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사업 초창기에 만났던 첫 번째 위기에서 세 가지 문제 정의와 해결을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고객사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문 콜센터를 운영하면 개별 매장에서 응대하는 것보다 15~20% 정도 매출 향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고객사 스스로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서, 입소문이 퍼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문제에 직면했다. KT라는 거대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혹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부담스러운 경쟁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 동안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기술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기업보다 리소스도, 자본도 적은 중소기업은 늘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의 파이를 키워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치킨 시장이었다. 피자 시장보다 4배 이상 큰 치킨 시장을 장악한다면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치킨 시장은 난공불락이었다. 수많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아가 봐도 콜센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차라리 치킨 가맹점들을 돌아다니며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한 치킨 매장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생닭을 직접 가위로 자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손목에 이상이 갈 만큼 매우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들에게 물었다.

“아니,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다 잘려진 상태로 닭을 보내주는 것 아니었나요?”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뱉었다.
“요청하면 보내주죠. 하지만 그럴 경우 한 마리당 340원을 본사에 내야 합니다. 그 비용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이 저희들이 직접 잘라야죠. 30마리만 해도 만 원이 훌쩍 넘는데... 어휴~ 일찍 나와서 준비하는 게 훨씬 낫죠.”

그 순간 나는 치킨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를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치킨 시장을 피자 시장과 똑같이 생각하고 달려든 게 화근이었다. 언뜻 보기에 두 시장은 매우 닮아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시장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피자 매장을 창업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창업 비용만 기본적으로 5억 원 이상이 들어가고 아르바이트생도 10~20명 고용해야 하니,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치킨 매장은 아내가 닭을 튀기고 남편이 배달하는 전형적인 ‘생계형 창업’에 속했다. 누군가를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가인 사람들이 치킨 매장을 창업하는 것이다. 그러니 전화를 대신 받아줄 테니 얼마의 수수료를 내라고 하는 것은 340원이 아까워서 직접 닭을 자르고 있는 그들에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치킨집 사장님들이 콜센터를 이용하는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게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치킨집의 문제점을 좀 더 깊숙이 이해하기 위해 이튿날부터 온 동네 치킨집들을 돌아다니며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약 한 달. 마침내 나는 치킨 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제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치킨 매장은 아내와 남편이 함께 운영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내가 살림이나 육아 때문에 집에 들어가게 되면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그 시간을 운영했다. 자신은 닭을 튀기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배달과 전단지 배포를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시간대는 어떤 매장이든 예외 없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자 문제였다. 게다가 전단지를 착실히 붙여주는 아르바이트생을 찾기도 어려웠다. 자신이 직접 나서고 싶어도 몸이 열 개가 아니다보니, 그냥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콜센터 도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그래서 결국 흑자 구조를 만들어준다면? 콜센터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콜센터 도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직접 증명해보이기로 했다.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저렴한 가격에 임대 매물이 하나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고, 한 달 간 준비 끝에 ‘치킨 쇼’라는 매장을 차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모든 주문은 콜센터에서 처리해서 내 휴대폰으로 전송하게 하고, 주문이 없는 오후 시간대에는 직접 밖으로 나가 전단지를 붙이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매장으로 돌아와서 닭을 튀기고 배달을 했다. 전단지도 우편함에 성의 없게 넣어놓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집 앞 대문에 붙였다. 20층 아파트 한 동을 뛰고 나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뭔가 보여주겠다는 오기 하나로 버텼다. 그렇게 한 동씩. 그리고 그 다음엔 옆 동네. 이렇게 홍보 범위를 점차 넓혀가다 보니, 주문 건수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5개월 차쯤 됐을 땐 주문 전화가 폭주했다. 쉴 새 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부득이하게 아내가 주말 피크타임에 세 시간 정도는 닭을 튀기는 것을 도와줬다. 당시 한 달 매출은 600~700만 원에 육박했다. 하루에 20~25마리 정도의 닭을 판매한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지 않고 혼자서 운영해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그 돈은 전부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재료비와 임대료를 제외하고서도 꽤 많은 돈이 남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영업에 나섰다. 그리고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를 다시 찾아 다니며 ‘대표번호 콜센터를 도입하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 수익성도 개선된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내가 직접 치킨 매장을 운영했던 5개월간의 운영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결과는 백전백승이었다. 거래처는 급격히 늘어났고, 어떤 곳은 입찰 없이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였다. 이것은 시장의 문제를, 실제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급기야 KT와 계약을 맺고 있던 업체들도 모두 우리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결국 KT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그 이후 씨엔티테크는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반으로 현재 씨엔티테크는 B2B 외식 주문중개 플랫폼 시장에서 9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총 80개 브랜드, 40,000개 매장과 거래하고 있으며 연간 거래량은 2,400만 건, 거래액수는 7,200억 원에 달한다. 치킨 시장을 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십여 개 정도의 브랜드만이 대표번호 콜센터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었는데, 치킨 시장을 개척한 이후에는 보쌈, 족발, 햄버거, 도시락 굉장히 다양한 외식 브랜드들과 계약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위기를 통해 배웠던 것은 문제는 결국 현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수백 장의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찾는 것으로, 경영학 책을 수백 권 독파하는 것으로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만약 내가 치킨 가맹점들을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살펴보지 않았다면,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또 직접 치킨 매장을 운영해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씨엔티테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혼다자동차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누구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사람이다. 그는 ‘현장(現場)에서 현물(現物)을 관찰하고 현실(現實)을 인식한 후에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3현주의(三現主義)’를 원칙으로 회사를 경영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듯, 문제를 찾으려면 문제가 존재하는 현장에 가야 한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책상에 앉아서 얻은 생각은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내린 결론은 결국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밖에 안 된다. 사업은 절대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전화성 glory@cntt.co.kr 씨엔티테크의 창업자, CEO이자 현재 KBS 도전 K 스타트업 2016의 심사위원 멘토이며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KAIST 학내벤처 1호로 2000년 창업하였고, 전산학의 인공지능을 전공하였다. 14년간 이끌어온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 플랫폼 독보적 1위로 연 1조 규모의 외식주문 중개 거래량에 9년 연속 흑자행진중이다. 경제학을 독학하여 매일경제 TV에서 앵커로도 활동했고, 5개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푸드테크, 인공지능, 컨텐츠 생산, 코딩교육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한 엑셀러레이팅을 주도하고 있으며, 청년기업가상 국무총리상, ICT 혁신 대통령 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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