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톨스토이생가를 추천했다. 검색해보니 툴라근처에 있다. 툴라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백킬로정도 떨어진 곳이다. 기사딸린 차를 렌트할까 알아봤다. 영어하는 기사를 구하기 어려울 듯 하다. 렌트카를 포기하고 기차표를 샀다. 기차표구입시스템을 이해하고나니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침으로 든든하게 김밥을 먹고 출발했다. 이젠 지하철 타는건 전혀 어렵지않다.

혁명광장역에서 갈아타면서 개코를 쓰다듬어줬다. 행운을 가져다 준단다. 소녀가 안고있는 닭도 의미가 있는지 빤질빤질하다. 쿠르스카야역에 도착해서 11번 플랫홈으로 갔다. 전광판에는 1번이라고 써있지만 기차는 11번으로 들어와 선다. 이젠 그정도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여권하고 표를 확인하고 태운다. 우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섯명이 마주앉아 가는 자리다. 롱다리 잘생긴 청년이 내앞에 앉았다. 이럴때는 잘생긴 롱다리보단 자리 작게 차지하는 사람이 더좋다. 다리 12개가 질서있게 자리를 지킨다. 내앞 롱다리가 바깥쪽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대부분의 좌석들이 마주보고 가는데 다들 불편해하지 않는다. 남하고는 말한마디도 나누지않는다. 이젠 그런 상태가 어색하지않고 편하다

툴라에 도착해서 보니 택시가 없다. 잠시 서있으니 택시한대가 도착한다. 톨스토이생가로 가자고 했다. 생가까지는 택시로 10분정도 걸린다. 입구에 내려서 보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차들이 많다.

티켓을 사려고 매표소로 갔다. 내부까지 보려면 구내가이드투어를 해야한단다. 영어가이드없이 러시아말을 들으면서 돌아야한다. 그나마 12시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그냥 자유티켓을 구입했다.

이정표에는 한글로 안내가 되어있다. 중국어도 없고 일본말도 없는데 한글표시가 있으니 기분이 좋다. 톨스토이생가가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관광지인가 보다. 하지만 생가를 돌아보는 내내 한국인은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소림사스님들이 단체로 오셨는지 무리지어 서있다. 러시아말을 잘하는 가이드가 인솔중이다. 우리는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생가로 가는 산책로가 키큰 나무들로 이어져있다. 큰 연못도 있고 작은 연못도 있다. 숲길산책로가 좋다.

생가에 도착해보니 가이드없이는 입장이 안된단다. 살짝 보니 그다지 궁금할것도 없다. 톨스토이가 생전 썼던 전쟁과 평화 원본들이 전시되어있다는데 까막눈이라 소용이 없다. 그러고보니 톨스토이의 장편을 읽은 기억이 없다. 전쟁과평화도 요약본만 읽고 영화는 봤는데 기억이 안난다. 안나까레리나도 드라마로 본 정도다.

안내판을 보고 톨스토이묘지로 갔다. 숲길을 따라 한참 가니 정숙지역이라는 표시는 있는데 묘지가 안보인다. 한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봉긋한 풀더미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비석도 없이 초라한 묘지다.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묘지에 대한 편견이 깨진다. 톨스토이가 아무 표시하지말라고 했다한다. 톨스토이생가가 좋다해서 막연히 왔는데 묘지를 보고나니 톨스토이에 대해 제대로 알고싶어졌다. 근데 러시아말이 아니면 아무 정보도 얻을수가 없는 곳이다.

톨스토이는 어려서 고아가 되었단다. 젊은 시절 방황하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농민을 위한 학교를 짓기도 했단다. 톨스토이생가옆에 학교로 쓰이던 구즈민스키하우스가 있다. 마찬가지로 구내가이드없이는 들어갈수가 없다.

톨스토이공원안은 산책하기는 좋은 곳이다. 러시아의 전형적인 장원이라 한다. 공원을 나오는데 소림사스님들이 아직도 입구에서 구내가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투어안하기를 잘했다. 투어시간 기다리다 허기져서 쓰러졌을듯 싶다.

공원을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안온다. 택시가 안와서 둘러보니 콜택시번호가 벽에 붙어있다. 드디어 우리가 부른 택시가 왔다. 택시불러준 아저씨에게 스바시보를 마구 외쳐드렸다.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주신다.

오랫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정이다. 택시타고 툴라시내로 왔다. 맥도날드가 보여서 세워달라고 했다. 점심을 간신히 떼우고 크렘린으로 갔다.

툴라크렘린은 복원한지 오래되지않은듯 새로 지은듯 깔끔하다. 성곽을 따라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툴라의 특산물중에 생강빵이 눈에 뜨인다. 하나 사서 먹어보니 담백하다.

무기박물관도 있는데 모스크바무기박물관에 비해 초라하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 이쁜 크렘린이다. 성곽에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있는 것이 특이하고 재미있다.

크렘린을 나와 광장으로 갔다. 생강빵 기념탑으로 가서 보니 춤추는 분수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고 줄지어 있다. 분수에서 튀는 물방울을 맞으며 더위를 식힌다. 나도 옷벗고 서고싶을 정도로 덥다.

시간이 여유로와서 역까지 걸었다. 걷는데 덥다. 목도 말라서 카페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켰다. 영어할줄 아는 웨이터가 왔다. 근데 뭔말인지 못알아듣겠다. 겨우 주문했다.

맥주마시고 열기도 식히고 나왔다. 역에 와서 보니 모스크바가는 기차가 서있다. 올때 탄 기차보다 많이 낡았다. 내부도 오래되고 낡았다. 올때는 2시간 걸린 거리가 갈때는 2시간30분 걸린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원래는 극장가의 야경을 보며 집으로 걸어가며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근처의 큰 건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고급쇼핑몰이다. 포시즌호텔이 들어있는 건물이라 식당들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이탈리안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기본적인 영어를 한다. 건들거리는 웨이터가 와서 우리 테이블을 담당해서 주문받고 서빙해준다. 나는 스캘롭들어간 오징어먹물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맛있다.

웨이터가 장난끼있고 재미있다. 변해가는 러시아를 보는듯 하다. 계산서를 가져오더니 팁을 주고싶으면 줘도 된단다. 귀엽게 말해서 얼마안되는 거스름돈을 다줬다. 나오는데 웨이터가 윙크를 날려준다.

식당을 나왔는데도 계속 비가 쏟아진다. 할수없이 지하철타고 집으로 왔다. 극장가를 걸으면서 야경을 즐기려는 계획이 비와 함께 떠내려가고 있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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