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美 소도시의 교육 개혁, ‘희망’을 보다

발행일시 : 16-12-13 00:1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美 소도시의 교육 개혁, ‘희망’을 보다

필자는 지난 11월 말에 고향인 미시간 주의 앤아버를 떠나 동생이 사는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프로비던스 시로 이사했다. 오랜 기간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가족 가까이 살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새 생활을 시작하면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해가고 있다. 로드아일랜드 주는 미시간 주와 같은 시간대이지만 미국 동쪽 끝에 있어 해가 더 빨리 진다. 바다에 가까워 조금 습하고 바람도 잘 분다. 독특한 방언도 신기하다. 로드아일랜드 주는 미국을 건국했던 13주 중에 하나로 미국에서는 역사가 길고 18세기에 지은 집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필자가 프로비던스 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교육에 대한 부분이다. 앤아버에는 미시간 대학교가 있어 미국의 대표적 ‘대학촌’(college town)이다. 그 영향으로 공립학교가 도시의 자랑거리이며 한국의 교육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육구(school district)가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음악 교육이 유명한데 필자의 고등 학교 동창 중에 몇 명은 음대에 가서 프로 연주자가 되었다.

앤아버 주민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립학교에 대한 평이 좋고 자랑거리로 생각해 공립학교를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은 전반적으로 공립학교를 각 교육구가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교사 채용을 포함해 여러 교육 운영의 모든 책임이 교육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교육의 재정과 운영이 주민의 투표를 통해서 결정이 된다. 앤아버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대학촌으로 주민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만큼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美 소도시의 교육 개혁, ‘희망’을 보다

프로비던스에 온지 얼마 안 되지만 몇 몇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앤아버와 달리 공립학교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를 더 선호하고 학교에 대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사립학교의 비싼 등록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 교육 개혁은 잘 보이지 않은 곳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첫째는 자율 자립형 학교(charter school)이다. 이것도 주마다 다르지만,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비영리 자율 자립형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자율 자립형 학교는 특수한 목적이 있는 곳도 많고 교육구와는 다른 독자적 방향의 학교를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 재정은 모금과 지역 그리고 주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학부모의 등록금 부담이 없다. 자율 자립형 학교는 말 그대로 운영의 자율도가 높다.

가까운 예를 들면 필자의 7살 조카가 다중 언어 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학교는 다중 언어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져 모든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면서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 코스를 몰입 방식으로 배우고 있다. 조카는 스페인어 코스에 있어 아침에는 영어, 오후에는 스페인어로 교육을 받는다. 이 지역에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민자가 많아 학생들 중에 절반 정도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어 조카는 다양한 학생들과 같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작지만 교사가 우수하고 초기 언어 교육이 효과가 있다는 평을 받고 있어서 입학은 추첨을 통해서 결정이 되는데 경쟁률이 아주 높다. 바로 근처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도 나쁘지 않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차선책이다. 물론 모든 자율 자립형 학교가 평이 좋은 것은 아니고 학부모들이 기피하는 곳도 있다.

둘째는 공립학교의 개혁이다. 평이 좋은 자율 자립형 학교는 경쟁률이 높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사립학교의 등록금은 비싸 일반 가정에서는 부담스럽다. 때문에 최근에는 일반 공립학교의 개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필자의 14살 조카는 동네 공립 중학교에서 연극반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이 연극반은 교육구와 협력하는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지역의 교육 기관과 문화 단체의 협력과 기업과 개인의 모금으로 설립된 이 프로그램은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고 진행된다. 연극반 이외 과학 기술 체험, 사진반, 요리 학습,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교육을 위한 시설을 유치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학교가 운영하기 어려운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학생의 ‘교육 체험’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 입학 준비나 교과와 관련한 공부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주제로 학생의 적극 참여가 요구되는 체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사회에서 필요한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함께 참여한다. 이번 성탄절에 맞춰 연극반은 찰스 디킨스의‘크리스마스 캐럴’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연극을 위해 학부모들도 힘을 모아 무대를 만들었고 연극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모금 활동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은 일하는 부모를 위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미국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학교가 끝나면 아이를 봐 줄 곳이 필요하다. 아이가 학교에 남고 활동하게 되면 아이 혼자 집에 있거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개인 학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선택이다.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美 소도시의 교육 개혁, ‘희망’을 보다

지금 사는 집 바로 근처에 크고 오래된 고등학교가 있는데, 올 가을부터 새로 임용된 교장의 인터뷰를 읽었다. 지역 주민에 따르면 학교의 평판이 좋지 않아 이사하거나 어렵게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새 교장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이 배울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첫 걸음은 학생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는 것이다. 즉, 학생은 관리 대상이 아닌 키워야 할 귀중한 개인이며 지역 그리고 나아가서 나라의 미래이다.

통계를 보면 프로비던스 지역의 공립학교는 열악한 곳이 많다. 그런데 지역과 연계해서 그 열악함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정은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 이외에 지역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지역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중언어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학생, 학부모, 공동체에 많은 기관과 기업의 협력으로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를 설립한 것은 매우 훌륭한 성과이자 본보기이다.

프로비던스는 한국에서 먼 곳에 있지만 자녀의 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 한국은 현재의 정치적 공백과 혼란이 수습되면 교육 개혁이 다시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비던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학생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지역과 연계해서 학생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을 요구하는 매력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학생들의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종국에는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이다. 학생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 너와 나, 우리 모두 행복한 나라를 위해.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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