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 창경궁 대온실과 생각하는 회화나무

발행일시 : 2017-02-23 00:00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 창경궁 대온실과 생각하는 회화나무

입춘(立春), 봄이 시작되는 날 궁에 갔다. 곳곳의 담벼락 그늘 밑에 남은 겨울은 아직, 봄이 아니라며 미련을 남긴다. 그러나 분명히 봄은 시작되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이 질펀하게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덕궁(昌德宮)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우리나라의 명소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돈화문(敦化門) 앞에 떼를 지어 있는 관광객들을 자주 보게 된다. 돈화문은 현재 남아있는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1412년 5월에 세워졌고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敎化)한다’는 의미가 있다.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 안에 들어서면 수백 년 동안 그곳을 지켜온 나무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쏟아낸다.

나는 궁궐의 계절을 좋아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기도 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거나 흐린 날이 좋다. 그런 날이면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조용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함양문(涵陽門)은 창덕궁에서 창경궁(昌慶宮)으로 연결되는 작은 문이다. 봄이 시작하는 날, 창경궁을 일부러 찾은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온실이었던 ‘창경궁의 대온실’과 창경궁의 나무들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2017년 11월 까지 공사를 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고집을 부려본다.

창경궁 대온실 봄 전경(창경궁 관리소 제공) <창경궁 대온실 봄 전경(창경궁 관리소 제공)>

현재 40-50대를 넘어선 이들은 일부 경험했을 창경원 소풍. 역사적 정체성이나 그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 나에게는 즐거운 추억이다. 나의 손을 잡고 동물원 구경을 시켜주었던 당시 나의 부모님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1983년 창경원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긴다는 뉴스의 한 장면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온실로 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초입부터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근처에는 갈 수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얼어붙은 춘당지 너머 어슴프레 보이는 대온실 지붕만 바라본다.

창경궁에는 청산하지 못한 근대의 아픈 잔재가 아직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대온실이다. 대온실은 1907년 일본인 후쿠바 하야토(福羽逸人)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1909년에 건립되었다. 건축 양식은 19세기말 세계박람회장의 철골구조 건물 양식을 따랐는데 당시에는 582㎡의 규모에 열대식물을 심어 전시하였다고 한다. 대온실이 일본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설립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한제국 말기에 도입된 서양건축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적 의미에 대한 고려로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다.

철재의 ‘보(beam)’가 건축물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대영박물관의 보에서 비롯되었다. 1784년에는 연철이 개발되면서 가구에 철재의 보가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이후 19세기인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박람회를 위해 건축물을 건설할 때, 벽돌이나 나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철 4500만 톤과 규격화한 유리 30만장을 사용하였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념비적인 이 초대형 건축물을 ‘수정궁(Crystal Place)’이라고 불렀다.

수정궁의 정식명칭은 ‘The Place of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이다. 역사적인 세계박람회는 영국의 왕자 앨버트 헨리 콜(Prince Albert with Henry Cole)에 의해 시작되었고 수정궁의 설계디자인은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이 맡았다. 그의 설계는 건축기간과 예산을 단축시켰던 새로운 건축 양식이었다. 조셉은 유리온실 설계 전문가였다. 규격화된 철골과 유리를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였다. 이 건축물은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건축방법으로 공학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수정궁은 다른 장소로 옮겨져 더욱 큰 규모로 세워져서 활용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6년 화재가 난 이후, 다시 복구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당시의 감흥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은 창경궁의 대온실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 한다. 그래서 그 존재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얼어붙은 춘당지 너머 보이는 대온실 지붕 <얼어붙은 춘당지 너머 보이는 대온실 지붕 >

창덕궁에는 회화나무 8그루가 2006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창덕궁 돈화문에 들어서면 왼편의 금호문으로 이어지는 건물에 4그루의 회화나무가 있고 금천교 남쪽의 오른편에 4그루가 있다. 1830년 이전에 그려졌다고 추정되는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나무들도 그려져 있는데 이들 회화나무의 수령을 어림잡아 300~400여 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높이는 15~16m 정도 되는 오랜된 나무이다.

춘당지에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선인문(宣仁門)을 바라보는 몹시 굽은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이 역시 회화나무이다. 선인문의 굽은 회화나무도 동궐도에 그려질 만큼 오래된 나무이다. 2015년 상영되었던 영화 ‘사도(思悼, The Throne)’에서 연출한 것과는 달리 사도세자는 명정전(明政殿)과 문정전(文政殿)에서 떨어진 선인문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나무 아래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인문 앞의 굽은 회화나무 <선인문 앞의 굽은 회화나무>

“회화나무(Sophora Japonica L. 콩과), 한자로는 느티나무와 같이 괴목으로 불렸고 동궐도에서도 보이는 나무이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죽은 곳이 이 근처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한 선인문과 역사를 같이 한 나무이다.”

나무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천히 흐른다. 나무는 인간처럼 환경을 감지하여 그 영향을 받아들인다. 프랑스의 생화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자크 뤼시앵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년)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에게 진실한 것은 인간에도 진실하다.’ 즉 인간에게 아픈 시간은 나무에게도 아픈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타의 회화나무와는 달리 선인문 근처의 회화나무가 굴곡진 외형을 하고 있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따른다. 창경궁을 건축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건축 후에 옮겨진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500여년 창경궁의 파란(波瀾)한 역사를 지켜보았을 회화나무의 오랜 생각을 개인적으로 판단해 본다.

회화나무는 오래전부터 신성시하는 나무로 함부로 하지 않았다. 높은 선비의 집이나 서원, 궁궐에만 심을 수 있었고 특별한 공이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상으로 내린 나무이기도 했다. 옛날 중국에서는 재판관이 송사(訟事)를 들을 때 반드시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고 한다. 회화나무가 진실을 가려주는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창경궁의 공간은 다른 궁궐의 무엇보다 아름다워 조선의 많은 왕들이 이곳을 사랑하였다. 아름다운 창경궁에서 태어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의 죽음이 더욱 애잔한 것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슬픈 죽음에 무릎을 꿇은 회화나무의 모습에 발 시린 선인문 길목에 서 있다.

영험한 힘을 가진 회화나무만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나무를 예술적으로 재창조하는 작가들은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년)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만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의 초기작품들은 차분한 컬러로 풍경을 묘사한 자연주의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점차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 시켜 몬드리안 특유의 스타일을 갖추게 된다. 나무는 점점 알아 볼 수 없는 형태로 변해갔고 결국은 선과 면으로 남겨졌다. 그의 그림에서 살아있는 나무의 에너지가 다른 방법으로 캔버스에 구현된 것이다.

Tree, 91x73cm hologram Acrylic on canvas 2014 <Tree, 91x73cm hologram Acrylic on canvas 2014>

반면, 나무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이미지를 그리는 작가도 있다. 박명선 작가(런던 예술대학 순수미술, 석사)의 나무그림은 마치 인문학 서적과 철학서적을 품고 성장하고 있는 사유(思惟)하는 나무의 모습이다. 그림 속의 홀로그램은 ‘근원의 빛’을 상징한다. 사색적인 나무는 생각의 깊이만큼 다양한 빛을 담고 있으며 또 다른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

창경궁에서, 한국을 일곱 번이나 방문한 일본인 기미코를 우연히 만났다. 떠나는 마지막 날 창경궁을 들린 이유는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인문의 굽은 회화나무도 그녀를 보았을 것이다.

서정화 fine0419@nextdaily.co.kr | 칼럼니스트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하면서 미디어와 박물관·미술관, 환경, 공예·디자인 관련 경험을 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며 동화작가이다. 민속학, 박물관교육을 전공하였고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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