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정국은 대통령 스캔들과 탄핵 이슈로 혼란스럽다. 이번 주 또는 다음 주에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그 시점에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어 헌법재판소가 심의하는 동안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업무를 볼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인용(認容)’이면 대통령직을 파면하고 60일 이내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이 될 것이다. ‘각하(却下)’면 박근혜 대통령이 복직되고 임기를 채우게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하면 60일 이내 실시될 선거가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복직의 경우는 복잡한 양상을 띨 수 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도가 4%에 불과해 남은 임기를 채운다 해도 정치 공백이 길어지고 한국이 필요한 새로운 출발이 늦어질 수 있다.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고 있어 한국은 하루 빨리 새 출발하는 것이 국익과 ‘국민의 행복’의 길을 여는 것이리라.

현재 지도력을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은 국익을 생각한다면 사퇴를 하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하루 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데 그러한 길을 가지는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주 국가라도 국익을 해치는 지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늘 있기 때문에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탄핵이라는 견제 장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탄핵은 법적 문제보다 근본적으로 정치 문제이다.

한국 언론은 탄핵이 등장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탄핵사’를 다루었는데 미국은 1789년에 시작했던 헌정 시작 이후 국회에서 세 번 본격적으로 거론이 되었고 두 번은 상원에서 ‘각하’ 판결이 나왔고 한 번은 탄핵안이 통과 직전에 대통령이 사퇴했다. 다른 나라도 탄핵 사례가 있는데 재판 방법이나 결과는 다양하다. 올해 만해도 남미 대국인 브라질 대통령이 부패 문제로 탄핵이 되어 파면되자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그도 최근에 부패 스캔들에 빠지고 탄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앤드루 존슨 17대 미국 대통령 탄핵 상원 재판, 1868년
앤드루 존슨 17대 미국 대통령 탄핵 상원 재판, 1868년

분명한 것은 탄핵은 시간이 걸리는 정치적 몸살이다. 이유는 민주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뽑은 지도자를 국회의 힘으로 파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몸살은 더욱 큰 병으로 악화할 수도 있고 아니면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이번 대통령의 탄핵이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박 대통령의 몰락은 최순실게이트 이전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낙선했던 후보가 결과를 승복했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가 비교적 순조롭게 대통령을 시작했다. 그런데 취임하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 임기에 시작됐던 ‘민주주의 후퇴’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영향력이 약하지만 저항성이 강했던 진보 정당을 강제 해산했고, 명예훼손 법을 적용해 언론의 자주를 압박했다.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 국정 역사 교과서도 도입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국민들은 독재 시대처럼 ‘공안 정국’이 시작될 것 같다는 우려가 깊어졌다.

둘째, 박 대통령의 몰락은 ‘민주주의 후퇴’ 이외도 ‘헬조선’이라고 할 만큼 경제와 사회적 침체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돼 한국의 고유한 문제는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비교적 빨랐고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타격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는 성장이 계속 둔화되고 있어 경제적 면에서 한국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셋째, 대통령에 의해 ‘민주주의 후퇴’가 가능했던 대통령의 권한과 헌법의 권력 분산을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1장 총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헌법 전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내용으로 대한민국의 레종 데트르(존재의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무한한 권력이 있는 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지도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의 의미는 후퇴했던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 또 한국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는 ‘민주 지수’ 중심으로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 ‘민주 지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말보다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에 더 중요성을 둔다. 예를 들면 어두운 독재 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민주적 절차를 이해하고 잘 지키는 것인지, 최근 민주주의 후퇴 시대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무리한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대통령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서 개헌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러한 질문이 중요하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출발은 희망의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이 우선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극소수의 재벌 중심으로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하고 더욱 열린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최순실게이트를 특정 지었던 정계, 경제계, 교육계 등의 권력의 밀착된 관계로 인한 권력 남용과 부패를 억제할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주시하고 있는 이번 ‘대통령의 탄핵’은 민주주의와 희망의 회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사건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기 위한 기회도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 개인을 초월하는 것이다. 또다시 어두운 시간이 반복되는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민주화를 이룬 상징적인 나라이다. 때문에 나라를 흔들고 있는 ‘대통령 탄핵’ 문제를 극복하고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진 나라이다. 머지않은 날에 그 능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며, 희망도 다시 솟아날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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