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4차 산업혁명,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발행일시 : 2017-03-03 00:10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4차 산업혁명,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문득 어린 시절 공상과학 만화나 소설에서만 이야기 됐던 것들이 지금 꽤 많이 실현되었다는 걸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인터넷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중ㆍ장년 세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참 놀랍다. 주로 만화 영화와 공상과학 소설에서 보았던 미래의 멋진 신세계. 혹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때의 멋진 신세계는 참 소박했다. 시계에서 티비가 나오거나 전화가 되고, 어디에 누가 있는지를 단박에 아는 정도만으로도 어린 관객들은 침을 삼켰다.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주인공들은 조그만 시계나 이어폰으로 서로 작전을 짜기 위해 화상통화를 했고 어디 있는지 파악된 악당은 분하다를 연발하며 사라졌다. 정의는 항상 승리했고 주인공들은 승리의 주역자리를 서로 양보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해피엔딩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단순한 플롯, 소박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런 SF의 세계가 실현된다면 정말 멋진 테크노 파라다이스가 올 거라 의심없이 생각했다. 그 기술은 정의를 구현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지금의 IT는 그런 상상력과 집중력의 결과이다. 꿈을 현실화시키는 엔진같은 상상력을 달고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멋진 신세계의 실현, 그 시작은 꿈이었고 상상력이었고 호기심이었다. 멋진 기술은 정의로운 멋진 세계를 만들어 낼 것 같았다. 여전히 기술은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SF에서 보았던 소박하고 단순한 정의(justice)는 늘 기술의 목표이자 원동력으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었다.

인터넷이 온라인의 세계를 열어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섰다. 너무 빠른 속도다. 그래서인지 4차 산업혁명은 유행어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수준이 제대로만 적용된다면 사람의 생활과 문화 나아가 사고의 체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아니 바꿔놓아야만 생존이 가능해지는 그야말로 혁명이 될 수도 있다.

만일 지금의 예상대로 사물이건 사람이건 도대체 오프라인 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발생한 모든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다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나타나 사람대신 생각을 한다면, 필요한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까지도 이 인공지능이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서 자동 생성해 준다면, 심지어 인간보다 더 정확히 인간의 감정이나 미적 선호도까지 예측하고 표현한다면, 로봇과 장비가 필요한 인간의 모든 노동력이라곤 손가락을 툭툭 건드리는 수준 정도로 줄여준다면, 이런 기술의 개발이 성큼성큼 혁신의 혁신을 업고 나와서 그 속도만큼 빠르게 시장을 매료시킨다면, 사람들은 나오는 족족 그 새로움에 적응하고 냉큼냉큼 소비해 준다면, 이 모든 것이 산업과 사회와 문화에 아무런 갈등이 없이 스며든다면, 그래서 어린 시절 가슴을 뛰게 했던 SF 만화영화의 놀라운 정의를 실현시켜 준다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세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혁명적 변화에 수반되어야 할 제도의 변화, 인식의 변화가 과연 따라와 줄 수 있을지는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지금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대량 생산을 꿈꾸는 구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노수린의 소통팔달(疏通八達)] 4차 산업혁명,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4차 산업혁명을 실현시킬 IT기술 하나하나를 개발하려면 정말 큰 돈이 든다. 아마도 국내 자본 규모는 감당할 기업이 없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현재 그렇게 충분한 연구개발 투자가 체계적으로 이뤄진 회사도,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능력이 되는 기업도 보이지 않는다. 대규모 자본의 지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면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대규모 자본은 이윤 추구를 위한 팽창적 속성이 우선이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구조 내에서도 갈등을 많이 유발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각종 갈등상황을 최소화해가며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 줄 것 같지 않다. 그저 전진만 할 뿐이다. 현재의 갈등 구조가 심화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갈등유인도 속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에 의한 실업문제 같은 것이다.

정치와 행정은 어떤가. 만일 정책과 전략이 이러한 성장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잘 예측한다고 가정해보자. 대규모 자본을 적절히 견제하고 분배성장의 차원에서 보다 여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채택해 사용자와 연관 기업에 적절한 시간을 주어 새로운 변화에 따른 적응기간을 확보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사회 갈등을 최소화 되면서 시장이 확대되는 바람직한 모습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정책은 항상 뒤쳐지고 자본에 끌려왔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정도의 혁명적 엔트로피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간간히 나오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이슈도 그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나오는 논란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4차 산업 혁명은 기술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것일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분명히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모든 혁명의 열쇠는 사람이 쥐고 있다. 이 혁명도 마찬가지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주체는 이용자이자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우리가 될 것이다. 자본과 기술의 결합이 가져오는 팽창적 속성을 감안한다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변화의 강도를 조금은 방어적으로 맞을 것인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유도할 것인지, 적응의 강도를 논할 뿐이다.

우리는 기술의 이용자로, 제품의 소비자로, 정책을 주도할 주권자로 자본과 정치를 바꿔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문명과 상식의 휴머니즘을 토대로. 3차 혁명이 가져다 준 인터넷 통신과 소셜 네트워크는 적절한 문명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 단계에서 태생적 필연성이 내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다.

어린 시절 SF만화를 보던 그때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악당을 물리치던 기술은 정의의 구현을 위함이었다. 누적된 사회모순을 안고 자폭하는 폭탄이 될 것인가, 올바른 사람 중심의 가치관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에 따라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은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속에 있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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