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진 '여기어때' 매니저
지용진 '여기어때' 매니저

픽사(Pixar)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 중의 하나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 당대의 히트작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했다. 지금까지 15편으로 94억 달러(10조8000억 원)의 수익을 거둔 영화업계의 큰 손이기도 하다.

픽사가 이렇게 잘 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픽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 캣멀 대표의 말에 힌트가 있다. “조직에 계급을 만들 때 조직의 가치는 왜곡된다. 관료주의에서 벗어날 때, 지속 가능한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톱다운(top-down) 방식의 관료주의에서 추구하는 기강, 서열 등의 정서가 창의성을 고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기어때도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허물었다. 직급을 폐지하면서 영어 호칭을 도입했다. 사원부터 대표까지 모든 임직원이 영어 이름을 쓰면서 상하관계의 틀을 과감히 벗었다. 그래서 여기어때는 대표이사를 언급할 때, '레드'라고 부른다. '대표'라는 단어에 담긴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다.

직책이 규정하는 관계에서 벗어나니 퍼포먼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순히 호칭을 바꾼다고 조직의 성향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어 호칭에는 수평적 관계가 내재 돼 있다. 특히 존칭이 배제 돼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께서 회의를 요청하셨다”라는 표현보다 “제임스가 회의를 요청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존칭이 사라지면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수많은 회사들이 영어 이름을 도입한 배경이다.

사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통해 혁신을 일군 사례는 수두룩하다. ‘쓸데없는 규칙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자유를 허용’ 하는 등 과감한 기업문화를 통해 혁신을 만들어 가는 넷플릭스를 눈 여겨 볼 만 하다.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담은 문서를 가리켜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는 “실리콘벨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도 했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을 위시해 세계의 여러 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단 해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KT, LG 등 국내 대기업도 권위적인 조직 구조를 과감히 벗고 체제를 수평적으로 정비했다.

그렇다면 왜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필요한가. 우선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에도 결속력 강화 등 장점이 있다. 그리고 수평적인 조직이 모두의 평등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수평은,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문가로서 담당하는 부분을 자율적이되,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다양한 부서가 협업을 하는 기업의 속성상, 담당 별로 명확하게 역할과 책임을 가지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넷플릭스의 “통제가 아닌 맥락”(context, not control)을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성과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 관리자들은 수많은 의사결정 앞에 직면한다. 이럴 때, 상명 하복의 절차나 관리를 중요시 하는 통제는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반면 핵심 목표를 위한 전략을 역할 별로 설계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맥락 전달은 경쟁력을 높인다. 이러한 맥락 전달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서 활발하게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하이커퍼넥티드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가 실시간으로 연결 된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정보 공유는 삽시간에 이뤄진다. 때문에 기업은 조금 더 유연하고, 탄력적인 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정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모든 것이 융합의 기반이 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다. 이럴 때는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 발현되는 집단지성이 기업 경쟁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여기어때 같은 신생 기업일 수록, 과거의 레거시(유산)가 적다. 그래서 대담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지용진 '여기어때'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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