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로 두뇌에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리더기업이다.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어 IBM PC에 채택되면서 개인용 PC시대를 활짝 연 인텔은 그 후 최초의 32비트 칩인 ‘인텔 386’부터 시작하여 ‘펜티엄’에 이르기까지 반도체의 혁신을 통해 IT혁명, 디지털 혁명의 역사를 썼다.

인텔은 2위 경쟁사와 큰 격차가 있는 월등한 1위 기업이었지만 매년 새로운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출시하여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였다. 그들은 2년 단위로 Tick-Tock 전략을 전개하였다. Tick해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제조 공정을 새롭게 혁신한 제품을 선보이고, Tock해에는 아키텍처를 새롭게 한 제품을 내놓는 방법으로 매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속도전을 펼쳤다. 굳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지 않아도 경쟁사와 격차를 가져갈 수 있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시장을 변화시켜 자신의 경쟁 우위를 장기적으로 고착시키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제조공정 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져, 인텔은 기존의 Tick-Tock 전략을 수정하여 3년 주기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하였다. 이는 제조공정의 기술 개발 속도가 느려져 이제는 더 이상 2년 단위 전략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아직까지 인텔이 경쟁사 대비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속도전 역량이 저하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속도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인텔에 붉은 신호가 켜진 것이다.

면도기 시장의 세계 1위 기업인 질레트의 신제품 개발 전략도 매우 유명하다. 신제품 개발에는 시간과 금전적 측면에서 많은 노력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신모델이 출시되면 이미 판매 중인 자사의 기존 모델과 충돌하여 판매가 축소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레트는 새로운 제품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선보였다. 자사 제품간에 판매의 충돌이 생기는 현상을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이라고 한다. 어원은 동족 살인으로 자기 종족을 잡아 먹는 것을 가리키는데, 마케팅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점포를 열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항목이다.

이미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큰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 자사의 제품을 사장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굳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넌센스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질레트는 스스로 안하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여 의도적인 변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의 경쟁우위를 지켰다. 애플이 아이팟을 몰아낼 수 있는 아이폰을 만들어 출시하고, 맥북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아이패드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사자가 가젤을 공격하려면 가젤보다 더 빨리 뛰어 추월해 순간적인 공백을 만들어 낸 후 절도 있는 한 방으로 공격해야 파괴력이 생기고 효과적인 사냥을 할 수 있다. 현실의 경쟁 환경은 동태적이다. 나 혼자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있고, 내가 행동하면 나의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이 있다. 내가 뛰면 상대도 뛰고 상대가 더 빨리 뛰면 난 그보다 더 빨라야 한다. 나보다 빠른 위협적인 경쟁자가 없는 경우에도 때로는 자기가 자기 자신의 경쟁자가 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끊임없이 경쟁력을 유지하여 영생을 꾀하는 것이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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