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미있는 동영상을 하나 받았다. 아름다운 여인의 눈에서부터 시선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영상이다. 처음엔 여인의 얼굴에서 잔디밭에 누워있는 여인의 몸을 비추며 계속 올라간다. 그 집 정원과 그 동네로 훌쩍 시선이 높아지더니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시야는 그 도시 나라로 커지다 대기권 바깥으로 나간다. 지구와 은하계 그리고 광대한 우주로 점점 커진다. 처음에 출연했던 여인은 이미 이 영상과는 무관하다 싶은 즈음 놀라운 규모의 우주를 보여주던 영상은 더 빠른 속도로 여인에게 되돌아가기 시작하고 다시 여인의 눈을 비춘다. 잠시 여인의 눈을 비추던 영상은 이제 여인의 동공 안으로 파고든다. 혈관과 혈구를 비추며 세포 안으로 끝없이 확대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어 어마어마한 마이크로의 세계가 이어진다. 영상은 다시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돌아와 끝난다.

원래 어떤 일이든 거시와 미시의 측면을 이해하고 보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한 현상 같지만 어떤 성공적인 일은 반드시 그 두 가지 배경의 단단하고 조화로운 결합이다. IT 비즈니스라는 것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 측면의 심지어 예술적인 결합에까지 이르러야 성공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형성 과정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IT는 기본적으로 기술과 개발과정이다. 그러나 기술 그 날것 상태로는 그들만의 리그다. 기술이 사용자에게 소개되려면 제품과 서비스라는 가공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기획이다. 기획은 기술을 랩과 테스트베드에서 세상으로 태어나게 해준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 지는 것이 생물학적인 탄생이라면 기획을 거쳐 제품과 서비스로 탄생하는 것은 사회적인 탄생인 것이다.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선거권을 갖고 스스로 생산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성인의 속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일반 사용자가 대하는 기술은 어린 시절을 떨치고 사회적으로 데뷰하는 기획을 거친 개발들이다.

속성상 기술과 개발은 마이크로의 속성을 가진다. 좀더 정교하고 좀더 효율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 모를 많은 신기한 재료가 되는 기능들. 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전문 지식들이 총동원 되고 경쟁적으로 심화된다. 좀더 완벽한 기능과 효율적인 구현이 지상 과제가 된다.

그 기능 간의 아름답고 영롱한 논리적 연결은 필수다. 어떤 때는 같은 기능을 더 우아한 논리와 효율로 구현하는 경쟁자가 도전하기도 한다. 혹 이 구도 안에 휘말리면 ‘더 효율적이기 위한 비효율적 경쟁’이 격화되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 내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표준'을 정하는 것이 돼버리는 아이러니도 실제로 있는 일이다. 물론 표준의 이슈는 비즈니스와 엮이면 약간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것이 기술의 마이크로한 ‘사회화 속성’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렇게 탄생된 기술. 탄생에도 돈이 들고 테스트도 돈이 든다. 수정하고 버그잡고 완벽을 기울이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돈은 계속 든다. 경쟁 기술이 더 빨리 태어나기 전에 데뷰시켜야 한다.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하는 기획 단계로 접어들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기획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기획은 사실 기술을 데뷰시키는 방법이긴 하나, 절대 그 기술이 데뷰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당연할 지도 모르는 명제는 개발자들에겐 참 어려운 수용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부정인데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그리 흔하겠는가. 집중력 있는 훌륭한 개발자일 수록 그 과정은 본능적으로 어렵다.

가끔 경영 마인드가 있는 훌륭한 개발자들은 파일롯 테스트라는 것을 해가며 개발을 한다. 시장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여기에도 종종 두 가지 오류가 공존한다. 시장에 부정적인 반응을 지금 개발 상태를 전제로 ‘극복' 하려는 방향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시장과 사람을 동일시 한다는 점이다. 훌륭한 경영마인드 만으로 조금 아쉬워지는 영역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시장에 대한 이해보다 먼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주로 낫놓고 기술의 ‘ㄱ'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기획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 사용의 전후 맥락과 심리를 파악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사용할 때와 혼자 사용할 때를 생각해야 하고 그 사용으로 인해 변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니즈를 넘어서서 사용자의 어떤 감정이 그 제품과 서비스와 연결될 것인가를 공감해야 한다. 확산의 차원에서는 사람을 알아야 하고 사회를 알아야 하고 손익의 차원에서는 시장과 유통구조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는 사람과 사회를 목적으로 시장을 요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과 개발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낯선 매크로한 접근이 된다. 멘붕오기 딱 좋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종종 기획과 개발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때가 많다. 특히 개발이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을 때는 거의 필수적으로 기획과 개발간의 ‘개싸움’이 벌어진다. 본말이 전도되고 쓸데없는 감정 싸움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 통과의례 같은 상황을 현명하게 넘기고 성공의 과실을 나눠먹는 부러운 팀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째 기획에게 몸을 던지고 자존심을 내려놓는 개발. 둘 째 개발을 존중하고 항상 물어보고 확인하는 기획. 세 째 둘간의 끈끈한 신뢰를 북돋고 협업과 공감의 기술적 팁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PM 혹은 리더.

매크로와 마이크로는 속성상 한 사람에게 동시에 발현되기 어려운 특징이다. 그러나 어떤 성공적인 일의 수행을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 IT는 더욱 그러하다. 양 쪽의 전문인력이 웬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하며 그 자부심에 찬 전문인력들은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거기다 서로 같은 목적 아래 시간의 흐름과 장애에도 변질되지 않는 공고한 신뢰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여기엔 몸에 잘 맞는 옷과 같은 협업 기술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공의 과실은 관련자 모두가 공평하고 모두 행복하게 나누어져야 하고 책임도 역시 같아져야 한다는.

어쩐지 어려워 보인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이상적으로 조화로울 수 있단 말인가. 실력과 자존심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신뢰에 기술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당신에게 묻는다. 그래서 하나의 IT 서비스의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지 감이 좀 잡히는가. 우리나라의 IT비즈니스 구조에서 왜 성공한 서비스가 잘 보이지 않는지. 앞으로 경제를 좌우할 IT산업의 주도권, 누군가의 독선과 한 영역의 강력한 드라이브 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IT역시 촛불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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