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내내 푹 쉬기로 했다. 어제 피곤했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자고나니 눈이 탱탱 부어서 쌍꺼풀이 사라졌다. 아침먹고 딩굴딩굴 쉬고있는데 남편이 채근을 한다. 툴라가는 기차표를 사러가잔다. 기차표의 비밀을 알아내고나니 빨리 실전에 도전하고 싶은게다. 할수없이 끌려나갔다.

쿠르스카야역으로 갔다. 지하철에서 나와서 역쪽으로 가는데 젊은이들이 노래와 연주를 하고 있다. 너무 잘해서 걸음을 멈추고 들었다. 지하철에서 연주하면 소리가 좋게 들린다. 역사건축물이 공명이 잘되게 지어져있다. 훌륭한 공연장이다.

이제는 역이 익숙해서 어렵지않게 들어갔다. 줄을 서서 표를 사려는데 내 앞사람까지 팔고 나부턴 점심시간이라 닫는다한다. 우기고 서있었더니 표를 판다. 무표정하고 기계적이던 러시아사람도 감정이 있긴 하다. 생각대로 싼 가격에 툴라가는 왕복표를 샀다.

점심 먹으러 푸쉬킨식당으로 갔다. 우리집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인데 몰랐다. 매일 지나가는 공원이 푸쉬킨 공원인지도 이제야 알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만...

식당은 문부터 고풍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급스런 느낌이 확 다가온다. 종업원이 안내를 해준다. 유난히 종업원들이 많다. 근데 다들 영어를 잘한다. 모스크바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은 여기 다 모인 듯 싶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영어로 주문했다.

남편이 닭요리를 시켰는데 닭이 한 마리 통째로 왔다. 근데 닭이라기엔 너무 작다. 병아리를 잡은 것 같다. 남편이 맛없다고 툴툴거린다. 나는 아스파라거스 샐러드와 빵을 시켰는데 맛있다.

유명한 식당이다보니 금방 자리가 다찼다. 근데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자리가 다 차는 이유가 음식이 늦게 나와서 할 수없이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손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진찍고 음료수만 먹고가기도 한다. 배낭여행자에겐 다소 부담스런 가격이다.

화장실도 고풍스럽고 이쁘다. 구식 수세식 변기물통이 이쁘다. 구석구석 섬세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근데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다. 다먹고 계산서 가져오라는데 5분넘게 걸린다. 담배급한 남편은 짜증을 낸다.

나는 식당품격에 맞게 우아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남편이 나가고 싶어하는데 못나가게 했다. 우리 자리가 너무 컴컴해서 메뉴도 안보이는데 계산서 가져오면 얼마인지도 안보일판이다. 눈 좋은 남편이 필요하다. 간단한 점심 먹는데 1시간30분이 걸렸다. 집 가까이 있어도 다시 오고싶지는 않다.

집으로 와서 쉬었다 나가기로 했다. 밥먹고 방에서 딩굴거리니깐 졸린다. 잠들면 안될 것 같아서 산책나가자고 했다. 오늘은 길건너 볼쇼이극장을 중심으로 극장가를 가보자고 나갔다.

푸쉬킨공원을 지나서 극장가로 들어섰다. 극장거리라 그런지 장식부터 달라보인다. 하늘에 꽃등이 매달려있다. 밤에 오면 이쁘겠다. 거리에는 노천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분위기가 훈훈하다.

볼쇼이로 가는 도중 명품거리를 만났다. 내가 아는 유명브랜드는 다있다. 거리이름이 스톨레슈니코프거리이다. 모스크바를 건설한 유리 돌고르키동상이 거리입구에 서있다. 매일 동상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이 길이 극장가로 이어지는지 이제야 알았다.

명품들 구경하면서 안목을 높인 다음 계속해서 볼쇼이극장쪽으로 갔다. 드디어 도착했다. 외형은 평범한 극장인데 규모는 상당히 커보인다. 표파는 곳을 열어보니 닫혀있다. 원래는 극장투어가 있는 모양이다. 9월까지 극장투어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예매가 어렵단 말을 듣기는 했다. 암표를 사서 들어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 체질에는 안맞는 일이다.

볼쇼이극장 바로옆에 백화점이 있다. 쭘백화점이다. 모스크바백화점들 이름이 참 심플하다. 굼 또는 쭘이라 외우기는 좋다. 들어가보니 현대식 백화점 스타일이다. 우리나라 강남백화점보다 더 커보인다. 군데군데 무섭게 생긴 경호원들이 손님보다 더 많다.

일단 ATM을 찾는데 안보인다. 안내도를 보니 5층에 있다는데 가보니 5층이 막혀있다. 다시 1층으로 와서 경비한테 물어보니 모른단다. 할 수없이 밖으로 나와서 은행을 찾으니 바로 옆에 있다. 쭘백화점근처 은행이라 한도가 역시 높다. 돈을 찾고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저녁장을 볼겸 지하로 갔다 살구도 사고 생과일쥬스도 사고 저녁에 먹을 스테이크용 안심 한덩어리를 샀다.

백화점에서 나오니 장애인주차구역에 서있는 차를 주차단속 경찰이 들어올리고 있다. 바퀴 4개에 끈을 매달더니 훅 들어올려서 싣고간다. 차주인이 나와보면 참 황당하겠다 싶다. 견인과정이 신기해서 끝까지 지켜봤다.

볼쇼이극장앞을 지나서 극장가를 걸어서 집으로 왔다. 모스크바는 쨈축제로 도시 군데군데 이벤트가 한창이다. 각지역 과일쨈과 각국의 특산물코너가 도시를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우리집 위치가 새삼 좋다. 걸어서 관광도 하고 백화점에서 장도 보고 유명한 식당과 카페들이 근처에 즐비하다.

디저트로 백화점에서 사온 살구를 씻다가 깜짝 놀랬다. 한상자에 2만원이 넘는다. 아르메니아에선 2천원이면 실컷 먹을 살구인데 모스크바 고급백화점의 물가를 실감한다. 며칠사이 물가가 10배 비싼 도시의 한복판에 온것이다.

사람이 간사하다. 잊고 있던 아르메니아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벌써 먼 과거에 묻혔다. 과거는 멀어질수록 더 그리워지나 보다. 생각해보니 오래 전 철모르던 시절 여행이 더 그립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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