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디어 기차여행에 도전하는 날이다. 소위 당일치기 장거리여행인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속시원한 정보가 없다. 대부분 대행사나 여행사를 이용해서 표를 샀다는 이야기뿐이다.

기차역에 가서 툴라나 블라디미르중 좌석 있는 곳으로 거기로 했다. 난 툴라로 가고싶어서 오전 8시30분 기차시간을 기억했다. 남편은 블라디미르쪽으로 가고싶어한다. 아침먹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 들어가는데 검문검색까지 한다. 공항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눈앞이 깜깜하다. 우리차례가 왔다. 툴라 8시30분 표를 달라고 했더니 없단다. 할수없이 블라디미르표를 샀다. 9시30분 기차다.

일단 기차표를 받고나니 이건 암호해독수준이다. 겨우 읽는 정도인데 숫자는 알아보겠는데 문자가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다.인포메이션가서 물어봐도 영어를 못하니 소용없다. 질문하면 눈을 딴데로 돌린다. 온갖 상식을 동원해서 차량번호하고 좌석번호 도착시간 등을 유추했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9시가 되어서 전광판을 확인하니 블라드미르는 1번 플랫폼이다. 플랫폼에 기차가 안보인다. 승무원제복입은 아저씨한테 표를 보여주니 구석을 가르친다. 기차는 11번 플랫홈에 서있다. 전광판 1번이 들어오니 쌍둥이로 변신했다. 방송을 했을텐데 귀머거리가 따로 없다.

기차는 비싼 표를 사서 그런지 좋다. 우리나라 KTX정도 되는듯 싶다. 기차는 시속 150킬로로 달리기도 한다. 속도가 일정하지 않아 천정에 붙은 속도계를 보면 변화무쌍하다. 러시아의 기술수준은 첨단급인듯 싶은데 소비자입장을 고려한 편의는 최하수준이다.

성 에우티미우스사원에서 내렸다. 배가 고파서 사원옆 카페로 들어갔다. 영어메뉴가 없다. 치킨되냐고 물었더니 치킨커틀렛이 된단다. 샐러드하고 시켰다. 기대를 저버리지않고 맛이 없다. 배고파서 억지로 좀 먹었다.

사원안으로 들어갔다. 벽돌로 견고히 쌓은 성곽들이 사원과 내부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다. 1시가 되자 벨타워의 벨이 울린다. 음악처럼 울리는데 소리가 웅장하다.

박물관안에는 사원의 보물들이 전시되어있다. 특이하게 성곽안에 감옥이 있다. 재현해놓은 옥방은 호텔같다. 1764년에 종교범죄자들때문에 지었는데 소련시절에도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도서관도 있다.

성곽에 올라서 경치를 보면서 걸었다. 틈사이로 보이는 바깥 경치가 아름답다. 성루에는 예전의 상황을 찍은 다큐가 방영되고 있다. 원형보존이 잘된 사원이다. 성모승천사원의 첨탑을 가운데로 해서 조화가 아름답다. 러시아정교에서 성모의 승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듯하다.

크렘린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마차들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크렘린은 성모승천사원이 입구에 있다. 크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들어가서 성스럽게 촛불을 밝히고 성물을 산다. 나도 촛불을 밝혔다.

크렘림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예수탄생사원이다. 구름을 배경으로 파란 첨탑의 아름다움은 설명이 안된다. 목조로 만든 성 니콜라스사원은 수수하지만 화려한 아름다움에 뒤지지않는 독특함이 있다.

크렘린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 목조건물로 갔다. 농가의 생활등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라 한다. 내부는 패스했다. 이곳에서 강너머 보는 크렘린은 또다른 풍경이다. 수즈달에 자꾸 빠져든다.

수즈달은 도시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이다.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광장에서는 수공예품과 농작물을 팔고 어슬프게 간단한 영어가 통한다. 시간이 멈춘 과거의 도시다. 여행자들이 며칠 머무르고 싶어할만하다.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블라디미르로 돌아왔다. 블라디미르에는 두개의 유네스코문화유산이 있다. 먼저 성 데미트리우스사원으로 갔다. 하얀 돌에 조지안양식으로 조각을 한 외벽이 아름다와서 유네스코유산이 되었다한다. 조각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아름답다.

바로 옆에 서있는 성모승천사원도 유네스코문화유산이다. 블라디미르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내부는 금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언덕위에 우뚝 자리잡고 있어서 어디서나 눈에 뜨인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배가 고프다. 근처에서 제일 괜찮아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기차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좋은 경치와 맛있는 요리를 충분히 즐겼다. 기분좋게 저녁을 즐기고 기차역까지 산책삼아 걸었다.

기차역에 오니 전광판에 1번 플랫폼으로 나온다. 들어가자마자 1번 플랫폼이다.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기차가 오는데 올때 탄 기차하고 같은 기차다. 왜 가격차이가 7백루블이나 나는지 이해가 안간다.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볼텐데 벙어리냉가슴이다.

모스크바로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붉은 광장은 굼백화점에서 쏘아내는 조명들로 낮부럽지않게 환하다. 화려한 도시의 밤은 낮하고는 또다른 아름다움이다. 빨간 립스틱을 곱게 바른 고급기생의 느낌이 물씬하다. 왠지 조금은 흐트러져도 될듯한 유혹이 있는 도시의 야경을 즐기며 집으로 왔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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