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신 ‘암흑기’를 맞지 않으려면

발행일시 : 2016-12-28 00:1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신 ‘암흑기’를 맞지 않으려면

미국은 11월 말에 있는 추수감사절부터 성탄절까지는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바쁘다. 전국적으로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많아 교통이 혼잡하고 선물 준비로 상가가 붐비고 인터넷 배달도 늦다. 한국과 일본에 살면서 거의 매년 이 때 미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했기 때문에 익숙한 풍경이다.

물건을 살 때 2000년 초부터 이용했던 인터넷 쇼핑이 신기하고 편리했지만 2010년 부터는 인터넷 구매보다는 지역의 오래된 상점에 가서 옛날처럼 물건을 보면서 천천히 고른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점차 디지털화되면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즐겁게 느껴진다. 특히 눈 오는 밤에 거리에 나가서 상점의 화려한 장식을 보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치 영화처럼 낭만적 분위기에 젖어든다.

그런데 올해는 그 낭만보다는 불안함이 앞선다. 올해는 충격적인 일이 많았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필자의 주변이든 다른 사회에서든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고 또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살펴봤을 때는 일반화된 전쟁, 테러, 범죄, 그리고 빈곤으로 인해서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EU를 거부하는 영국 시민,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 국민, 박근혜 대통령에 실망한 한국 국민들 또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오랜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2014년 가을에 미국에 돌아왔다. 첫 한 해는 다시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사회의 이면들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점점 잘 보게 된다. 지난여름 앤아버의 이발소에서 이발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친절한 30대 백인이었는데 대학을 입학했지만, 등록금이 비싸서 그만 두고 전문학교에서 이발 기술을 배워 이발사가 됐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일이 되었는데 부인의 출산 휴무가 일주일 밖에 안 돼 할머니가 아기를 봐준다고 했다.

또 올해 경찰의 흑인에 대한 강압적 대응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옛날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나 같은 동네에 살았던 흑인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 아이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글을 접하게 됐다. 이는 미국 사회가 사회구성원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안전하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을에는 집을 관리할 때 간혹 도움을 주는 동네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여동생이 마약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약물 중독에 대해서는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각됐던 이슈였다. 그런데 바로 가까운 이웃에게서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로드아일랜드 주에 이사하고 나서 동네 정보 교환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고 며칠 후 오후 4시 평범한 주택가에서 자동차 두 대의 창문이 깨진 도난 사건이 있었다. 이사하기 전에 동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우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일들은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복지 혜택이 약해서 출산한지 일주일 만에 일해야 하는 사회, 죽음의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 길거리가 무서워서 다니기 불안한 사회가 언제 개선될지 알 수 없다.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신 ‘암흑기’를 맞지 않으려면

미국을 만든 ‘건국 아버지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잘 했고 역사 공부도 많이 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이유로 민주주의가 독재로, 공화국이 제국주의로 변하는 가였다. 그래서 민주의의가 독재, 공화국이 제국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미국 헌법을 만들면서 민주주의가 수호되도록 권력을 분산했다. 올해는 헌법에 담겨진 그러한 사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안 중에 하나가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독재 제국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불안의 측면은 사회의 내부적인 불안이다.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가 망해갈 즈음에는 로마 내부 사회는 부패가 극에 달했고, 그로 인해 통치 권력의 사회 보호권이 상실됐고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다. 결국 로마 사회는 내부적 불안의 심화로 붕괴되고 동서로 쪼개졌다. 그리고 서부 유럽은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가 시작됐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일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표면적으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일본과 같이 안전하게 보이는 나라도 좀 더 내부적으로 깊숙이 들여다보면 상당한 사회적 불안이 존재한다. 일본은 저출생율, 높은 자살률과 노인의 고독사, 고용의 불안, 점점 쇠퇴하는 농어촌 등 사회 내부에 점점 더 심화되는 불안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마의 붕괴는 주변부 지역인 시골에서부터 시작됐고 이후 점차 중심지인 로마로 퍼졌다.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적어지면 그 사회와 나라는 망하게 마련이다. 안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미국 내에서 팽배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가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국의 상황도 그리 녹록해보이지는 않는다. 국가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국민들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현재 헌법재판소와 특검이 대통령의 실정과 부정부패 연루 사건을 조사하고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결국 많은 수의 한국 국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해서 생기는 불안감이 높아지면 한국 사회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불안의 표출이 한국 민주주의 수호의 방향으로 선회되기를 소망한다.

또 다른 사회적 불안의 요인 중의 하나는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에 따른 것이다. 사실 IT 기술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맞게 해 사람들에게 각종 편리함을 제공하고 지구촌 시대를 열었던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기술의 수혜를 받고 있는 층 그 이면에는 사회적 소외계층들도 증가한다는 불합리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의 했던 일들이 모두 IT에 의해 자동화되고 기계화되고 있고, 수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의 기술이 인간의 사고 수준에 근접해가고 있어 사람이 없이도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2016년의 키워드 중에 하나가 ‘글로벌화 시대의 끝’이었다. 이것은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이 유럽 연합을 벗어난 것과 세계의 지붕으로 인지되었던 미국도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중심의 국수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둔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IT로 인해 글로벌화가 이미 상당히 진전됐기 때문에 이미 진전된 글로벌화를 멈추거나 퇴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글로벌화, 디지털 혁명시대가 ‘신 암흑기’가 아닌 사회 구성원이 안전해지고 보다 견고한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IT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인정하면서 사회적 불안을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와 서민의 불안의 완화부터 시작돼야 한다. 각 정당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발판보다 사회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야 한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남의 탓이 아니라 로마 제국처럼 우리 주변에서 희망이 죽어가고 있으며, 그런 현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개선과 발전을 향하여.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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