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속도경영이 풍미했지만 일각에서는 속도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제품 경쟁력이 저하되거나 경영자원이 남용되고, 낮은 수준의 혁신이 반복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식 속도경영은 ‘빨리빨리’만 추구하여 부실공사와 편법, 탈법이 많고, 효율성과 원가절감에는 뛰어나지만 경직적이어서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조직의 피로감만 높아진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이제는 속도 경영은 한계에 달했고 슬로우 경영이나 창의를 존중하는 다른 형태의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속도경영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정한 속도 경영은 혁신을 바탕으로 한다. 그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인 업무 방법을 개선하여 속도를 높이고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직원들의 시간을 지나치게 압박하여 여유와 자율을 빼앗고, 궁극적으로 조직원들의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속도 경영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속도를 높였으나 중장기적으로 속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속도가 높아져야 진정한 속도 경영을 하는 것이다.

또한 속도경영의 준거는 고객가치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 오는 고객 중에 주문하고 빠른 시간 내에 식사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식당의 인테리어나 분위기도 음미하고 친구와 담소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서빙 대기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알아 차리고 원할 때 즉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 가치를 찾아내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꾀가 필요하다. 속도 경영은 창의성과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빨리빨리’는 고객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에만 적용되어야 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진정한 속도 경영이 되고 업그레이드된 한국식 속도 경영이 탄생할 것이다.

기업들은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반응속도를 높여 생존하는 경우가 있고, 반면에 상대보다 빠르게 움직여서 경쟁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속도가 필요한 이유는 변화에 적응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운동과 속도는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의 경험 방식을 구성하는 원리이고 속도는 하나의 권력이 된다. 속도가 증가되면 사고의 스케일도 달라지게 된다. 항공 노선의 확대나 KTX개통으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되면서 모든 사고는 지역 단위에서 전국 단위로 변한다. 단위 시간 내에 처리하고 이동할 수 있는 양이 커지면서 인식의 지평이 확대된다. 이는 3차원의 세계관과 1차원의 세계관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빠른 속도를 경험해 보지 못하면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차원이 높아지고 새로운 전략의 구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속도는 조급함과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 시간을 길게 보면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 빠름과 느림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 목표와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길게, 느리게 생각해야 한다. 대국적 관점을 놓치지 않되 실행은 빠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미하이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연구 결과로 밝힌 것처럼 몰입하는 자에게 1분 1초는 대단히 긴 시간이다. 시속 150 km의 강속구를 상대로 홈런을 수백 개씩 쳐내는 전설의 타자들에게는 타격을 하는 순간이 그렇게 길고 공이 커 보인다고 한다. 그렇지만 절대자의 눈으로 보면 100년이라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도는 피로감을 동반한다. 자칫 잘못하면 조급증을 유발한다. 잘못 이해하고 실행하면 품질을 희생하고 급기야는 성과를 망친다. 빠른 속도로 가면서 가까이 보면 쉽게 피곤해지고 핵심을 놓친다.속도가 빠를수록 높이 날아 멀고 길게 봐야 한다. 그것은 비행기를 타고 창문 아래를 내려다 보면 창 밖의 풍경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아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

삶의 질이 높고 품위 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느림의 미학에도 눈을 돌려 속도경쟁으로 인해 정서가 피폐해지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빨리 가면 사고의 스케일이 커지기도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갈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 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은가?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여유를 확보하여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창의도 꽃피우고 풍부한 감성도 생겨날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속도는 중요한 경쟁 역량이다. 그러나 속도 그 자체가 조직을 규율하는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속도는 실행을 위한 방법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속도경영이란 무조건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 속도를 높이거나 낮춤으로써 나만의 속도로 경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졸속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고객 가치와 타임투마켓(시장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속도경영 전략을 잘못 이해하여 무턱대고 ‘빨리빨리’만 외치며 부지런만 떨거나 조급증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고객가치와 혁신에 바탕을 두고 경쟁환경을 고려하여 나의 강점을 무기로 나만의 속도전을 전개한다면, 속도경영 전략은 강자에게 있어서나 약자에게 있어서나 매우 유효한 경쟁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속도와 혁신을 DNA로 가지고 있는 한국기업들에게는 속도경영이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고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최적의 경영전략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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