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도서관과 열린 민주 사회

발행일시 : 2017-01-11 00:10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도서관과 열린 민주 사회

2014년 가을 학기부터 필자는 ‘독립 학자’가 되었다. 소속이 중요한 한국에서 어색한 말이지만,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인정을 받은 신분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개인 사정으로 대학 교단에 서지 못하지만, 계속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독립 학자’에게는 연구 자료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에 있는 사람은 소속 학교 도서관과 데이터베이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독립 학자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공에게 열려있는 도서관들이 많아 독립 학자들이 연구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50개 주로 구성된 미국은 연방국으로 가장 큰 도서관은 워싱턴에 있는 국회도서관이다. 미국에서 출간된 모든 책이 이 도서관에 소장하고 다른 귀중한 자료가 많다. 한국어 자료가 12만 권에 달하는데 대출되지는 않지만 워싱턴에 가면 자유롭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사는 곳에서 워싱턴은 먼 거리에 있어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해서 특별한 목적 이외에는 필자가 살고 있는 곳에 가까운 도서관을 이용한다. 미국의 모든 주는 주립 대학이 있고 인구가 많은 주에는 몇 개 더 있다. 시립 대학은 많지 않지만, 각 지역에서 운영하는 2년제 단기 대학도 있다. 주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모두 경우에 주민이나 시민은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고 안에서 자료를 열람하고 구독하는 전자 학술지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 주민의 신분이 확인이 되면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주립 대학 도서관도 많다. 학문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전자 학술지나 데이터베이스가 책보다 더 중요한 분야가 많아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큰 도임이 된다.

대학 도서관 이외 일반 시민을 위한 공립 도서관은 각 도시와 지역에 있다. 인터넷과 전자책의 보급으로 공립 도서관의 이용이 떨어져 정부에서 지원을 감액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독립 학자, 특히 지역과 관련한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공립 도서관의 장점은 그 지역민의 성격과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뉴욕시의 퀸스 구가 운영하는 퀸스도서관이 소장하는 750만 권 중에 90만 권은 외국어로 되어 있다(미국 공립 도서관은 소장수는 책, 음악, 영상 자료를 모두 포함). 한국 사람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 한국어 책이 5.6만 권에 달하고 한국어 책 소장수가 미국에 10위 안에 들어간다.

퀸스도서관 한국어 페이지에서 ‘박완서’ 검색 결과는 93 권이다. <퀸스도서관 한국어 페이지에서 ‘박완서’ 검색 결과는 93 권이다.>

공립 도서관은 주 단위로 연합을 만들고 기본 전자 학술지 데이터베이스를 구독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서로 대출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큰 도시 중에 연구를 지원하는 공립 도서관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뉴욕공립도서관이다.

사립 대학은 말 그대로 사립이기 때문에 개방에 대한 제한이 있다. 하버드처럼 명문 사립 대학은 필요한 자료가 공립 도서관에 없을 경우 출입이 가능하고 일 년 회비를 내면 출입과 대출이 자유롭다. 그런데 미국은 사립 대학보다 주립 대학이 더 많아 특정 지역 외에는 무료로 주립 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독립 학자는 가까운 공립 도서관과 주립 대학 도서관을 이용해 책과 전자 학술지, 즉 기본 연구 자료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편하게 소속 없이 연구가 가능한 것은 공공성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서유럽처럼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미국 속에 존재하는 ‘정보 사회주의’이다. 지역에서 세금을 내기 때문에 지역 공립 도서관은 당연히 지역 주민에게 개방되고 주에 세금을 내기 때문에 주립 대학 도서관도 당연히 주민에게 개방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정보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이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공립 도서관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공부하는 시민은 올바른 선택할 수 있다는 이념으로부터 전국에 퍼졌다. 물론 당시에 흑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제한이 많아서 아름다운 말 속에 추악한 현실이 있었지만, 이념은 아름답고 강했다.

주립 대학 오래 전부터 몇 개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대학 교육이 보편되면서 주립 대학이 많아졌다. 이는 당시에 튼튼한 중산층을 만들기 위한 정책 중에 하나로 막대한 공공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부터 미국 시민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서 커다란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로스앤젤레스공립도서관 한국어 신간 소개에서 시민은 구입하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게 의뢰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공립도서관 한국어 신간 소개에서 시민은 구입하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게 의뢰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퍼진 신자유주 이념 때문에 미국의 ‘정보 사회주의’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공공에 시장의 논리가 도입되면서 1990년대에 정보 디지털화 때문에 많은 공립 도서관에는 공적 지원이 감액되었다. 그래서 공립 도서관들은 기부금을 받으려고 노력했고 구조조정도 많았다. 뉴욕공립도서관은 연구 지원을 감액했고 이용자가 적은 분관을 폐쇄했다. 새로운 자료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도 빡빡해졌다.

일부 명문 대학을 제외하고 주립, 사립 대학들도 영향을 받았다. 주립 대학은 정부의 지원이 감액되자 등록금을 올리고 기부금을 모으려고 했으며 기부금에 예민했던 사립 대학은 더 심화됐다. 필자가 독립 학자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공공성이 아직까지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열렸던 ‘정보 사회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될 때가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국가 위상에 비교하면 도서관이 너무 열악한 편이다. 뉴욕시에는 공립 도서관 수 200개가 넘고 동네마다 분관이 있다. 그런데 국제 도시로 명성이 높은 서울에는 공립 도서관의 수가 너무 적다. 경기도에 있는 신도시는 더욱 그렇다. 국립 대학 도서관은 최근에 개방되고 있는 추세인데 사립 대학은 아직 개방하지 않은 곳이 많고 대학 간의 협력도 부족해 보인다. 또한 장서의 수가 대학 평가 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자료 구입에 대한 노력이 미비하다.

한국은 ‘정보 사회주의’를 지향한 시대가 없어 도서관은 오랫동안 외면돼 왔고, 도서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는 못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많은 희생을 거쳐 민주화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보를 통제해왔던 독재의 산물이 공공성이 강한 도서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철저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사회에 빠르고 자리 잡았다. 특히 1997년 IMF 이후에 공공과 복지에 대한 투자와 교육 분야에서의 교양과 인문학의 쇠퇴도 원인이다.

한국은 올해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선거 기간에 후보자들은 수많은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이러한 때 도서관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들이 제시되면 좋겠다. 도서관을 지원하는 것은 열린 민주 사회 구축을 지원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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