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전 세계를 풍미했던 경영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의 저자인 짐 콜린스에 의하면 좋은(Good) 기업은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이며, 위대한(Great) 기업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업계 평균보다 탁월한 성과를 내고 CEO 교체 이후에도 성과가 지속되는 기업이라 한다. 그는 위대한 기업의 CEO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단계5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즉 전면에 나서서 카리스마를 풍기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짐 콜린스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간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자발적 헌신과 열정을 이끌어 내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한다. 진정한 리더들은 높은 성과 창출 외에도 투명성을 보장하고 구성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며, 비전을 제시하고 자발적 열정을 불러 일으켜서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같은 이들은 독단적이고 주위를 배려하지 않으며, 변덕스러우면서도 고집불통의 ‘카리스마’로 유명한데 그들이 이룬 성공은 어떻게 설명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위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입장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부하들을 무자비하게 몰아쳐서 성과를 내고 그러한 결과로 승진을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업에 몸담고 있던 시절부터 바람직한 리더십과 성과의 문제는 늘 머리 속을 맴도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화두 중의 하나였다. 학자들이 얘기하는 바람직한 리더십과 현실에서 주로 통용되는 리더십 간의 괴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기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오너 CEO와 그렇지 못한 전문경영인 CEO의 경우를 구분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오너 CEO를 살펴 보자. 오너들은 단기 성과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장기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매진할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의 괴짜였지만 뛰어난 통찰력, 굳은 신념, 단호한 의사 결정 능력과 집요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고, 오너였으므로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하게 된 것은 카리스마 리더십의 덕분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역량이 워낙 출중했고 그들이 가고자 했던 방향이 다행히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리더십 스타일의 단점을 뛰어 넘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 성공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후임 CEO가 사업을 승계한 이후에도 성공한 기업으로 남아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리더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이 용납되지 않는 조직이 계속 성공하려면 그 리더의 판단이 대부분 옳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긴 시간의 축에서 보았을 때 그 전제는 성립하기 어려우며, 설령 운이 좋아 늘 옳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조직의 구성원들은 시키는 일만 충실하게 실행하는 ‘위험한 복종’에 익숙해지고 자존감과 자발적 창의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후임자가 승계할 때쯤 되면 그 조직은 한없이 취약해지기 십상이다. 한 리더의 성공은 후임자가 승계하여 그 조직이 잘 운영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애플은 이미 후계자인 팀쿡 체제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에 아직은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지만 애플의 고유의 강점인 혁신 리더십을 계속 발휘하여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업계의 리더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전문경영인 CEO를 보자. 전문경영인 리더들은 주주, 이사회, 오너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시하여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몰아붙이는 쥐어짜기 식 경영에 의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다양한 형태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벼랑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하다 보면 때로 극한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내기 위해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지만 본질적인 조직 역량의 제고보다는 개인에 대한 채찍과 당근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게 문제이다. 이런 유형의 리더들이 성과를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CEO 임명권자 및 평가자들의 진정한 성과에 대한 인식 부족에 기인한다.

진정한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R&D 투자, 신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 인재 육성, 경영시스템 혁신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장기 성과를 구분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기 성과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한 Time Perspective 가 있어야 하고, 대외 환경에 의한 외부효과의 작용 여부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성과는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정량화하지는 못하더라도 평가자들이 업계의 사정에 밝고 안목이 높으면 충분히 옥석을 구분해 낼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충분한 안목과 식견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이다. 탁월한 성과가 CEO의 탁월한 리더십에 의한 것인지, 유리한 외부 환경 덕분인지, 전임 CEO들의 노력에 의한 성과인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보니 예전에는 우스개 소리로 ‘운칠기삼’(운이 70%, 실력이 30% 작용한다는 뜻)이라 하던 것이 ‘운칠복삼’(운이 70%, 복이 30%)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카리스마형 리더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여도 개인기와 행운에 의존한 단기적 성과이거나 구성원들을 번아웃시키고 반대급부로 얻어낸 것은 아닌지 그 이면을 들여다 보아야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성과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성과가 보다 면밀하게 정의되고 제대로 평가되어야만 어떤 유형의 리더십이 진정한 성과를 창출하는지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과를 면밀하게 정의하고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바람직한 성과를 창출하기에 충분치 않다. CEO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임기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GE는 대단히 흥미로운 기업이다. GE보다 시가총액도 훨씬 높고 더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기업들이 여럿 있으나 장기적인 변화와 Sustainability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 GE를 으뜸이라고 할 것이다. 잭 웰치가 이끌던 시절에도 이미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GE는 CEO의 임기가 20년이고 CEO가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한다.

어찌 보면 10년 임기로 정착된 중국 국가 지도자의 승계 시스템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친 엄격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되고, 그 과정에서 리더로서 필요한 경험을 쌓고 안목과 식견을 갖추게 된 후보가 최고 리더의 자리를 승계하여 장기적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나 기업의 CEO가 10-20년의 임기를 갖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초기에 다소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GE의 잭 웰치는 20년간 CEO로 재임하고 리더십 스타일이 그와는 확연하게 다른 제프리 이멜트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이멜트는 지금 17년째 GE를 이끌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GE에서 CEO의 임기인 20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하여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그들의 CEO 육성 및 운영시스템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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