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페북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어제가 결혼 기념일이었다. 내 머리 속 지우개는 참 부지런도 하다. 먼 타국 땅에서 서로 그리워하는게 올해의 결혼기념 이벤트다.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알콩달콩 예쁜 이벤트로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안된다. 아침부터 톡으로 하트만 뿅뿅 날려줬다.

메일과 메시지들 체크해보니 포스팅 읽고 온 쪽지들이 많다. 혼자 여행이었으면 데려가지 그랬냐는 쪽지들이 많다. 사실 이런 홀로 여행에 누군가를 데려 오긴 힘든 일이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검증된 여행지도 아닌데 누군가를 데려오면 부담스러워 자유롭지가 못하다.

나와 호흡 맞고 마음이 맞지않으면 힘든 여행이다. 르부와 호텔을 예약하고 딱 한 친구가 떠올라서 방콕서 볼 수 없냐고 물었다. 워낙 바쁜 친구라 스케줄 조정이 쉽지 않은데 방콕 최고의 야경만은 함께 하고 싶었다. 별처럼 빛나는 방콕의 도시 불빛을 내려보며 밤새 수다 떨고 싶은 친구라서였다. 아쉽게도 스케줄 조정이 안된다. 방콕에 지사가 있는 친구니 언젠가는 시간조정해서 함께 할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좋은 건 나누면 더 커지는 법이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풍선이 터질 듯이 커지는 법이다. 아침식사는 뷔페 식당과 컨티넨탈식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단다. 먼저 뷔페 식당으로 갔다. 일본식 중국식 인도식까지 갖추고 있는데 정작 쌀국수를 먹을 수 없다.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아쉽다.

아침 먹고 호텔 플라자1층 맛사지˜事막갔다. 3시간 풀패키지로 제대로 받아보고 싶었다. 각질제거 아로마맛사지 발 맛사지를 각각 1시간씩 해준 단다. 샤워하고 엎드리니 각질제거제로 온몸을 문지른다. 모래를 온몸에 바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다. 때는 역시 한국식 이태리타올로 빡빡 문지르는 것이 최고다. 아로마맛사지는 타이맛사지를 벌거벗겨 놓고 하는듯 하다. 타이맛사지는 힘으로 하는게 아니다. 몸에 힘을 실어서 요령으로 한다. 그래서 타이맛사지는 젊은 사람보단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 받는 것이 좋다.

3시간 받고 나니 배가 고프다. 52층 브리즈로 가니 입구 직원이 내방 번호를 외우고 있다. 직원이 똑똑한건지 내가 예뻐서 기억해주는건지 모르겠지만 알아 봐주니 기분은 좋다. 창가에 앉으니 뭘 마실 건지 묻는다.
레드 와인 달라고 했다.

오늘 점심이 어제보다 더 맛있다. 직원이 사람을 알아보고 와인을 자꾸 채워준다. 내 신조가 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잡지않는다. 오는 와인도 거부할 이유가 없어 홀짝홀짝 받아 마셨더니 대낮부터 취했다.
이대로 마시다가 뻗을 것 같아서 겨우 자제하고 일어서는데 하늘이 핑 돈다. 방으로 와서 짐 챙기고 체크아웃 하는데도 알딸딸 술이 안 깬다. 아무래도 MK수끼가 땡겨서 못 참겠다.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근처 로빈슨백화점으로 갔다. 오래전에는 태국에 오면 로빈슨백화점에 갔었는데 이젠 상대적으로 서민적인 잡화점이 된 느낌이다. 방콕에 럭셔리 몰이 많이 생긴 탓이다.

지하 식당 가로 가니 MK가 있다. 혼자라 양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먹고 싶은 야채와 버섯 모듬으로 시켰다.
야채 국물을 먹으니 속이 확 풀어진다. 땡고추와 마늘 레몬즙을 넣은 소스에 찍어 먹으니 칼칼하니 좋다.

MK수끼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끓여주는 죽이다.

계란 하나 탁 깨 넣고 참기름과 파 쏭쏭 썰어 넣으면 마무리다. 한입 먹으니 고소한 맛이 뒤통수까지 전해진다. 태국 오면 항상 먹는 건데 이번에 마무리로 정리했다.

공항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얼마냐고 물으니 미터대로 주고 고속도로 통행료 별도란다. 그냥 다 포함해서 흥정했다. 미터기 켜고 어디론가 빙빙 돌지 신경쓰기 싫었다. 가격을 좀 비싸게 정하면 적어도 뱅뱅 돌지는 않는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잘한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해외파견 나가서 일한 적이 있단다. 유식한 기사아저씨를 만났더니 계속 정치와 국제정세를 논하신다. 남한 하고 북한이 통일되는 것을 중국이 싫어한단다. 한국이 강한 나라라 통일되면 더 강해질거라 견제한단다. 태국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는지라 할말이 없는데 탁신을 아냐고 묻는다. 잠롱이나 탁신은 들어본 적이 있어서 안다고 했더니 탁신에 대해서 거의 신앙처럼 칭찬을 한다. 국민들 90%가 탁신을 지지하는데 두바이로 추방되어서 못 들어온다고 안타까워 한다. 탁신의 지지율이 90%라니 금시초문이다. 아저씨가 아는 사람들 사이 이야기이겠지 싶다.

정치이야기가 끝나자 경제이야기로 넘어간다. 내가 묵은 스테이트타워에 대해 물어보니 호텔 부분과 콘도부분으로 나뉘어진단다.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칭찬했더니 콘도는 나도 살수 있다고 한다. 태국법에 의하면 외국인은 땅을 살수는 없어도 콘도는 살수 있단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저 건물 이 건물 설명 들으며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심 없는 정치와 경제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항까지 오니 알딸딸하던 머리가 더 복잡해 진다. 그래도 상식을 늘려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내가 모르던 태국의 다른 부분을 봤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비슷한 듯 싶다.

비엔티엔으로 가는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라오항공 승무원이 죄다 남자다. 군인같은 젊은 청년들이 씩씩하게 서빙해주는 모습이 싱그럽다. 1시간남짓한 비행시간인데 기내식과 맥주까지 제공한다. 하루 종일 많이 먹어서 사양했다.

비엔티엔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비자를 받았어야 했는데 이젠 비자를 면제받는다. 기분 좋게 입국수속하고 나와서 ATM에서 돈을 찾는데 단위가 확 달라진다. 150만낍을 찾았다.
돈의 부피가 엄청나서 지갑이 터질 듯 빵빵해졌다.

오늘 묵을 호텔은 공항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택시를 타려니 7불 달란다. 시내로 나가는 건 무조건 7불이란다. 예전에는 농카이를 통해서 버스 타고 국경을 넘어서 몰랐던 사실이다. 비행기타고 입국하니 다른 점이 많다.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직원이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빨이 다 빠진 사람처럼 말을 한다. 영어를 흘리듯이 말한다. 나나 지나 영어는 외국어인데 굳이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는데 장황하게 이빨 없는 사람처럼 말을 하니 알아들을수가 없다. 간단히 또박또박 물어봤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 분명하다. 자꾸 딴소리를 한다. 내일 내 친구 3명이 올거라 큰방을 2개 따로 예약해 놓았다. 내일 방은 더 큰방이냐고 확인하는데 내일 아침에 빈방 있는지 확인해주겠단다. 내일 하고 오늘 예약을 별개로 예약해서 확인이 어려운 듯 보인다. 실랑이하기 귀찮아서 그냥 방으로 왔다. 방에 와서 바우처를 확인하니 분명히 내일 방은 더 크고 비싼 방이다. 다시 리셉션으로 가서 내일 방은 더 크고 좋은 방인데 아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또 엉뚱한 소리다. 바우처를 보여주니 그때서야 알아듣는다. 내가 내일 방 있냐고 묻는 줄 알았 나보다. 2012년에 라오스를 다녀왔으니 4년만에 다시 왔다. 2016년의 라오스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이번 라오스일정은 친구들과 함께 짧은 일정이지만 열심히 돌아 볼일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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