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중에서

지도는 공간(空間)에 대한 가시화된 결과물이다. 좁게는 땅에 대한 그림으로 쉽게 여겨지지만, 넓게는 모든 땅 위, 땅 속, 바다와 대기, 나아가서 우주까지 포함한 범위에 속한 위치값을 가진 다양한 정보를 표시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정보라는 분야에서 ‘공간(空間)’이라는 단어는 ‘공간(共間)’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해도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간(空間)이라고 적고 보면 왠지 텅 비어 있고 알맹이가 없이 가벼워 보인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정보를 생각한다면 때로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의 공통적인 관심사로 꽉 채워진 공간(共間)에 대한 정보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어렵고 딱딱한 정보가 아니라 따뜻하고 친밀한 정보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이번 글에서는 공간정보 안에서 다양한 것을 서로 함께 하고, 나누고, 하나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 손지도조차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수선한 시국의 영향인지 몰라도 1990년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생각이 종종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억압된 생활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각종 만남에 집착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심심하고 불안했다. 핸드폰도 없고 삐삐(무선호출기)마저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다. 그런 휴대용 통신장비가 없다고 해서 만남이나 소통이 없었을 리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많이 불편했겠다 싶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게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학교 앞 서점 벽면 게시판에는 각종 모꼬지 장소를 기록해 놓은 쪽지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우리말부 뒷풀이 : 청실홍실’, ‘국악연구회 90학번 독수리당구장으로 와라’, ‘XX야, 우리 여우사이로 자리 옮겼다’ 등 수많은 쪽지 속에서 정보를 선별한 후 목적지를 확인하고 발길을 옮겨 남은 하루를 유용하게 보낼 곳으로 향했다.

지도라는 게 따로 없던 시절이다. 어울려 지내는 과정에서 익힌 ‘경험적 공간정보’를 토대로 지정된 장소를 찾아가야만 한다.

수 년 전 인터넷 서핑 중에 [그림 1]의 신촌 손지도를 발견하고 감격에 겨워 울 뻔 했다. 이런 지도 하나면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구석구석을 헤매며 발품 팔 필요도 없었을 테고, 숱한 모임이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이 글이 알려져서 아래 손지도의 원 저작자와 연락이 닿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우산속과 장미여관과 겨울나그네 이야기외 함께 이미지 사용에 대한 허락을 정식으로 받고 싶다.)

그림 1. 전자지도가 없던 과거에는 손때 묻은 지도조차도 귀했다. 추측컨대 1989년 무렵의 신촌지역 손지도. (작가 미상)
그림 1. 전자지도가 없던 과거에는 손때 묻은 지도조차도 귀했다. 추측컨대 1989년 무렵의 신촌지역 손지도. (작가 미상)

○ 각종 정보를 표시한 지도를 공유하는 초보적 방법
인터넷 지도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일일이 손으로 지도를 그릴 경우는 사라졌다. 약도조차도 그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주소나 상호만 알려주면 요령껏 지도 검색을 해서 척척 찾아낸다. 좀더 친절하게 지도 링크를 복사하여 메시지에 삽입하여 전달하는 경우라면, 해당 위치가 표시된 지도는 물론이거니와 길 안내를 위한 내비게이션 앱까지 바로 연결되는 세상이 되었다. 위치정보에 대한 공유 방법은 스마트 디지털 DNA를 장착한 현대인들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난이도가 낮은 미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지도를 열어 관심있는 장소에 대한 위치를 찾고 이를 표시하여 공유하는 것은 개인적인 소소한 취미 중 하나다. 친구가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여행 후기로 작성해 놓은 맛집 정보를 토대로 지도에 매핑하여 정리하는 것(그림 2)도 자발적인 POI(관심지점) 데이터 구축 작업의 하나이며, 기관에서 발표한 맛집 목록에 나온 업체들을 개별 조사하여 한 장의 지도로 정리해서 올려놓는 작업(그림 3)도 여가 생활의 일환이다.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방문할 때 쏠쏠하게 활용하기 위한 목적의 작업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포털 카페에 등록하고 지인들과 정보를 나누고자 하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그림 2. 지인의 여행정보를 매핑하여 그 여행에 동참한다.
그림 2. 지인의 여행정보를 매핑하여 그 여행에 동참한다.

그림 3. 기관에서 발표하는 각종 정보도 지도 위에 시각화하여 SNS 공유용 자료로 만든다.
그림 3. 기관에서 발표하는 각종 정보도 지도 위에 시각화하여 SNS 공유용 자료로 만든다.

업무 상 가장 주로 사용하는 도구인 파워포인트를 열어 바탕지도를 하나 깔아두고, 각각의 위치정보를 검색하여 하나하나 매핑하는 과정을 통해서 만드는 ‘노가다’성 작업이다.

공간정보 종사자라면 공간정보 툴을 이용하여 공간정보 속성을 가진 파일-이를 테면 KML 파일이나 SHP 파일 같은 것-을 만들어서 배포해야 마땅할 수 있으나, 공간정보 업계 종사가가 아닌 대부분의 주변 지인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파일이다 보니 이미지 한 장이 오히려 효율적이다.(사용자의 환경을 고려한 생산자의 배려라 할 수 있다. 이실직고하자면 공간정보 툴의 사용과는 거리가 먼 무늬만 공간정보인인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생산된 이미지 파일 형태의 위치정보는 사실 많은 단점이 있다.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듯한 정보 전달 형태를 취한다. 사용자 시각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추가, 수정, 삭제 등의 업데이트를 하고 싶어도 손을 댈 수 없다. 상세 정보를 보기 어렵다. 아무리 확대를 한다쳐도 지도가 레벨별로 확대될 리는 만무하다. 마커를 클릭한다고 해서 상세정보 페이지로 넘어가는 법은 없다. 그냥 보기 좋은 이미지일 뿐이다.

○ 위치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여 하나가 되는 방법
결국 손지도로 신촌을 그린 것이나 파워포인트로 맛집정보를 모아놓은 것이나, 그 자체가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확장이나 재생산이 어려운 고정형, 소통이 어려운 단방향형 정보에 불과할 수 있겠다.
공간정보를 만들고, 제공하고, 이를 다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참여와 공유와 소통의 기반을 갖춘 공간정보 마당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여 각종 위치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으로는 커뮤니티 매핑(Community Mapping)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등록할 수 있는 열린 지도 환경을 제공하여, 교통, 생활정보, 각종 시설물 등 다양한 공간정보 요소들을 공통의 주제로 한데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 콘텐츠 참여 기술을 말한다. 사용자 참여형 지도라고도 할 수 있고 집단지성 기반 지도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동네 청소년 유해업소 위치정보나 안전점검이 필요한 지점들, 보행장애인이 이동하기 불편한 장소 및 요소, 시설물 보수가 필요한 곳 등의 정보를 시민들이 직접 조사하여 지도에 표시하여 공유하는 방식의 열린 정보 환경으로, 많은 지자체와 기관들이 다양한 주제의 커뮤니티 매핑을 설정하여 운영하면서 주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형 지도태깅 공유마당’ 서비스 http://map.seoul.go.kr 도 이러한 공간정보 공유 및 참여 서비스 사상 기반에서 만들어졌다(그림 4). 커뮤니티매핑의 성격을 흡수하면서도 커뮤니티매핑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무분별한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등록이나 단기 일회성 이벤트 형태를 탈피하고자 기획된 흔적이 엿보인다.

공공테마 메뉴를 별도로 구분하여 엄선된 콘텐츠를 기획하여 제공하면서, 이와 동시에 참여테마 메뉴를 통해 누구든지 관심 주제를 등록하고 타 사용자와 교감하여 콘텐츠를 확장해 나가는 커뮤니티매핑 방식도 차용하고 있다. 소수의 공간정보 담당자 뿐만 아닌 각 행정분야 실무자 역시 공간정보 생산자로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적 여건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이 직접 생산 등록한 다양한 시정정보는 관심있는 시민들과 업체, 기관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지도를 매개체로 한 소통 및 협업의 창구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 4. ‘서울형 지도태깅 공유마당’ 서비스는 공간정보 생성, 공유를 통한 소통과 협업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림 4. ‘서울형 지도태깅 공유마당’ 서비스는 공간정보 생성, 공유를 통한 소통과 협업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정부나 기관에서만 참여형 지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용자나 민간기업에서도 참여형 지도를 통해 공통 주제를 공유할 수 있다.

2015년 5월과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가 우리나라를 침범한 적이 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메르스 병원 공개 불가를 선언함으로써 가뜩이나 불안해 하는 국민정서에 답답증을 더하여 더욱 극심한 공포 상태로 몰아갔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의 뼈 아픈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시민들은 결국 자발적 제보와 언론보도 내용을 토대로 메르스맵을 만들어 긴급 정보를 공유했다.

메르스맵은 메르스 확진자 발생지역 및 규모, 의심환자 선별진료소 위치 등을 지도 상에 정리하여 보여주었으며, http://mersmap.com 사이트로 운영되어 오다가 폐쇄 후 서울시와 비주얼다이브에 의해서 안정된 사이트http://issue.visualdive.co.kr 로 다시 계승되었다(그림 5).

그림 5. 2015년 메르스 지도는 참여를 통한 정보 공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그림 5. 2015년 메르스 지도는 참여를 통한 정보 공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지난 10월 29일부터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는 새로운 지도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집회 참여자 소속별 집결지 및 이동 동선을 안내하는 지도가 출현했다. 서울시에서는 현장 주변에서 이용 가능한 개방화장실과 의료구급센터 및 미아보호소 등을 알려주는 지도를 제공하여 배포하였다.

이러한 지도들과 함께,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위치정보와 현장 사진 및 영상을 올려서 공유하는 참여형 지도 서비스 https://citizensmap.com 까지 등장하였다(그림 6). 직접 집회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용자들도 지도를 열람하면서 참석자들과 하나의 목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그림 6.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 정보가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는 촛불집회 지도
그림 6.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 정보가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는 촛불집회 지도

이제 지도는 단순한 일방적인 고정된 정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손으로 그린 지도나 이미지로 만든 지도와 다를 바 없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정보 제공자와 사용자가 만나서 새로운 주제를 가진 지도로 재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지도다.

그 지도는 단순한 공간(空間)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共間)을 다룬다. 그리고, 그 공간(共間)은 공감(共感)으로 채워진다. 지도 안에서 그들은 마침내 하나가 될 것이다.

임영모 0duri@naver.com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GIS 분야에서 전통적 GIS보다는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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