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중찬의 書三讀] <대한민국 헌법> 죽은 헌법의 사회? 깨어 있는 시민의 헌법읽기

발행일시 : 2017-03-03 00:00
[안중찬의 書三讀] &lt;대한민국 헌법&gt; 죽은 헌법의 사회? 깨어 있는 시민의 헌법읽기

광장에 앉아 촛불을 든 나는 불현 듯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 전, 존경하는 디자이너 김응선 선생으로부터 들은 “성경책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 디자인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필요한 법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물여섯의 엔지니어인 내가 성경책을 구입한 것은 그 말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고 역사 소설을 읽는 마음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 없이 살아가는 탓인지 많은 내용들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지금도 종종 성경을 펼쳐보며 생각을 정리할 때가 있다, 문사철의 필독서로 성경을 대하듯 시민의 필독서로 헌법을 생각했다. 진달래가 피기 전에 정독해야겠다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광장 가까운 서점에 들렀다가 헌법과 관련된 수많은 책을 살펴봤지만 결국 선택한 것은 도서출판 더휴먼의 ‘대한민국헌법’이었다. 부칙을 포함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 10장 136조 331항이 차례로 나열된 68쪽 3,300원의 저렴하고 단정한 책이었다. 같은 디자인에 손바닥 크기로 축소된 82쪽 2,200원 포켓용 소책자도 함께 구입했다. 참고로 헌법 전문은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얻을 수 있으며 A4용지 14쪽 내외로 인쇄할 수 있는 분량이다. 동행한 벗은 공짜 정보를 상품화한 책이라며 비판했지만 여러 해석과 사례가 있는 두꺼운 책보다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다. 서가에 헌법 한 권 꼽아두고 성경처럼 때때로 펼쳐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중찬의 書三讀] &lt;대한민국 헌법&gt; 죽은 헌법의 사회? 깨어 있는 시민의 헌법읽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제 10호 헌법 전문(前文)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장에서 비롯된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5월 31일 개원한 제헌의회에 의해 7월 12일에 완성된 후 7월 17일에 공포되었다. 그날을 기념하는 제헌절을 이명박 정부가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60년간 지속되어 온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면서 건국절 논란과 함께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정 10호 헌법은 민주화를 염원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을 담보한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로 대통령 직선제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담아 30년 세월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더 나아가야할 현실에서 오히려 무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이다. 정치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분노한 시민들은 늘 이 한 마디를 합창하며 광장에 모였다. 윤민석 작곡의 민중가요 ‘대한민국을 위하여’는 헌법의 첫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광장의 노래로 헌법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시킨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녹아 있는 슬픈 노래다. 유시민 작가는 저서 ‘후불제민주주의’를 통해 우리의 헌법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얻은 후불제 헌법이었고,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김경희 교수 역시 같은 해 출간된 저서 ‘공화주의’에서 공화주의란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들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나라 민주공화국이 길을 잃었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이다. 우리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그냥 법과 국민을 우습게 아는 위정자들에게 지배당하면서 민주주의고 공화주의고 그 모든 것이 파괴되는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참여정부 원년에 개봉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란 영화가 있다. 한 국회의원이 상대당의 킬러에게 복상사를 당하며 여야 국회의원이 동수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상황에서 보궐선거에 나서는 윤락녀의 도전을 담은 파격적인 영화다. 그때는 참으로 웃기는 코믹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민주주의 역사가 후퇴한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주인공이 외치는 헌법 제1조가 공허하다. 헌법이 제1조부터 철저하게 유린당한 10년의 세월이 참으로 가슴 아팠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흔히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하는 이 조항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룬 헌법 제 27조 4항에 해당한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산물로 현행범으로 체포 및 구속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법원에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규정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기초한 형사소송절차로 진행된다. 뉴스를 통해 수시로 접하는 강력사건의 용의자를 보면서 다수의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에 앞서 보도 내용만으로 섣부르게 유죄를 확신하고 용의자를 향해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며,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는 등의 선언을 너무도 쉽게 한다.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헌법은 우리의 이러한 편협한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권력에 억눌린 탓인지 시민들의 관대함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의 법리도 원칙은 불구속수사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어떤 일반 피의자가 경찰에 구속되더라도 기간은 최대 10일이며,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면 연장 포함 최대 20일, 검사의 기소 후 1심 법원에서 재판을 위해 구속 가능한 기간은 최대 6개월, 2심 법원에서 재판을 위대 최대 4개월, 3심법원에서 재판을 위해 최대 4개월, 이렇게 체포부터 법원구속기간을 모두 더해보면 최장 15개월이다. 구속영장이 집행된 형사피고인 및 피의자가 수용되는 곳은 구치소이다. 미결수는 아직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구치소에서 소송절차를 보전하고 기결수와 구분시켜 주는 것이다. 헌법은 이렇게 구속수사를 하는 피고인에게도 관대하고 인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이것은 헌법 제42조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이것은 헌법 제70조다. 의원내각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의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시기는 20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 2007년 1월,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을 제안했다. 자신의 임기가 만료되고 3개월 후에 다가오는 17대 국회의 만료 일정에 맞춰 개헌을 제안했던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헌법개정은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먼저 제안한 내용을 노 대통령이 동의하며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인데 돌아온 대답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악의적의 한 마디였다. 왜곡된 선전 논리에 막혀 20년만의 좋은 기회를 논의조차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이것은 헌법 제 8조 4항이다. 2014년 12월 19일 헌정 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8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한 결정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바로 해산됐으며, 향후 유사한 강령과 기조를 하는 정당의 창당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통합진보당이라는 명칭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 사건이다. 2013년 8월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해 11월 박근혜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통과시키면서 촉발된 사건이었다.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지만 우리는 헌재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이것은 헌법 제 65조 1항이다. 2~4항에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기본으로 하는데, 대통령의 경우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에 맞서는 대통령에게는 헌법 제84조에 의한 불소추 특권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이것은 헌법 제 68조 2항으로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라는 헌법 65조 4항의 후속조치이다. 탄핵이 결정되고 파면된 대통령의 공석은 그렇게 채워져야 한다고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다양한 뉴스를 개별적으로 접하면 혼란스럽고 헷갈리지만 헌법을 중심으로 이해하면 훨씬 쉽다. 어떤 기준에 의해 헌재가 움직이고, 특검이 움직이는 것인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별도로 존재하는 특검법과 헌재의 탄핵 건은 잘 구분해야 한다.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인용을 기대하며 “헌재의 판결에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 만약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대시위를 하면 나라의 법치가 근본부터 무너진다.”고 말했다. 2006년 9월에는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며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변했다. 2014년 12월 대통령이 된 그녀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끌어낸 뒤에 “헌법재판소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피청구인 자격으로 탄핵 심판대에 오르면서부터는 헌재의 출석요구에도 응하지 않을뿐더러 장외에서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헌재를 향한 막말과 감정에 호소하는 등 무법적 행동으로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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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악용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법대로 하자는 말은 참으로 난감하다. 사회의 기본질서 확립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법이며, 법이 없으면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은 두꺼운 법전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법률 용어는 또 하나의 외국어처럼 새롭게 공부해야하는 영역이라 변호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변호사는 판검사와 함께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되었으나 2009년부터 로스쿨이라 불리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로 전환 중이다. 기존 사법시험은 2017년부터 폐지될 예정이었으나 2021년으로 유예되었다. 법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머리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며 사회적인 위상 때문에 출세와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의 장이자 존경받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법은 위대한 원칙이다.

법과 정치와 민주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62명이 법 전공자고, 법조인 출신도 49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최근 대통령 탄핵문제로 날마다 뉴스에서 헌법을 거론하고, 시민들은 은연중에 헌법이란 표현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은 법을 어기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게 되는 등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존경받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에 의해 법을 악용되고 법질서가 문란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나쁜 짓을 일삼으면서도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법률가에게 ‘법꾸라지’란 별명을 붙였을까? 이쯤 되자 시민들은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도대체 법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부턴가 사라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그립다. 선한 사람이라는 그 칭찬의 미담이 ‘무법자’라는 농담으로 인용되더니 세월이 흘러 정말 법을 우습게 아는 갈수록 파렴치하게 법을 악용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몇몇 사람들이 멋대로의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평범한 시민들은 이제 ‘법대로 하자’는 말을 결코 신뢰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나쁜 의도로 해석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법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지만 사회 지배층의 습관화된 위법과 탈법, 불법 등을 뉴스로 접하며 필요하지도 않은 법률 지식들이 공해처럼 일상을 파고들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규제하고 보호하는 법, 바로 그 법 위에서 전체적인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부터 다시 바라봐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헌법 그 이상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헌법 제20조를 통해 명확해졌고, 우리가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헌법 제 21조를 통해 뚜렷해졌다. 여성들이 보호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도 헌법 32조 4항만 지키면 되는 일이다. 우리가 존엄한 인격체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헌법 10조면 충분한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고, 헌법을 이해하는 정신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헌법을 읽고, 대한민국을 읽고, 헌법의 범주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을 읽었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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