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발행일시 : 2017-03-01 00:00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동네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갈까 말까? 물끄러미 대문을 바라보다 처마 밑 마루 한 켠에 앉아 좁은 지붕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남자 동생 둘은 일찌감치 나갔고, 어린 누나는 홀로 집에 남았다. 마론 인형이나 갖고 놀까 싶어 인형 옷장에서 옷을 꺼내 겨우 한두 번 입혀보고는 밀어 둔다. 인형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 아이는 인형이라는 등식은 어른들의 머릿속에 언제나 성립하나 보다. 인형보다는 인형 옷장이 더 좋다. 장롱 한 칸을 똑 닮은 데다 서랍까지 있는 하얀 원목 인형 옷장. 그 옷장 문을 열 때마다 여자 아이는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 '온실 속 화초’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날마다 찾아와서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꿔 주는 화려하고 귀한 꽃과 나무 사이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볼품없이 박혀 있는 '온실 속 잡초'. 언젠가는 화초인양 행세하던 잡초들처럼 눈에 띄기만 하면 곧 사라져 버릴 아이. 그래서 초록 대문을 열면, 바로 놀이터인 골목으로 한 발짝도 옮기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보다. 자주 나가보지 못한 골목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서 말이다.

결국 여자 아이는 책 한 권을 집어든다. 몇 번을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읽고 또 읽은 책들 속에 묻혀서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낸다. 책을 통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그 문을 지나 오늘은 이 길, 내일은 저 길, 상상의 세계로 쏘다녔다. 책과 상상 속은 안전하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그 어린 여자 아이는 이제 없다. 이름은 그대로 불리는데, 무상한 시간만큼 변해 버린 것이 많다. 천성은 그대로이나 먹을 대로 먹어버린 '나이’는 세상을 보는 편견 일부를 지웠다. 울퉁불퉁 지나온 날들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거나 단 '경험’은 두려움은 낮추고 미지로 향하는 기대치는 높였다. 골목길 탐험은 물론 낯선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도 즐긴다. 물없이 사막을 횡단하지 않는 것처럼 무방비로 떠날 만큼 철없지는 않다. 식견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큰 머리에는 오고감에 있어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생겼다.

이렇게 되기까지 보낸 세월이 길다. 육도의 한 곳으로 인간 세상보다 높은 천상의 신들은 희희낙락 하는 삶을 살다 아래 세상으로 떨어진다. 안빈낙도 하는 인간의 삶은 윗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인간계는 사통팔달 세상이다. 그러니 사실 이래 가도 좋고, 저래 가도 좋다. 결말은 스스로 짓는 행위에 따라 달라지니 말이다. 온실의 화초를 동경했듯 천상의 신들이 부러웠던 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알았다. 하늘은 넓고 푸르고, 갇혀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발바닥이 땅을 느끼는 순간, 스스로 박차고 나오는 기회가 생긴다. 우물이든 온실이든 혹은 담벼락 안의 세상이든 열고 나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것은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의 다른 표현이다. 발바닥은 개체에 불과하지만, 느끼는 그 주체와 통하면, 일체가 된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것이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입은 그대로 나오면 길이 기다리고 있다. 방향 없이 무작정 걷거나 뛰어도 된다. 단, 땅을 딛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 한참을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듯 불필요하게 응집된 것으로부터 자유 의지가 서서히 풀려난다. 설령 막다른 길을 만나도 허둥대지 않고 천천히 둘러보며 빠져나갈 길을 찾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다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는 뜻밖의 순간들에 설레기도 한다. 통하거나 말거나 길은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인 루미(Rumi, 1207~1273)는 이렇게 노래했다.

- Difficult roads often lead us to be beautiful destinations
(험한 여정은 종종 아름다운 목적지로 우리를 안내하지.)
- Your heart knows the way. Run in that direction.
(네 마음은 길을 알고 있어. 그 방향으로 달려).
- It’s your road, and yours alone. Others may walk it with you, but no one can walk it for you.
(너의 길이고, 너만의 것이야. 누군가 동행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너를 위해 걸을 수 없단다.)

[장윤정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길, 통하거나 말거나

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 철학자, 혹은 종교인만 마음을 연구하라는 법은 없다. 내 마음은 오직 나만 여행하고 탐험할 수 있다. 닫힌 길, 열린 길의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미로에서 막다른 길을 만나면 도구를 이용해 뚫어 새로운 길과 통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거미집은 거미들의 사냥터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쉬지 않고 개보수를 한다. 찢어지거나 사라진, 그래서 통하지 않은 부분은 다시 거미줄을 한 줄 한 줄 뽑아 연결한다. 세상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을 찾아 걸어야 할 오늘의 시간이 돌아왔다. 어제 멈춘 곳부터 시작하면 내일까지 끊기지 않고 통하는 길이 이어질 터.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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