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감상의 글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어느 날 대학원 원우회 행사가 있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2부 행사 때 사회자의 지명에 따라 몇몇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어떤 여성 원우 한 분은 자기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며 대신 시 한 편을 암송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암송한 시가 바로 이 '꽃'이다. 즉석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아주 멋지게 암송을 했다. 노래 일색인 도중에 시 암송이라 그런지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 뒤로 그 분이 다르게 보였다. 뭔가 멋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시인은 서로에게 맞는 이름을 불러주라고 한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빛깔과 향기를 파악하고, 거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눈짓'이 된다는 것이다. 빛깔과 향기. 멋진 단어의 조합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각각의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이 빛깔과 향기들을 잘 파악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일본과 미국에서 활약한 후 롯데와 계약을 한 프로야구 이대호 선수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칭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타자' 이승엽, '바람의 아들' 이종범, '국보급 투수' 선동열 등도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걸맞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 이름으로 불릴 때 행복하다고 한다.

이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속해 있는 삶의 영역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까.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 그리고 부모에게 이름을 불러보자. 구성원의 빛깔과 향기에 가장 알맞은 애칭을 만들어 가끔씩 불러주면 우리 삶이 훨씬 풍성해질 것 같다. 또 직장 동료나 친구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 선물해 보고 자주 불러보자. 관계가 훨씬 좋아질 것이다. 누군가 나의 빛깔과 향기를 알고 불러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서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빛깔과 향기를 파악해 보자.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서로에게 절대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될 것이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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