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버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그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감상의 글
자기 집이 아닌 못 하나를 의지하여 졸고 있는 아비 제비는 참 불쌍하다. 제비집이 작은 데다 새끼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아비 제비가 있을 곳이 없다. 처음부터 큰 집을 지었거나 새끼를 적당히 낳았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제비집 옆에 못 하나가 있어 아비 제비는 거기서 잠을 청한다. 자세 안 나오게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은 이 ‘자세’ 한번 잡아 보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가. 하지만 그 많은 수고와는 달리 이 세상은 ‘그럴 듯한 자세’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정년이 보장된 든든한 직장이 아닌 직장을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실직을 하고 나면 온 세상이 그만 두려워진다. 그래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퇴직금이나 대출금을 들고 뭔가를 시도하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그 ‘자세’라는 녀석은 파랑새와 같이 잡힐 듯하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시의 ‘흙바람’은 세상의 힘겨움을 의미한다. 이 흙바람 때문에 실직한 아버지는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 셋을 데리고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간다. 아마도 아이들은 엄마 마중 나가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아이들끼리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버스가 오면 엄마가 내리지는 않는지 찬찬히 살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이윽고 아내가 내린다. 피곤에 지친 얼굴 표정으로. 일도 힘들었을 테지만 만원 버스에서 또 얼마나 시달렸을 것인가. 아이들은 좋다면서 엄마에게 달려들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마음속에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큰길의 정류장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자 길이 좁아진 탓에 아버지는 한 걸음 뒤에 서게 된다. 다섯 식구의 정겨운 그림자를 만들기에는 골목마저 좁아터진 것이다. 이 시의 ‘한 걸음 늦게’는 아버지의 심정을 대변한다. 경제적 역할을 다하지 못해 ‘틈 없는 사이’가 ‘한 걸음 늦게’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시를 쓸 때의 ‘흙바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어온다. 아니 오히려 더 매섭게 부는 것 같다. 이 ‘흙바람’이 가정의 행복들을 앗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유감스럽게도 ‘흙바람’을 막을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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