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식무수리 전업주부의 설날은 눈코뜰새가 없다. 부치고 삶고 지지고 끓이고 손 두개가 모자란다. 새벽에 일어나 차례상차리고 차례 지내고 정리하고 성묘도 다녀왔다. 그 와중에 여행준비까지 하느라 바쁘다.

며칠 전 사우나에서 친구랑 놀다가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돌아다니다 감기까지 보너스로 얻었다. 콧물이 흘러 넘쳐 두 줄기 강이 되어 흐르고 기침이 멎지를 않는다. 비몽사몽중에 겨우 공식 무수리행사를 마무리하고 여정을 시작한다.

아침9시 비행기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항에 왔다. 남편은 어김없이 담배를 샀다. 이번에 방수카메라를 새로 바꾸려고 카메라코너로 갔다. 면세점인데 시중보다 더 비싸다. 세금은 면제인데 마진은 더 큰가 보다.
그래도 필요한거라 그냥 샀다.

새벽에 나오느라 샤워를 못해서 라운지데스크에 물어보니 대기자가 많아서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한단다.
웨이팅 걸어놓고 카메라충전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빵 터졌다. 라운지에 중국인하고 동남아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져서 안내판이 붙었나보다.
양변기사용이 익숙하지못한 사람들이 많아졌나보다.

결국 샤워를 못하고 보딩시간이 다되어서 게이트로 갔다. 담부턴 공항에 가기 전에 샤워를 하고 가야겠다.

3시간30분을 날아서 장사 공항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와서 택시기사한테 서부터미널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미터요금대로 받는단다.

장사는 아무래도 관광지분위기는 아니다.

순진무구 소년 외모의 기사는 잔꾀 부리지않고 고속도로를 달려 서부터미널에 정확히 내려준다.

터미널 매표소에 가서 장가계 가는 표 2장을 달라고 했더니 오늘 표는 없고 내일 출발표는 있단다. 오늘 호텔을 예약해 놓아서 오늘 가야하는데 큰일이다. 내 중국말이 짧아서 융통성 있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안내데스크로 갔더니 다행히 영어가 통한다. 무릉원을 가려면 굳이 장가계로 안가도 된단다. 시리로 가서 택시를 타면 된단다.

시리가는 2시행 버스표 2장을 겨우 샀다. 중국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대중교통 표 사는 것임을 실감했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

로칼버스라 그런지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답게 곳곳에서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요란한 전화벨소리에 장단 맞추듯 고래고래 전화통화를 한다. 버스 소음도 만만치 않은데 전화통화소리는 더 크다.

택시 내부
택시 내부

시리에 도착해서 택시기사한테 우리 호텔 이름을 말하니 안단다. 40위안 달란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이상하다. 호텔전화번호를 줘서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바로 400위엔 달란다. 그 정도 거리다.

택시로 한시간정도를 달려 도착한 호텔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형호텔이다. 정부 소유라 좋은 위치에 자리잡아 있다. 4성급이라 그래도 기본은 할 줄 알았는데 정말 기본만 갖추고 있다. 그래도 무릉원을 즐기기엔 위치상은 좋을 듯 하다.

저녁 7시30분에 도착하니 날도 저물고 배도 고프다. 산전망 발코니룸으로 예약했는데 밤이라 확인이 안된다. 피곤한데다 배까지 고프니 만사가 귀찮다. 체크인하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종업원이 추천하는대로 시키고 남편이 국수를 더 시켰다.

철판 소고기 요리하고 배추볶음까지는 괜찮았다.

마지막에 국수가 대야에 가득 나왔다. 아마 패밀리사이즈인가 보다. 결국 반 이상을 남겼다.

방으로 와서 내일아침까지 아무 생각없이 그냥 푹 자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정리가 되지않는다. 온몸이 물먹은 솜뭉치 같다. 다음부턴 명절 다음날 비행기를 타는 짓은 안해야겠다. 명절에 바쁜 무수리가 할 짓이 아니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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