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영모의 맵 인사이트(Map Insight)] 지도, 게임의 중심이 되다

발행일시 : 2017-03-09 00:10
[임영모의 맵 인사이트(Map Insight)] 지도, 게임의 중심이 되다

북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티리온 라니스터는 누구 못지않게 지도를 잘 알았지만, 이 북부에서 왕의 가도라고 부르는 조악한 길에서 2주를 보내다 보니 지도와 실제 땅은 전혀 다르다는 교훈을 얻었다.
- 조지 R. R. 마틴, 「왕좌의 게임」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화면의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도심 곳곳을 걸어다닌다. 공간정보 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볼 때에도 낯설고 신기한 진풍경이지 않을 수 없다.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지난 1월 24일 국내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바꿔놓은 거리의 풍경이다. 이미 한물 갔다, 한풀 꺾인 게임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국내 상륙 한 달 만에 주당 평균 648만 회의 이용률을 보이면서 전 세계 6억 5천만 건 다운로드 명성이 결코 단순한 수치가 아님을 입증했다.

게임을 즐기는 공간을 실내에서 실외로, 가상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 옮겨 놓았다는 혁명적인 변화도 주목할 만 하지만, 공간정보 측면에서 볼 때에는 ‘포켓몬고’ 게임이 보여준 새로운 지도에 대한 시각은 많은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지난 7월에도 이에 대한 칼럼 스마트폰의 지남철은 포켓몬을 향해 떨린다를 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칼럼에서는 공간정보 분야의 AR(증강현실)과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게임 속 지도 자체에서 느낀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 뜨거운 감자였던 ‘포켓몬고’의 지도 논쟁
작년 7월 나이언틱이 포켓몬고 게임을 발표할 당시, 우리나라가 서비스 대상 국가에서 제외되었던 것 때문에 국내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었다.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게임을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애플에서 아이폰 신제품 런칭 시 우리나라가 1차 대상국가에서 배제되었던 것만큼이나 의아해했다. 아무리 최근 들어 국가 차원에서의 IT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소홀했다 쳐도, 세계적인 트렌드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 정도에 불과한가 하는 자괴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논란의 중점은 지도로 옮겨붙었다. 구글의 줄기찬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여론이 들끓었으며, 이는 구글이 보여준 국내에서의 위상과 역할, 휴전 중인 국가로서의 특수성, 국내 공간정보 산업 생태계 보호 등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복잡다단하게 돌아갔다. 국가 안보가 중한 것인지 손 안의 쾌락이 중한 것인지를 따지는 ‘뭣이 중헌디’ 식의 국민 가치관 논쟁까지 불거졌다. 게임 하나 때문에 지도가 이처럼 핫 이슈로 부상한 것 역시 의외였다. 느낌상으로는 동해와 독도 지명표기 이슈 못지 않은 화두로 입에 오르내렸다.

국내 지도의 산실인 국토지리정보원이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작년 11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국가 보안상의 이유로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불허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영영 포켓몬고를 즐기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버젓이 올해 1월 뜬금없이 포켓몬고 국내 정식 서비스 발표가 있었다. 기자간담회 하루 전에서야 국내 언론사들에 간담회 개최에 대한 통보가 이루어졌고, 영문 모른 채 참석한 그 자리가 포켓몬고 국내 서비스 개시를 알리는 발표 자리가 되었다. 당연히 질문은 ‘지도’의 출처 부문에 쏠렸다. 현실세계에 대한 지도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업체 담당자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한 채 "공개적으로 접근(Public Access)할 수 있는 지도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말만 남김으로써 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그 지도의 실체는 정식 서비스 개시 후 밝혀졌다. ‘오픈스트리트맵(OSM)’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용 지도였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오픈스트리트맵이 구글의 지도 반출 이슈 바통을 넘겨받았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공간정보 분야에서 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데이터, 기술, 인프라와 무료 서비스를 이미 갖추고 있다 보니 오픈스트리트맵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림1. 국내 포켓몬고용 지도 데이터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 오픈스트리트맵 https://www.openstreetmap.org <그림1. 국내 포켓몬고용 지도 데이터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 오픈스트리트맵 https://www.openstreetmap.org >

오픈스트리트맵은 참여 및 공유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참여형 지도 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나 구글 등의 사례처럼 국가 단위나 전문업체가 독점적으로 만들거나 배포하는, 출처와 소유가 분명한 성격의 지도 서비스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약 3백만 명 이상의 참여자가 직접 자신이 알고 있는 지역의 공간정보를 등록하고 수정하고 함께 나누는 집단지성 형태의 지도다. ‘지도 분야의 위키피디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국내 서비스를 개시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1월 말 민족 대이동 바로 전 시점이었다는 것은, 국내 지도 데이터 확보 측면에서 아직 부실하고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던 오픈스트리트맵 측면에서는 대규모 사용자 위치정보가 움직이는 설 연휴가 절호의 데이터 수집 기회였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도 일었다. 아무튼 이번 오픈스트리트맵 기반 포켓몬고의 런칭은 공간정보 분야에 꽤 쏠쏠한 족적을 하나 남긴 셈이 되었다.

○ 게임 속 지도 뜯어보기
게임 속에 펼쳐진 지도는 우리가 매번 보던 지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최강의 단순함이다. 도로와 물길 정도만을 아주 단순한 수준으로 표현함으로서 이것도 지도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나마 그 외의 것이라고 하면 희미한 건물 외곽선 정도가 존재하는 수준의 지도였다.
지도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지명은 온데간데 없다. 일반적인 지도에 빠지지 않는 주요 POI(관심지점, Point of Interest) 정보 역시 전혀 표시되지 않는다. 지도라면 마땅히 관공서, 학교, 주요 교통지점, 랜드마크성 건물 등의 위치와 명칭이 표시되어야 할 것 같지만, 이 게임지도 속에서는 포켓스탑이라고 불리는 아이템 충전소와 체육관이라고 불리는 전투지역 이외에는 특별히 POI라고 할만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 속 특수 POI들은 게임 시각에서 나름대로 해석한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필자 주변의 포켓스탑의 명칭을 보자면, 용인여성회관 앞 작은 분수대에는 ‘분수를알아라’라는 명칭이, 건물 내 조형물 중 하나에는 ‘꿈꾸는 달’이라는 명칭이, 신정공원 연못에 있는 체육관에는 ‘이호수에언젠가물이’라는 명칭이 달려 있다. 작명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작명 하나하나에서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한창 이 게임에 몰입해 있는 게임 플레이어에게는 ‘용인여성회관’이라는 POI 명칭보다 ‘분수를알아라’라는 명칭이 더 정겹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게임 본연의 시각에서 투영된 현실세계의 명칭이며, 이는 현실세계의 지도인 듯 하면서 결국 게임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바꾸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림2. 게임 속 지도는 단순함 그 자체다. 지도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 같은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지도다. <그림2. 게임 속 지도는 단순함 그 자체다. 지도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 같은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지도다.>
그림3. POI 명칭을 실세계에서 따왔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작명했나 싶기도 하다. <그림3. POI 명칭을 실세계에서 따왔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작명했나 싶기도 하다. >

지도의 조작 역시 게임지도 상에서는 일반적인 지도와는 다른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지도의 기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 이동’이라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무조건 지도 중심에는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위치하며, 플레이어 캐릭터를 기준으로 지도가 회전(Rotation)만 될 뿐 이동(Panning)하지는 않는다. 주변 정보 열람 시(포켓몬 출현지역 열람, 체육관이나 포켓스탑 열람 등)에만 잠시 맵의 뷰포인트가 움직이지만, 이내 다시 플레이어 캐릭터 기준 시점으로 복귀한다. 아무리 다른 지역의 지도가 궁금하더라도 플레이어 캐릭터가 그 지역까지 직접 이동하기 전까지는 열람할 수 없다.

지도의 확대(Zoom In)와 축소(Zoom Out)의 경우에는 시점의 피치(Pitch)가 함께 조절되는 방식을 취한다. 3차원 지도를 구현할 때 사용되는 이 기능은 지도를 좀 더 동적이면서 실감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지도를 보는 시점이 캐릭터와 멀어지면 수직에 가까운 피치로 증가하면서 지도는 축소되고, 캐릭터와 가까워지면 수평에 가까운 피치로 감소하면서 지도는 확대되어 나타난다. 버드아이뷰(Bird Eye View) 기능이면서도 확대 축소 정도에 따라 동적인 피치가 조절되는 지도 구현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밋밋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2차원 지도이지만 이러한 동적인 효과를 통해서 그다지 단조롭지만은 않은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 게임의 공간으로 바뀐 현실세계
포켓몬고 게임의 특징은 현실 세계를 게임의 공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실 세계를 차용하거나 모사하여 게임 속 공간을 만드는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도심지를 3차원 모델링하여 자동차 레이싱 게임의 배경으로 사용한다거나 전투나 건축 시뮬레이션 게임의 지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또한, 단순히 지도만 빌려와 게임 속 요소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현실공간을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현실 공간 속의 가상 게임으로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것도 비싼 제작비와 노력, 하드웨어의 성능 등이 필요 없이 단순한 형태의 지도와 사용자 위치 정보을 제공하는 방식만으로도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어 현실과 가상을 뒤섞어 버렸다.

사람들은 실제 공간 내에서 지도를 보면서 포켓몬과 포켓스탑과 체육관의 위치를 찾아가고,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또한, 파트너 몬스터의 사탕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현실공간을 걷는다. 아웃도어 환경으로 게임 플레이어를 내몰더니 걷고 뛰게 만든다. 현실공간과 가상 게임 요소를 적절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게임 형태를 만들었다.

지도 입장에서는 실제 내 위치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 위에 자신의 캐릭터가 걷고 둘러보고 뛰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인사이트일 수 있겠다. 지금까지 게임 맵에서는 이러한 기능 즉, 공간 위에 캐릭터가 마구 돌아다니는 것이 전혀 새롭거나 신기한 것이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지도 서비스에서는 기껏해야 사용자 현 위치에 대해 점으로 표시되거나 사람 모양 아이콘 정도로 표시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단순 객체정보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포켓몬고 지도가 보여주는 느낌은, 캐릭터가 현재 지도 상의 내 위치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나의 아바타가 공간 속으로 뛰어들어 지도 위에 실제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현실공간에 있는 사용자와 가상공간인 전자지도 위에 있는 아바타성 캐릭터가 위치정보 상에서 동기화되면서 묘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사용자에게 좀 더 다가서는 지도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다면, 공간정보 상의 SNS 서비스를 기획해 보겠다면, 숫제 현실세계를 이용하여 세컨드라이프를 구성해 보겠다면 이러한 시도 역시 의미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림4. 캐릭터가 직접 활보하는 지도는 사용자와의 일체감을 제공한다 <그림4. 캐릭터가 직접 활보하는 지도는 사용자와의 일체감을 제공한다 >

○ 공간정보는 훌륭한 게임 중심 요소
하나의 히트상품은 무수한 아류작을 쏟아낸다. ‘포켓몬고’의 대흥행 이후 발빠르게 ‘-GO’ 이름을 단 게임 제작 움직임이 있었다. ‘캐치몬’, ‘터닝메카드GO’, ‘뽀로로GO’, ‘크레용팡 GOGO’ 등 기획 발표되었거나 출시된 게임들은 하나같이 AR을 통한 게임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기획된 느낌을 준다.

포켓몬고 히트의 배경이 과연 AR 기능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자 한다. AR은 부수적 기능이고, 더 중요한 것은 현실공간을 차용한 지도와 위치정보와 같은 공간정보 요소의 힘이었다고 판단된다. AR이 주는 혼합 현실감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내가 위치한 공간을 게임공간으로 사용했다는 것과 그 공간을 지도로 연결하여 주변 정보를 둘러보고 다가설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 아웃도어 환경에서 걷고 뛰면서 즐기게 하는 새로운 물아일체형 O2O 게임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아닌 현실공간이 게임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간정보가 자리잡고 있다. 현실공간이 지도를 매개체로 해서 게임공간으로 탈바꿈된다는 것, 무척 재미있고 신나는 일 아닌가?

임영모 0duri@naver.com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잡지사 기자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출판, 모바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GIS 업계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 현재는 ㈜지오투정보기술에서 인문학 기반을 활용한 다양한 공간정보 기획을 맡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일반인들도 쉽게 공간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공간정보의 다채로운 활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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