 상한 것을 두고 좁쌀 한 말밖에 못 바꾸겠다고 푸념하는 운총은 천상 여자다. 사슴 사냥에도 동행하는 등 남성미 물씬 풍기는 꺽정 곁에 붙어서 은은한 사랑의 싹을 틔우는 여자다. 그녀의 맑은 눈에 푹 빠져 주체하지 못하는 뜨겁게 분출되는 사내의 서툰 감정은 섬세한 묘사로 이어지며 야릇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범 사냥에서 혼인까지 군더더기 없이 일사천리로 전개되는 과정은 짧고도 치밀하다. 사랑의 몸짓과 대화를 나누던 운총을 번쩍 들어 숲속으로 달려가는 꺽정의 마초적 뒷모습은 화끈하며 음흉하지만 밀당 없는 정직한 열정을 날것 그대로 잘 표현한 힘이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동양고전과 전래동화를 달고 살았으며 일본과 러시아 유학을 통해 외국어를 익히고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나쓰메 소세키, 발자크 등 세계 문학을 두루 섭렵한 뒤에 동서고금을 조화롭게 소화시킨 벽초 문체의 독창성은 독자의 한눈팔기를 허용하지 않으며 몰입감을 높인다. 임꺽정과 친구들은 뭔가 불평불만은 있는데, 기존의 권력 구조나 사회질서에 대해 전혀 파악되지 않은 무모함으로 시대와의 불화가 아닌 그저 시대 밖의 화끈하고 엉뚱한 존재들일 뿐이다. 자유인의 발랄함과 오감을 자극하는 글맛 속에 담아낸 이야기는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입장과 처한 현실에 따라 매번 새롭게 읽혀진다. 비유와 해학, 절묘한 토속성의 조화가 이룩해낸 예술적 파장은 시공을 초월하여 부조리한 세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녹용 같은 약재와 녹포 같은 별미는 진상할 만한 물품이나 되지만, 녹미 한자, 녹설한자 같은 약재도 아니요. 별미도 못 되는 물품을 진상시키는 건 당초에 까닭 모를 일이었다. 소산이 아니라 할 수 없이 서울 가서 사서 바치는데 전의 진상품이 밖에 나온 것을 되사서 바치니 우습기 짝없는 일이건만, 진상품이 사옹원에 들어갔다 나왔다 또 들어가는 사이에 황해도 백성의 고혈이 마르니 웃기는커녕 통곡해야 좋을 일이었다. 일기 더운 때 생물을 진상하자면 서울 가는 동안에 빛이 변하고 맛이 가서 퇴짜를 안 맞을 수 없고 퇴짜를 안 맞자면 진상 받는 관원으로부터 하인에게까지 인정을 안 쓸 수 없었다. 이 까닭에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는 속담까지 생기었다.” - 화적편 제7권 9쪽

광복산으로 도주했다가 청석골로 돌아오고, 다시 자모산성으로 이동한 못난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끝이 아쉽다. 무엇인가 더 큰 사건을 암시하는 소년 이순신과 임꺽정의 만남 등 한껏 호기심을 자극한 이후 영원히 멈춰버렸다. 임꺽정과 더불어 실존했던 서림은 조직을 배신한 뒤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공식 기록에 남아 있는데, 벽초는 과연 서림의 최후를 어떻게 마무리 짓고 싶었을까? 조직의 브레인 서림은 언제나 재수 없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청석골 칠두령들은 머리 쓰는 걸 선천적으로 싫어하다 보니 작전은 늘 서림이의 머리에서 나오며, 그들의 전략전술은 늘 도중회의에 그쳤고 두령인 임꺽정이 승인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식이었다. 광복산 도주가 결정되었을 때에는 천왕동이, 곽오주, 막봉이가 서림이를 흠씬 두들겨 팬다. 이유는 단 하나, 자존심 상하는 작전인 도주를 선택했다는 것. 그렇게 그들은 머리보다 몸과 주먹이 앞서는 잡놈들이다. 서울에 잠입하는 후반부의 임꺽정이 세 아내와 한 명의 첩을 데려오는데 열 받아 길길이 날뛰는 처남 천왕동이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참으로 걱정되는 인물 임꺽정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조선조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성과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단천령이 우조를 다 불고 뒤를 돌아보다가 여러 사람 거동을 보고 적이 웃으면서 피리를 다시 불었다. 곡조가 달랐다. 이번 곡조는 처량하였다. 장구 치던 기생이 계면조를 모를 리 없건만 장구채를 꽂아놓고 가만히 앉았으므로 소홍이가 장구를 끌어다가 끼고 나서서 피리를 따라 장단을 쳤다. 춘몽 같은 세상이요. 초로 같은 인생인데 시름도 첩첩하고 설움도 첩첩하다. 첩첩한 시름과 설움을 피리로 풀어내는 듯 피리 소리가 원망하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하소연하는 것도 같으나, 어떤 마디는 천연 울음을 우는 것과 같았다. 그칠 듯 자지러지는 소리는 목이 메어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 같고 호들갑스러운 된소리는 울음이 복받쳐 터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울음은 아니나 울음소리 같은 것은 필시 귀신의 울음일 것이다. 오가는 죽은 마누라의 혼이 와서 울고불고하는 듯 생각하고 닭의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른 두령들도 각기 구슬프고 한심한 생각이 나서 혹은 눈을 끔벅거리고 혹은 한숨을 지었다. 바깥마당에서는 누가 우는지 흑흑 느끼는 소리까지 났다. - 화적편 제9권 125쪽

종실 단천령을 붙잡은 청석골 패거리가 가진 것 없는 그에게 피리 불기를 청한 잔치의 밤에 그 감상에 취하는 장면은 아름답고 구슬프다. 우리 전통의 소리에서 우조란 소리의 뼈를 가지런히 추리는 주어+동사의 느낌이며, 반대로 소리의 살을 추리는 서편제와 같은 장르를 계면조라 할 수 있는데 문장으로 담아낸 소리의 표현이 감미롭다. 연주에 반한 청석골 낭만파들은 단천령이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황 두령은 내기장기를 두면서까지 붙잡아 두려고 고집을 피우지만 꺽정이 자신의 옷고름에 찬 먹감나무로 만든 제골 장도를 선물로 쥐어주며 풀어준다. 꺽정의 칼이 험난한 고개들을 무사히 통과하는 신분증이 되었던 시절의 사연들 또한 유쾌했다.

날이면 날마다 마음가는대로 즐기고 노는 축제의 중독자들이 가는 길에 서경덕이 나오고, 황진이가 나오고, 토정 이지함, 조광조와 남명 조식 선생 등 수많은 실존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탄탄한 역사성을 암시할 뿐, 더 깊은 해설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어디로 튈지 모를 흥미진진한 여정만 있을 뿐이다. 임꺽정(林巨正, 1504~1562년)은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평가받는 실존인물이다. 임꺽정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당시 명종실록에는 희대의 흉악범 정도로 짧게 서술되어 있지만 실록을 편찬한 사관은 도적이 날뛰는 현상에 대해 국정혼란과 위정자들의 그릇된 행실을 문제 삼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라고 기록했다. 그 짧은 사실을 바탕으로 벽초가 재창조한 임꺽정이 우리 전통의 관혼상제, 세시풍속, 무속 등을 두루 아우르고 민담이나 전설 등을 절적하게 배치하며 일제강점기 10년 동안 신문에 연재된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임꺽정을 생각하면 신창원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IMF 외환위기 시절에 탈옥수 신창원의 당당함을 영웅시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기억을 상기하면 아찔하다. 그의 성장 배경은 안타깝지만 살인과 강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의 탈옥에 열광하는 것은 인지부조화와 상대적 박탈감이 낳은 부끄러운 현상일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에 의해 한없이 추락하는 이 암울한 시대에 또 다른 그릇된 영웅이 탄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감은 기우일까? 헌정사상 최악의 국기문란·국정농단 사건과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정치가 타락할수록 반대급부를 노리는 약탈과 살인, 방화를 서슴지 않는 잔혹한 인물에 대한 무용담이 미화되는 것은 경계해야할 것이다. 임꺽정이 빛나는 것은 실존 인물 그 자체의 됨됨이와 행적 때문이라기보다는 벽초의 훌륭한 세계관과 뛰어난 문장력 때문이 아니겠는가.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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