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상준의 행복한 마라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

발행일시 : 2017-02-08 00:00
[한상준의 행복한 마라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

우리나라 마라톤은 언제 부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을까? 마라톤을 취미로 하다보니 조금씩 궁금한 부분이 늘어난다. 필자의 기억에 속에 첫 마라톤은 1982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잠실역 부근에 살았는데, 우리나라에서 국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대대적인 TV 및 언론에서 홍보를 했었다. “서울국제 마라톤대회”였는데, 시내를 관통하는 대회가 처음이라서 교통대란을 일으킨다고 서울시에서 반대를 했었다. 결국 시내를 관통하는 코스가 아닌 강변도로를 달리는 대회로 치뤄졌다.

여의도 KBS앞 광장에서 출발해 대방교를 건너서 강변도로(현 88올림픽대로)를 따라 반포, 압구정 현대아파트, 영동대교를 지나 일반 도로로 나가서 잠실 실내체육관 앞, 잠실대교를 건너서 어린이대공원 후문, 동대문, 종로, 서대문, 공덕동4거리를 지나서 여의도 서울대교(현제의 마포대교) 부근에 결승선이 있었다. 현재 서울 도심에서 치뤄지는 동아마라톤, 중앙마라톤 코스보다 훨씬 매력적인 코스이다. 이와 같은 코스의 대회가 지금 치뤄진다면 꼭 달려보고 싶을 정도이다.

대회는 일요일에 치뤄졌는데, 집에서 한참을 걸어서 잠실대교 위까지 가서 마라톤 선수들이 잠실대교를 달려서 건너는 모습을 보았었다. 최초의 마라톤 구경이었다. 잠실 대교 위에 설치된 급수대, 스펀지 등 모든 것이 신기했었다. 그 때는 마라톤은 선수들만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처럼 생활 체육이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마라톤을 완주하고 취미로 마라톤을 할 것이라고 상상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마라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세명이다. 손기정 선수, 이봉주 선수, 황영조 선수이다. 우리나라를 마라톤 강국으로 알렸고, 국민들에게 마라톤에 관심을 갖게 했고, 마라톤이 생활 체육이 되는데 큰 기여를 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이 선수들이 마라톤을 하기 전에 많은 노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마라톤 이야기.
TV에서 마라톤 중계를 할 때 가끔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시청한다. 어찌 보면 TV 화면에는 똑 같이 달리는 화면만 계속되는 것 같다. 꾸준히 달리는 모습만 보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본 사람은 화면속에 달리는 선수와 동질감을 느끼고, 화면에 표시된 달린 거리를 보면서 그 정도 거리를 달렸을 때 얼마나 힘든지, 또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얼마나 즐거운지 잘 알기 때문에 두 시간 동안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만큼 마라톤은 재미있는 운동이다.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마라톤 용품, 용어, 달리는 방법 등이 궁금해졌고, 우리나라 마라톤의 기록, 역사도 궁금해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는 100년이 채 안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라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회는 지금으로 부터 100년 전이 조금 안되는 1919년에 시작되었다. 1919년 만들어진 조선체육회가 1920년 개최한 대회가 “경성일주 마라톤”이다. “경성일주 마라톤” 대회의 거리는 지금의 하프마라톤(21.0975km)보다 조금 긴 25km로 치뤄졌다. 용산 신연병장에서 개최 되었고, 이때 2시간 11분 27초의 기록으로 최홍석 선수가 우승하였다. 그후, 경인마라톤 대회, 10마일 단축 마라톤 경기 등이 치뤄지며 마라톤 대회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다.

옛날 마라톤 대회의 기록을 보면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만약 그 당시로 가서 달릴 수 있다면 우승 까지는 아니어도 순위권의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옛날에는 도로 상태도 지금과는 다르고, 마라톤 신발도 지금과는 다르고, 무엇보다도 과학적으로 선수들의 신체를 관리하고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옛날 기록을 보다 보면 기록이 크게 단축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일제 치하에서 치뤄진 1929년에는 일본 간사이대학(關西大學)이 주최한 제5회 한성역전 마라톤대회에서 양정고등보통학교 한국인 선수가 우승을 하여 일제 강점기속에서 민족의 자존심과 독립의식을 심어 주기도 하였다. 1931년에는 김은배선수가 조선신궁대회에서 2시간 26분 12초로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음해인 1932년에는 제10회 LA 올림픽대회에서 김은배선수가 2시간 37분 28위로 6위, 권태하 선수가 2시간 42분 52초로 9위에 오르고, 4년뒤인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2시간 29분 19초로 우승을 했다. 이 기록은 당시 세계 신기록이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일제 강점기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의 마라톤 기록은 꾸준히 발전을 하였고, 국가 대표로 선출되어서 좋은 기록을 낸것을 보면 일본 선수들보다 뛰어난 기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을 국제 대회에 일본의 국가 대표로 참가 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 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광복 후에는 조선육상연맹이 만들어졌고, 1947년 보스톤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서윤복 선수가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하였다. 1930~50년대에 우리나라 선수들의 마라톤 기량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었다.

손기정 선수 이야기.
작년에 영화 “레이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영화 “레이스”는 11회 올림픽 개최지가 베를린으로 선정되면서,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던 히틀러가 유대인과 유색인종의 올림픽 출전을 막으려고 하자, 많은 국가에서 올림픽 참가를 보이코트 하는 등 국제적인 반대로 인하여 히틀러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올림픽에 참가한 유대인과 유색인종을 종목 참가 조건을 이용하여 차별하였다. 결국엔 미국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가 그러한 차별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화이고, 우리나라에서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

영화 레이스 <영화 레이스>

영화를 보면서 정말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손기정 선수를 생각했다. 영화 배경이 베를린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로 참가해서 1936년 8월 9일 마라톤을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였고, 따라서 “대한민국”이란 국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태극기는 전혀 볼 수 없었고, 간간히 일장기는 볼 수 있었다.

손기정 선수에 관련된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시 되었는데, 그중 “손기정이 달려온 길”이란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조국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란 손기정씨의 말로 시작한다. 일제 치하에서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 국적으로 달린 슬픔이 묻어나는 글이다. 이 책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조차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손기정 선수에 관련된 많은 기록 사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기정이 달려온 길 <손기정이 달려온 길>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최종순위는 다음과 같다. 손기정 선수와 2위인 어네스트 하퍼 선수의 기록은 2분이상 차이가 난다. 2분이면 두사람의 거리 차이는 700~800m 정도 차이가 났을 것이다. 상당히 큰 격차로 우승을 한 것이다. 아쉽게도 올림픽 기록에는 손기정 선수의 국가는 현제까지도 일본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국적 수정은 불가하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TOP 10 기록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TOP 10 기록>

마라톤은 일반 운동과는 조금 다른 것이 체력 외에도 정신력과 심리적인 면도 많이 작용을 한다. 지구력과 심폐기능이 좋아하는데, 페이스 배분도 중요하다. 선수마다 페이스 배분이 다르다. 초반에 빠르게 달리고 후반부에 천천히 달리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초반에는 천천히 달리고 후반부에 페이스를 올리는 선수도 있다. 결국 42.195km를 완주하는 시점의 기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쟁상대가 초반에 빨리 달린다고 경쟁 상대의 페이스에 맞춰 평소보다 빨리 달리면 오버페이스가 되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

4년전 1932년 LA 올림픽에서 우승을 한 후안 까를로스 사발라(Juan Carlos Zabala)란 선수는 31km 까지 선두를 유지했다. 결승선까지 불과 11km를 남긴 상태에서 사발라 선수는 기권을 하고 만다. 아마도 LA 올림픽에 이어서 한번 더 우승을 해야 한다는 대한 압박감과 중반을 넘어서면서 2위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짐에 따라 선두를 유지하기 위한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베를린 마라톤은 총 56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는데, 육상경기장에서 3열로 서서 출발했다. 손기정 선수는 3열에서 출발하였고, 육상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는 32위였다.

1936년 마라톤 코스와 구글맵으로 본 현제 지도 <1936년 마라톤 코스와 구글맵으로 본 현제 지도>

마라톤은 페이스 조절이 매우 중요한데, 아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기록을 보면 요즘과 달리 초반에 빨리 달리고 후반부에 페이스가 늦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종 기록인 2시간 29분 19초의 기록이 페이스를 제대로 배분을 했으면, 10km의 기록은 32분 30초가 아닌 35분 23초 정도가 적당하다. 손기정 선수는 선두가 아니고 4위 였으므로 조금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한상준의 행복한 마라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

손기정 선수는 우승을 했으나, 국적도 한국이 아닌 일본, 이름도 “손기정”이 아닌 일본식으로 “손 기테이”로 기록 되어있다. 손기정 선수는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시상식에서는 1위에게 주어진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는 동양인으로서는 올림픽 최초로 마라톤 우승자로 기록 되었다.

역대 올림픽 마라톤 기록 <역대 올림픽 마라톤 기록>

손기정 선수는 광복 후 선수가 아닌 마라톤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손기정 감독의 지도를 받아서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과 함기용이 우승을 하였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도 마라톤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서 잠실경기장을 달려서 개회식 성화에 점화를 했다. 손기정 선수는 2002년 11월 15일, 폐렴으로 9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 받았다.

지금도 손기정 선수의 이름들 쓰는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손기정 선수는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황영조 선수 이야기.
손기정 선수와 황영조 선수의 인연은 특이하다. 8월 9일. 1936년과 1992년. 56년간의 차이를 두고 두선수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다.

[한상준의 행복한 마라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
손기정/황영조의 56년 차이 우승 장면 &#8211; 사진제공: 연합DB <손기정/황영조의 56년 차이 우승 장면 &#8211; 사진제공: 연합DB>

필자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방학을 이용해 한달 간의 미국 배낭여행을 마치고 일본 우에노에 들러 관광을 하던 중이었다. 8월 9일 일요일 아침. 일본 우에노에서 TV를 틀었더니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생방송을 중계하고 있었다.

정확히 56년전 손기정 선수가 일본 국적으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선배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가 금메달을 두고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TV를 켜니 일본인인 모리시타 고이치가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황영조 선수가 바짝 쫓고 있었다. 일본인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자국 선수를 응원하면서 일본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승선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황영조 선수가 모리시타를 추월하자 일본인 아나운서가 애절하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아… 1m 벌어졌습니다. 3m 벌어졌습니다. 아..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고 중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격차를 크게 벌여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Estadi Olimpic)을 한바퀴 돌고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일본 본토에서 볼 수 있었다.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마라톤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날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황영조 선수의 기록은 2시간 13분 23초로 2위 모리시타 선수보다 22초 빠르다. 황영조 선수는 올림픽 마라톤 종목 사상 아시아인으로는 두번째 우승이다. 그로부터 21년이 흐른 2013년에 출장으로 바르셀로나를 가게 되었고, 업무를 마치고 역사적인 곳, 몬주익 언덕에 갔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는 황영조 선수의 기념비가 있다.

몬주익 언덕의 기념비. 한글로도 되어 있다 <몬주익 언덕의 기념비. 한글로도 되어 있다>

2001년 9월, 경기도와 바르셀로나와 자매결연을 기념으로 몬주익 언덕에 황영조 선수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다. 이때는 이미 마라톤의 매력이 푹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출장을 가서도 새벽에 바르셀로나 해변을 달리기 위해서 마라톤 신발과 옷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몬주익 언덕에 올라서 황영조 선수의 발이 각인된 돌 위에 내 맨발을 데어 보기도 했다.

[한상준의 행복한 마라톤] 우리나라 마라톤의 역사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Estadi Olimpic) 과 황영조 석상 앞의 필자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Estadi Olimpic) 과 황영조 석상 앞의 필자>

사실 56년차이를 두고 금메달을 건 두 사람의 표정은 극과 극이었다. 손기정 선수는 우승을 하고도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시상식에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황영조 선수는 결승선을 통과 할때 환희에 찬 표정으로 통과를 했다. 황영조 선수는 손기정 선수가 자신이 죽기 전에 한국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고, 그 한을 자신이 풀어 드렸다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다고 한다.

이봉주 선수 이야기
이봉주 선수의 애칭은 “봉달이” 그리고 “국민 마라토너”이다. 필자도 마라톤 대회에서 이봉주 선수를 몇 번 만났고 단 둘이서 기념 촬영도 몇 번 했었다. 그래서인지, 참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수이다.

삼성 2006 마라토니아데이 에서 이봉주 선수와 함께 <삼성 2006 마라토니아데이 에서 이봉주 선수와 함께>

이봉주 선수가 세운 한국신기록은 2시간 7분 20초이다. 2000 도쿄국제마라톤대회의 기록이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 를 이 기록으로 달린다는 것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시속으로 환산하면 19.9km 정도이다. 한강변 자전거 도로의 속도 제한이 20km 이고 생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20km의 속도로 2시간 동안 꾸준히 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발로 달리는 속도로는 정말 빠른 속도이다.

2시간 7분 20초는 7640초이다. 1km를 3분 1초에 달리는 것이고, 100m 를 18.1초에 달리는 속도다. 필자의 경우 평소 5분대 페이스이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고 달려야 1km를 4분 20~40초 정도로 달릴 수 있다. 10km 이상을 4분대로 유지하면서 달리기 힘들다. 쉽게 말하자면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온 직후, 쉬고 있던 필자와 100m 달리기를 해도 필자가 이봉주 선수에게 진다는 이야기다.

이봉주 선수가 국민 마라토너로 인정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의 마라톤에 대한 꾸준한 열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09년 10월 마라토너로서는 환갑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나이 마흔에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서 2시간 15분 25초로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고, 41번째 완주를 했다. 정말 아름다운 은퇴 경기이다.

이봉주 선수는 44번의 풀코스 도전을 하였고 41번은 완주를 했고, 3번은 중간에 기권을 하였다. 마라톤 대회에 가보면 취미로 하는 마라톤 선수중에는 풀코스를 100번을 달린 선수도 있으나, 세계 정상급 선수 가운데 이봉주 선수처럼 40번을 넘는 완주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매우 드물다. 일반 선수들의 경우 일주일만에 풀코스를 달리기도 하기 때문에 1년에 10번을 넘게 달리기도 하지만 정상급 선수들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메이저 대회만들 참가하기 때문이다.

이봉주 선수의 경우 메이저 대회에서 완주한 거리만 1700km가 넘는다. 그리고, 그가 2000년에 세운 한국 신기록은 18년이 흐른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봉주 선수는 올림픽 대회에 4회 연속 참가하였으나 금메달을 한번도 목에 걸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2시간 12분 39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그후 2000년 호주 시드니 24위(2시간 17분 57초), 2004년 그리스 아테네 13위(2시간 15분 33초), 2008년 중국 베이징 28위(2시간 17분 56초)으로, 순위권 조차 들지 못했다.

이봉주 선수는 2007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2시간 08분 04초의 기록이다. 필자는 같은 대회에 마라톤 첫 출전을 했다. 4시간 10분 58초의 기록으로 완주를 했는데, 하프 정도를 달리고 있는데, 응원을 하던 시민이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했다”고 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이봉주 선수가 완주를 했을 때 필자는 절반도 달리지 못하고 20km 정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봉주 선수는 최근 모 방송국의 “기적의 달리기”에도 출연하고 있고, 대회에 참가하다 보면 종종 얼굴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영원한 국민 마라토너로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 마라톤의 숙제.
우리나라 마라톤의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의 기록으로 2시간 7분 20초다. 이봉주 선수의 기록이다. 그후 2011년 정진혁 선수가 2시간 9분 58초의 기록이 있으나, 그후 한번도 2시간 10분 내로 완주한 선수가 없다. 세계 마라톤 기록은 꾸준히 진화하여 2014년 9월 베를린 대회에서는 케냐의 데니스 키메토가 2시간 3분의 벽을 허물고 2시간 2분 57초로 우승을 했다. 이제 전 세계 마라토너의 목표는 2시간 2분대에 다시 진입하는 것이고, 의학적으로는 페이스 조절만 적절히 하면 1시간대도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선척적으로 달리기에 우수한 신체를 가진 케냐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 대거 출전하면서 기록은 더 빠르게 향상될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 마라톤 기록 TOP 10 <우리나라 남자 마라톤 기록 TOP 10>
우리나라 여자 마라톤 기록 TOP 10 <우리나라 여자 마라톤 기록 TOP 10>

몇 년 전에는 케냐 출신의 한 선수가 작년에 치뤄진 브라질 올림픽 마라톤에 한국 국적으로 참가하기 위해서 한국인으로 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케냐 선수의 한국 귀화와 한국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 여론이 많았고 결국 약물 전력을 이유로 귀화가 무산되어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기고 귀화한 연예인들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스포츠 대회에서 귀화한 국가대표에 대해서는 국민 정서가 따라 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마라톤의 기록 단축과 다시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마라톤 선수가 많아져서 그 중에 뛰어난 선수를 찾아낼 필요가 있고, 국내 선수 간의 순위 경쟁보다는 국내 신기록 경신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치뤄지는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는 마라톤 강국인 케냐 선수에 대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는 상위권에 입상한 선수들에게 상금과 상품 등을 지급하는데, 케냐 선수들이 국내 대회에서 초청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달리는 마스터즈 종목으로 참가하여 상위권을 모두 차지해서 국내 일반인 선수들이 입상하지 못하자 참가자들이 대회 주최측에 항의를 하였고, 일부 대회의 주최측이 이를 받아들여서 케냐 선수의 등록을 거부했었다.

명목은 너무 잘 달리는 케냐 선수들로 인하여 국내 선수들이 입상하지 못해서 사기가 저하된다는 것인데, “국제 대회”임에도 모든 국가가 아닌 특정 국가의 선수들만 참가를 불허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과, 특정 국가 선수들은 대회 참가의 목적이 상금 사냥을 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불허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국내 대회, 아시아 대회가 아닌 국제 대회이니 만큼 특정 국가 선수들의 대회 참가에 제한은 다시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라톤을 즐기는 한사람으로,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라톤에 다시 한번 우리나라 선수가 우승을 해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여성 마라토너로서 국제 대회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 선수처럼 국민 여성 마라토너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상준 han.sangjoon@gmail.com 포토스탁 회사 이미지클릭 이사. 20년 넘게 IT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관심 분야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글로 남기는 것을 즐기고 하고있다. 현재 논현동 카페드양이란 커피 전문점도 경영하고 있다.10년전 마라톤을 시작하여 국내 최대 마라톤 동호회 마라톤114의 운영자와 고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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