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계획은 Flinders Ranges(플린더스 산맥 지역)였다. 진정한 호주의 아웃백(Outback)을 경험하고자 여러 달 이상 고민했지만 그 이상 여행하기는 어렵다는 결론 때문이다. 유럽의 전 국가를 품어도 남는 거대한 대륙 국가인 호주의 붉은 아웃백은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열흘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다는 코라의 조언도 있었다. 코라는 Œ은 시절, 호주 전역을 캠핑차처럼 셀프로 개조한 봉고차를 타고 여행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 아웃백 여행의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설명했다.

플린더스 레인저스로 떠나기 몇 달 전에 워밍업으로 코라의 친구가 사는 멜번을 다녀왔다. 캔버라에서 멜번까지 구글맵으로 6시간 35분(643km)이지만, 실제로는 8시간 이상 걸리는 긴 거리. 400km 남짓인 서울에서 부산보다 훨씬 멀다. 그러나 막상 떠날 때는 2, 3시간만 더 운전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코라가 아무리 옆에서 잔소리를 하며 여행 준비에 채근을 해도, 나는 그저 느긋한 마음으로 있었다.

멜번으로 떠나기 전, 오전 내내 준비하는 코라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각종 이부자리며 주방용품 등 이사를 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1시간 정도 만에 후다닥 준비를 마쳤는데, 코라의 짐들은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끝났다. 그날 하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코라의 긴 여행준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비록 머물 곳이 있더라도 만약을 위해 침낭을 챙겨야 한다. 휴대용 가스버너나 간단한 조리 기구 등도 챙겨가는 것이 좋다는 사실이다.

3텀이 끝난 후 2주 간의 방학을 이용해 플린더스 레인저스로 떠났다. 우리는 Wagga Wagga(와가 와가), Mildura(밀두라), Renmark(렌마크), Peterborough(피터보로)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했다. 여러 경로 중 제일 빠른 코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맵으로 15시간 이상이므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한다는 단단한 각오가 있었다.

74세 노인과 그녀의 4살 암컷 반려견, 중학생 딸 아이와 나, 이렇게 여자 넷은 오전 내내 준비를 마치고 피쉬앤칩스로 점심을 먹은 후에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긴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운전대를 잡았다. 주어진 이 기회 동안 마음껏 여행을 해보리라 끊임없이 되뇌이면서 말이다. 겨울이지만 화창한 캔버라의 그날의 날씨가 잊혀지지 않는다.

호주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보다 넓어 운전하기가 편하다. 대도시 주변이 아니면 어디에도 교통체증으로 막히는 구간이 없다. 중간 중간 추월구간이 있어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더라도 양보를 하거나 앞질러 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낯선 땅,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물론 예상치 못한 코스도 드물지 않게 만나므로 도로 이정표를 눈여겨봐야 한다.

드넓고 막힘없는 도로와 광활한 땅과 맞닿은 장엄한 하늘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이 광경에 운전은 피곤하기는커녕 신이 났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운전해서 적어도 다음 날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장대한 원을 세웠다. 나는 목적지 중심의 여행을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서 여행해야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오후 3시쯤에 이르러 코라가 숙박지를 찾아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어 조그만 더 가자고 떼를 쓰니 완강히 거절했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자 하다가 결국에는 야영을 해야 하는 곳이 호주다. 일단 길을 떠나면 작은 마을조차 만나기 어려운 곳이 호주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먹고 쉴 곳, 생리현상을 해결할 곳이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없어야 한다. 길을 떠나면 바로 야생의 삶을 각오해야 한다고 코라는 말한다.

아고다, 호텔스닷컴, 트리바고 등 숙박 예약 사이트를 통해 우리가 있는 주변 지역 중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숙박 업소를 찾았다. 조금 더 가다보면 숙박 업소가 있는 지역과 아주 멀어지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1박 2일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한 플린더스 레인저스는 2박 3일만에 피터보로를 목적에 두고 아쉽게 접어야 했다.

겨울임에도 싱그러운 초록빛 풀과 노란 카놀라밭이 대비를 이루며 이어지는 광경이 싱그럽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땅이라서 기대할 것이 없을 거라는 코라의 말과 달리, 나는 아무 것도 없음에 심취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비슷한데, 그 속에 예상치 못한 또 낯선 모습이 있다. 쓸모 없는 황무지를 개간해 가도 가도 끝없는 곳을 일구어낸 인간의 힘에 놀라고, 그 땅과 하늘과 맞닿은 자연과의 조화에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달리고 달린 끝에 첫 숙박지인 Balranald(발러놀드)에 저녁 7시쯤 도착했다.

우리 일정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온수 이상으로 모텔 관리자까지 불러 수리를 했으나 여전히 작동 불능. 결국 다음 날, 코라의 기지로 비어있는 다른 방에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씻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씻어야 한다. 오늘 밤 우리가 어디에서 자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밀두라는 우리가 가는 여정 중에 가장 큰 도시라서 그런지 쇼핑 상가와 가게들이 즐비했다. 여행자가 많은 것을 보니 우리처럼 호주의 아웃백으로 떠나기 전에 쇼핑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인 듯 하다. 이날은 마침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Country Music Festival)이 있어 우리도 잠깐 짬을 내어 식사를 하고 공연을 관람했다.

이후 렌마크까지 무탈하게 여행이 이어지는듯 보였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하늘이 변하기 시작했다. 잔뜻 흐리더니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급기야는 무섭게 바람이 몰아쳤다. 코라를 걱정하는 가족들이 메일을 보내왔고, 우리는 태풍이 왔다는 소식을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코라가 여행을 접자고 했을 때, 낙담했다. 다음 날이면 목적지인 플린더스 레인저스에 도착할 수 있는데, 다시 캔버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여행보다는 안전이 우선이었고, 하는 수 없이 애들레이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여행은 예상 밖의 즐거움이 크다. 낙담하는 마음이 그새 바뀐 것은 버라(Burra)를 거쳐가면서부터다. 코라나 나나 혹시 태풍이 잦아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애들레이드로 바로 갈 수 있는 도로 대신 일단 버라로 가기로 결정했다. 버라를 기준으로 북쪽에 플린더스 레인저로 향하는 피터보로, 남쪽에 애들레이드가 있다. 버라는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답다. 굽이 굽이 굽어진 산 길, 큰 나무에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예쁜 새떼, 가는 곳곳이 마치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때 문득 목적지에 도달할 생각만 했지, 오가는 여정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뜻 밖의 기쁨, 예상 밖의 즐거움이 참맛인 여행다운 여행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후부터는 폭우를 뚫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많았다. 태풍 2개가 휩쓸고 가면서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가 동시에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있는 그 시간 자체를 받아들이며 즐기기로 했다. 캔버라로 다시 돌아가는 여행이지만 목적지만 달라졌을 뿐 이것 역시 여행이라는 사실. 애들레이드에서 1박을 하는 동안, 호주에서 제일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 본사 겸 공장인 ‘헤이즈(Haigh’s)’를 방문했다. 인터넷으로 공장 관람 예약을 하고 갔는데,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아쉽게도 공장은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초콜릿과 아몬드채를 섞어 알모양으로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작업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초콜릿 가격은 그들의 자부심만큼 높았다.

머레이 브릿지(Murray Bridge), 메닝기(Meninigie), 쿠롱 국립 공원(Coorong National Park), 키스(Keith)를 거쳐 엔힐(Nhill)에서 가까운 리틀 데저트(Little Desert)로 들어갔다. 호주의 사막은 어떤 모습일까 싶어서 선택한 코스. 시드니에서 가까운 포트 스테판은 고운 모래 사막이 인상적이라면 이곳은 잡목과 잡초, 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사막하면 모래 사막이라는 등식이 없는 곳,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리틀 데저트 안으로 차를 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승용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서 포기했다. 잠시 나마 그곳을 걸어본 것으로 만족했다.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곳으로 이어주는 길 위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하는 여행을 이렇게 마쳤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여행의 참 의미를 알게 해준 여행다운 여행을 경험한 걸로 행복했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아이와 함께 머물면서, 두 번째로 로컬처럼 살아보는 중이다. I AM 수행과 명상하는 삶을 추구한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그들의 세계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의 하늘과 구름, 별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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